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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의 걷다가 만난 사람들] 에덴의 실패

신지영(소설가)



   대문을 열면 좁은 골목이 나온다. 골목은 대로로 이어지는 6미터 도로와 맞닿아있다. 골목의 끝에는 작은 수선집이 있다. 속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가 길 모서리를 돌아 나가는 두 면을 채우고 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작은 가게 하나가 있나보다고만 생각했다. 어느 날인가 오후의 볕이 쏟아질 때쯤이었다. 골목을 나가는데 황금빛으로 번지는 가게 안이 눈에 들어왔다. 마주 보이는 흰 벽에는 색색의 실패들이 가득 걸려있었다. 수백 개의 동그란 실패들이 걸린 걸 보고 있으니 뭔지 모를 사랑스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꿈들이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가게 안을 제대로 둘러보았다. 좀 낮은 재봉틀이 가게 중앙에 있고 그 앞에는 나이가 지긋이 든 여자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작은 몸을 움직이며 열심히 옷을 수선하고 있었다. 문 옆으로 전자레인지며 밥통 등 간단한 식도구가 있는 걸 봐서는 가게 안에서 간단하게 끼니도 해결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작은 간판에 ‘에덴수선’이라고 쓰여 있었다. 에덴이라는 단어가 입안에서 되뇌어 졌다. 오후의 빛에 넉넉하게 잠긴 가게와 세상의 옷은 다 수선할 것처럼 벽을 가득 채운 실패들 때문인지 가게는 에덴이라는 이름이 썩 어울렸다. 


   ‘실패들의 낙원이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그 후 골목을 지날 때면 버릇처럼 가게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가게 안은 언제나 한적했고 재봉틀과 여자가 다였다. 둥둥 떠다니는 옷 먼지와 침묵이 가득 찬 그곳에서 여자는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한 번쯤 고개를 들고 얼굴을 보여 줄만도 한데 그런 일은 통 일어나질 않았다. 나중에는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에덴의실패-전솔이.jpg

삽화 전솔이


   그렇게 계절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수선집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일만 한 덕분이었다. 한 번도 손님이 드나드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끝없이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곤 했다. 어디선가 따로 일감이 들어오는 걸까? 손님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면 그게 맞는 걸 텐데 이 작은 가게 안 어딜 보아도 그런 일감이 들어올 것 같진 않았다. 동네에서 알음알음 한 두 사람씩 단골로 찾는 게 아닌 다름에야 다른 곳에서 일이 들어오려면 나름 양이 제법 되어야 일을 보내는 사람도, 일을 받는 사람도 마진이 남을 텐데 여러모로 생각해도 그게 쉬워보이진 않았다.


   얼마쯤 후였다. 그럴 시간이 아니었는데 가게 문이 닫힌 걸 보았다. 알루미늄 자바라가 통유리 바깥으로 쭉 펴져 단단하게 자물쇠에 잠겨있었다. 쉬는 날인가 싶어 별 생각 없이 가게를 지나쳤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가게는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쯤 되자 얼굴도 보지 못한 에덴 수선집 주인 여자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워낙에 몸이 작아 보이던 게 마음에 걸렸다. 고개를 숙인 여자의 등은 정말 한줌이나 될까 보였다. 작은 몸이 어디 상했나 싶어 자꾸 가게만 기웃거리게 됐다. 하지만 촘촘한 자바라 틈으로 실패 몇 개 보는 게 고작이었다. 문 닫은 에덴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다. 눈부신 색색의 실패들도 다 그안에 갇혀서 어두운 그늘에 몸을 의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주일 쯤 지났을 때였다. 일부러 에덴 수선을 지나가려고 골목을 하나 더 끼고 걸었다. 그런 보람이 있었을까? 가게 문이 열려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졌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다가 말고 얼른 모서리를 돌아와 통유리 안을 들여다봤다. 여자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재봉질을 하고 있었다. 흰 벽에 걸린 실패들도 단단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작은 에덴에 사람 하나 있고 없고가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어제의 문 닫힌 에덴이 거짓말 같았다. 이제 보니 실패들에게 낙원을 만들어 준 사람은 여자가 분명했다. 여자의 재봉틀이 돌아가야 실패들은 색색으로 빛날 수 있었다. 고개 숙인 사람의 정수리가 그렇게 반갑긴 첨이었다. 그래 얼굴쯤 모르면 어떤가. 궁금한 게 남아있어야 에덴 수선을 지나가는 낙도 있지 싶었다.


   다음 날 집을 나설 때였다. 좀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에덴 수선이 열려있었다. 하긴 그동안 쉰 걸 보충해야지 싶었다. 길 모서리를 끼고 도는데  뜻밖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였다! 여자가 자기 가게 문 앞에 나와 있었다. 아, 그때서야 내가 그동안 봐왔던 풍경이 이해가 되었다. 여자가 유난히 등을 굽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건 착시였다. 둥그렇게 솟아오른 등이 여자를 누르고 있었다. 등에 지닌 여자의 작은 동산이 그렇게 보이도록 한 것이었다. 여자는 아주 작은 새처럼 보였다. 왜 하필 새인지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작은 몸을 펄럭이며 가볍게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살짝 고개를 숙인 여자의 목덜미가 서늘해 보였다. 평생 형광등 빛만 받은 목덜미였다. 여자를 지나 대로로 걸어 내려갔다. 큰길은 차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바쁜 듯 자기 걸음을 옮기기에만 바빴다. 단지 몇 십 미터 차이였다. 그런데 세상이 달랐다. 


   그 이후로 에덴수선이 문을 닫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여자는 그 자리에 앉아 재봉질을 하고 있다. 왜 그렇게 에덴 수선에 눈을 뗄 수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곳은 여자가 만든 작은 둥지였다. 아늑한 낙원이었다. 어떤 실패도 에덴의 흰 벽에 걸리며 아름다워 질 것이다. 치유 될 것이다. 수백의 다른 실패들과 어울려 잘 살아갈 것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의 가치는 시끄러운 세상의 것이다. 이 작은 낙원에 필요 없어 보인다.    




작성일 : 2018.03.15
저자 소개  

신지영
소설가.
2009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2010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평론가상’, 2011년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상을 받은 뒤,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퍼펙트 아이돌 클럽》,《안믿음 쿠폰》,《너구리 판사 퐁퐁이》(공저),《어린이를 위한 통계란 무엇인가》(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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