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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의 삶 글] 오늘도 청년은 달린다

신지영(소설가)


   자전거 바퀴가 바람을 감는다. 청년을 태운 안장이 말처럼 덜컹거리면 엉덩이도 따라 들썩인다. 핸들이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움직인다. 자전거가 혼잡한 시장골목을 용케도 지나간다. 청년은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손짓을 하기도 하고 큰소리를 내기도 한다. 자세히 듣지 않으면 어린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가끔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시장을 다닌 이력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청년이 한 노인을 보면서 알은 척을 했다. 과일 가게서 물건을 고르는 노인의 모습이 어딘가 청년의 눈에는 못마땅했던 거 같다. 청년은 노인 옆에 서서 언제나처럼 혼자만 아는 소리로 노인을 가르쳐댔다. 반말을 툭툭 던지며 가르치는 청년을 보며 노인은 개의치 않다는 듯 대꾸 하면서 고개도 끄덕끄덕 거려준다.  노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을까? 청년은 크게 웃으며 자기가 가던 길을 다시 나섰다. 청년은 시장 길을 걸으며 몇몇 상인들에게 인사인지 뭔지 모를 말들을 건넸다. 어떤 이는 대꾸도 안하고, 어떤 이는 통하지 않는 말이지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청년에게는 시장의 모든 사람들이 친구인 것처럼 보였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청년은 몇 십 년째 자라지 않는 중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 청년은 늙지 않는 중이다. 청년의 시계는 점포와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이 그냥 동네 골목길이던 시절부터 멈췄다. 조금씩 주름져가는 얼굴과는 달리 빡빡 깍은 스포츠머리도 자주 입는 체크무늬 셔츠도 언제나 그대로 이다.


   청년의 아버지는 시장 안에서 식당을 한다. 몇 십 년 째 간판도 바꾸지 않은 작은 곳이다. 늙지 않는 청년과 달리 모서리가 닳은 테이블, 삐걱거리는 의자가 청년의 아버지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 근근이 오는 단골과 주변 상인들에게 하는 밥 배달이 가게를 지탱하는 힘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청년의 아버지는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배는 점점 커지고 아래로 쳐져갔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눈에 띌 정도가 되었다. 큰 배를 뒤뚱거리며 배달을 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은 힘겨워 보인다. 아마도 그의 배를 채우고 있는 병은 점점 질기게 그를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버지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출렁이는 배를 잡고 꿋꿋이 배달을 나간다. 


오늘도 청년은 달린다. - 삽화.jpg

삽화 전솔이

   청년은 아버지의 가게에 거의 있지 않는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달리거나 혼자 걸어 다닌다. 아버지는 그런 청년을 걱정해서 따라 다니거나, 부르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아들이 혼자 다니도록 내버려 둔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러 나오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아들은 아버지의 가게로 찾아 들어간다. 둘이 살갑게 웃거나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진 않는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들을 야단치거나 화를 낸 것도 본 적은 없다.


   초저녁 아버지의 식당으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든다. 남녀 한 쌍씩이다. 대충 보아도 다들 환갑은 넘긴 모습들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얼굴들이 마치 추위를 피해 모닥불 앞에 모여드는 작은 짐승들같이 다정해 보인다. 가게 유리에는 원앙 모임이라는 작은 플래카드도 걸린다. 오랜만에 사람들로 가득차서 환하고 시끄럽다. 작은 가게에 온기가 돈다. 원앙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열린다. 초저녁에 모여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아마도 한 달 중 가게가 제일 붐비는 때일 것이다. 그 한 번을 제외하면 밤 시간 대부분은 가게가 한가하다. 그럴 때마다 청년의 아버지는 텅 빈 가게 한 구석에 앉아 껌벅이는 형광등 아래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의 얼굴이 텔레비전을 향해 있어서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가게 밖에서 보는 그의 등은 참 작고 동그랗다. 병이 든 큰 배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청년의 아버지가 잠시 주춤하더니 무릎을 주무르다 다리도 두드린다. 두드리다 보니 허리도 뻐근한지 허리를 세워보려 한다. 그러다 잘 안 되는지 이내 포기하고 의자 위에서 몸을 좌우로 비틀어 본다. 아마도 시간은 그의 관절들을 오래도록 마모시켰을 것이다. 그의 허리가 일에 협착 되어 굽어가는 동안에 그의 마음은 얼마만큼 제련되었을까. 


   청년이 저쪽에서 걸어오더니 가게 문을 슬쩍 열고 들어간다. 청년이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뭐라고 한참 이야기하더니 의자를 빼고 앉는다. 창백한 형광등 빛 아래 둘의 등이 나란하다.  


   다음 날이 되고 날이 밝자 청년의 자전거는 또 시장 안을 달린다. 마치 처음 자전거를 타는 얼굴처럼 즐거워 보인다. 청년이 헝헝헝 울 때도 헝헝헝 웃을 때도 자전거는 청년을 태우고 시장의 혈관 같은 골목길을 누빈다. 시장은 청년을 안고 키웠다. 좁은 길은 그의 유일한 놀이터이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지만 청년은 모두와 놀았다. 앞으로 수십 년이 흘러도 아들은 언제나 청년인 채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달릴 것이다. 물론 청년의 아버지도 자꾸 늙어갈 것이다. 그렇게 청년과 아버지의 시간은 점점 간격을 넓혀갈 것이다. 


   청년의 시장과 나의 시장은 어디가 분명히 다르다. 아니 모두의 시장과 다르다. 아마 청년은 자신만의 시장 안에서 모두와 계속 놀겠지. 모든 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혼자만 멈춰있는 기분은 어떤 걸까. 그건 그가 가끔 자전거 위에서 부르짖는 소리 속에 조금쯤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시장은 두 부자에게 하나의 요새이다. 아버지와 청년을 안아주는 담장인 것도 같다. 청년의 자전거는 시장 안의 어디든 갈 수 있다. 아무도 청년에게 안 돼! 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누구나 그가 안전한 청년인 것을 알고 있다. 시장 안의 누구도 평생을 자라지 않는 늙은 청년에게 가엾다고 하지 않는다.





작성일 : 2017.09.20
저자 소개  

신지영
소설가.
2009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2010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평론가상’, 2011년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상을 받은 뒤,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퍼펙트 아이돌 클럽》,《안믿음 쿠폰》,《너구리 판사 퐁퐁이》(공저),《어린이를 위한 통계란 무엇인가》(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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