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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조외숙의 에세이 「행복」

조외숙


   가을이 중간쯤 내려왔다. ‘통영 문학기행’ 이름만으로도 설렌다. 그곳에서 친구들과의 추억이 있고, 친하던 가족이 그리로 이사를 갔던 터라 늘 마음에 있던 곳이다. 오랜만에 찾은 통영은 느리게 가고 있었다. 길눈 없는 나도 알아볼 만큼 크게 변하지 않아서 좋다. 평일이라 그런지 거리도 한산하고 사람들은 바쁠 것 없이 다니고 있다.

 

   버스가 내려준 곳은 중앙우체국 앞이다. 빨간 우체통을 보면 즐거운 편지를, 청마를 그리고 행복을 떠올린다. 우표를 사는 사람도 편지를 쓰는 사람도 보이지 않지만 저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보내고 있다. 크고 작은 택배 상자가 쌓인 그 곳에 무언지 모를 오고가는 물건들이 들었을 것이다. 정을 나누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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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체국 앞에 있는 청마동상과 시비 앞에 선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 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서 총총히 우표를 사고...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안녕,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니 불현듯 편지 한 통 써서 보내고 싶다. 동행한 누군가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있다. 행복해 보인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양당 한의원 간판이 보인다. 그 곳이 정운이 혼자서 딸을 키우며 수예점을 운영하던 곳이다.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繡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愛淸에
삼간 듯 들렀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창만 바라다가
그래도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수를 놓으면 아이를 보는 단란한 모습도 있는가하면, 사모의 마음을 절제하는 그녀의 애틋한 사랑이 흑백 드라마처럼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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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체국 바로 맞은편 이층은 청마와 정운이 자주 가던 서점이다. 감판을 보니 이문당 서점이라 적혀있다. 청마가 편지를 부치는 모습을 서점에서 지켜봤을 정운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그 많은 편지로 오고갔을 사연이 느껴져 마음이 쏴해 온다. 우체통에 청마의 편지는 없지만 그 마음을 읽는다. 그는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으리라.


   몇 자국 움직이니 오래된 교회가 있다. 그 자리에서 청마의 아내 권재순여사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청마의 뒷바라지를 했던 곳이다. ‘그대는 일찍이 나의 청춘을 정열한 한떨기 꽃’이라 표현한 ‘병처’라는 시를 보면 아내 사랑도 예사롭지 않다. 그럼에도 어찌 여자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았겠는가. 그녀의 헛헛한 마음을 대변하듯 교회당 앞에는 오래된 오동나무 한그루가 벌써 잎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서 있다.  그녀의 통 큰 이해심과 마음고생을 이해하니 누구의 편에도 설 수 없다. 세 사람이 다붓다붓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휘뚝거렸을까. 사랑이니 분륜이니 분분한 마음을 아는지 한낮의 볕이 따글따글 들어와 마음의 소독을 해준다. 사랑을 보는 관점도 매번 달라진다. 여자로 엄마로 살면서 그것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관대해지다가도 또 어느새 속세의 마음이 되곤 한다. 이번 강의를 받으면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각각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랑을 본다.


  바다의 결이 반짝인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이 오감을 간질인다. 중앙시장은 살아있는 어물들로 뛰고 있다. 그들도 이곳을 수없이 오고 갔을 것이다. 지척에 있으니 우연히 만나게 될 기대를 가지고 시장으로 바다로 언덕으로 오고 갔을 것이다. 펄떡거리는 싱싱한 생선들 사이로 늘어져 있는 가게 앞에 선다. 어서 들어오라는 통영아지매의 돋가이 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회에 멍게비빔밥 매운탕에 어찌 술이 빠지겠는가. 점심 낮술 한 모금이 달달하다. 심연 했던 마음이 바닷바람에 삽상해졌다.


   청마기념관과 생가는 나지막한 언덕빼기에 있다. 고개를 빼면 바다가 보이고 바다에는 작은 어선들이 한가롭다. 정박해 한 어선들이 어우러져 말로만 듣던 나폴리 풍경이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동무야’ 노래를 흥얼거린다. 마음이 맑고 청아하면 이 노래를 부르는 습성이 나온다.


   생가의 지붕은 짚으로 말끔하게 이어 고삿으로 묶은 듯하다. 낮은 담장에 담쟁이 넝쿨도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다. 뒤란에는 대나무와 감나무가 드리워져 예쁜 그늘을 만들어내고, 그 옆 황토벽엔 나무 그림자가 누워서 빛과 그늘이 교묘한 조화를 이룬다. 우리 일행은 그 벽에 기대어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집에 와서 보니 황토벽에 노란 볕이 살짝 비켜가는 것이 모네의 그림을 닮았다.


   작은 통영에 볼거리가 많다.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죽 늘어선 가게에는 싱싱한 해물과 통영의 명물 꿀빵이 줄을 섰다. 짧은 시간에 마음이 바빠 바로 동피랑길을 오른다. 언덕길을 오르니 감천마을과 흰여울 마을을 닮았다. 어린왕자의 그림 앞에서 오르락내리락 사진을 찍는다. 바다를 보며 마시는 커피 맛은 또 얼마나 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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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무룩 잠든 사이 버스는 도서관 앞에 와 있다. 아침 햇귀 보며 떠났는데 어느새 산그늘이 내려와 있다. 살짝 비껴선 햇볕이 도서관 앞 산자락 걸려 가을색이 완연하다. 몇 번의 만남으로 익숙해진 얼굴들과 인사를 나눈다. 시종 흥분된 표정으로 그분들의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아내에게 편지를 쓸 줄 아는 최강민 선생님을 만나는 기쁨도 컸다. 밥벌이의 고단함에 바쁘게 살았던 일상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있던 ‘길위의 인문학’ 도서관 사서님들의 배려는 화룡정점이다. 누구에겐가 안부를 묻고 편지를 쓸 수 있는 이것이 행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성일 :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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