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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창간 5주년 기념 좌담] ‘유사 인문학(?)’ 열풍 현상을 진단한다 (2)

일시 : 2017년 10월

참석자 


사회 : 이성혁(문학평론가)
참석자 : 김혜연(소설가), 이수향(영화평론가), 이종찬(문화평론가)


 


DSC좌담02817.jpg

 


김혜연 : 말로 하는 게 훨씬 가깝게 느껴지지요. 옛날에 도는 전설 하나가 생각나는데 서울대 모 교수는 칠판만 보고 수업했대요. 그런 방식은 대학은 몰라도 대중들에게는 결코 통하지 않는 접근법이지요. 당장 나가라고 하겠죠.(웃음) 이종찬 선생님께서 중간 지식인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일본 출판계는 중간 저자라는 개념이 있고 그 층이 꽤 넓어요. 어려운 원전들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등.


   문제는 내용이 쉬우면 학문 수준이 낮다고들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쉽게 얘기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개론서 집필, 개론 강의가 제일 힘들어요. 왜냐면 해당 범위가 넓으니까 이해의 측면, 지식의 측면에서 하나도 틀리면 안 되거든요. 듣는 사람들도 초심자니까 쉽게 풀어줘야 되고. 쉽게 풀어주려면 학문의 내공이 깊어야 하고요. 그래서 개론 강의는 학문적 깊이가 확보된 노학자들이 하고, 개론서도 제대로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들이 써야 제대로 된 책이 나와요. 저는 아동문학을 하는데, 아동문학 내용이 쉬우니까 쓰기도 쉽다고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대상 독자가 어릴수록 어려워요. 사용 어휘가 적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담다보면 연령이 어릴수록 어려워집니다.


   학문 분야를 보면 자연과학은 수학을 해야 하니까 제외, 사회과학도 숫자 기반이니까 제외, 예술은 재능이 있어야 하니까 패스, 그런데 인문학은 보니까 쉽거든요. 일단 한글이니까 나도뭐 할 수 있겠는데? 생각이 드는 모양이에요. 그냥 공부 깊이 할 필요가 없다고들 생각하고 유명세 이용해서 책 써서 내는 거죠.


   그렇게 시장으로 인문학이 나왔지만 대중에게 공부한 바를 전달하려면 소통하는 법을 학자들이 좀더 익혀야 한다고 봐요. 예전에 운영되던 문예아카데미, 철학아카데미는 대중에 열려 있었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높은 수준이었거든요. 웬만한 대학원보다 나았어요. 거기서 탄탄하게 배우려는 대중들이 왔어요. 그에 비하면 요즘 인문학 열풍은 훨씬 떨어진다는 느낌을 피하기가 어렵네요.


DSC이수향02816.jpg이수향 : 학원강사 얘기를 하시니 저도 요새 그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저희가 요새 학교에 강의를 나가면서 든 생각입니다. 저희가 위의 세대와 밑의 학생 세대의 중간층이라고 본다면, 뭐랄까 예전에 저희는 교수님들을 좀 존경하고 어려워하고 그런 부분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나보다 많이 배우신 분들이구나하면서 열심히 들으려 노력을 하는 편이었죠. 그런데 이제 저희에게 배우는 학생들은 굉장히 신자유주의적인 체제에서 공부하고 살아온 환경적인 요건 때문인지, 강의를 들으면서도 그냥 전공교수-시간강사 뭐 이런 카테고리로  선생을 나누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의 강의평가라는 것도 실제로 선생의 학문적 깊이나 태도에 관한 부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일종의 페이스북 ‘좋아요’ 느낌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러한 학생들의 태도가 EBS인터넷 강의, 흔히 인강을 들은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학원강사들은 잘 정리된 개략적 지식을 잘 정리해서 약간의 쇼맨십을 거쳐서 잘 떠먹여주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하는데 그런 모습에 익숙하고 그런 강의를 편하게 “노잼-”, “꿀잼-” 이런 식으로 평가하던 마인드와 비슷하다는 거죠.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최근에 인기있는 인문학 강의를 하는 사람들인 최진기나 설민석 같은 사람들이 다 그쪽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인강은 수능 때 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험 관련 강의 등 대학 졸업 후에도 지속적으로 듣게 되는 것들인데 이런 강의들은 대부분 게시판에 간단한 평점과 재미있고 없고 수준의 평가를 내리게 되어 있어요. 비슷하게 대학에서 자신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주체도 그런 식으로 평가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인문학의 여러 가지 위기라고 하는 것들이 단순히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학문 풍토나 대학에서의 소통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지형도 전체의 변화라는 게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요새 “문송합니다” 이런 말이 유행을 하고 인문 계열 전공자들은 기본적으로 취업도 안되고 학비만 축내는 존재처럼 비하하고 자조하는 그런 정서가 형성된 상황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이 대중적 저변을 넓히려 하다보니까 정말 깊이 있는 학문의 영역에서 취하는 스탠스-원전을 직접보고 단어 한 개의 의미를 놓고 옥신각신 싸우는 형태의 그런 방식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측면 때문에 대중 인문 콘텐츠가 그것 자체로 수준이 높다 낮다를 평가하기엔 좀 다른 차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문적 지형도나 인문학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많이 바뀐 상황에서 강사가 강연 원고를 정리한다든지 아니면 라디오 작가가 자기가 매주 쓴 원고를 버리기 아까우니까 책으로 묶어서 내고 이런 경우가 많은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인문학적 콘텐츠의 질이라는 게 학제적인 연구자의 눈으로 보면 약간 아쉬운 차원이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2.


DSC이성혁02814.jpg이성혁(사회자) : 제가 좌담에 들어오기에 앞서 질문을 좀 정리를 했었는데 얘기를 하다보니 여러 가지 주제가 한꺼번에 나온 것 같아요. 이렇게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대학에서 평가 문제라든가 학생들의 자세, 이런 문제를 말씀하셨잖아요. 그리고 김혜연 선생님께서도 대학에서의 인문학이 붕괴되면서 시장으로 인문학이 나왔다 평가를 하셨는데 대학 문제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할까요? 제가 두 번째 질문이 그런 얘기거든요. 대학이 스펙을 따기 위한 기관으로 되어버렸고, 유니버시티라는 게 보편성이라는 의미인데 보편성을 잃어버렸고 전문인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거죠. 대학이 결국에는 인문학을 포기했고, 그래서 인문학이 시장으로 나오게 되면서 시장에 맞추기 위해서 얄팍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게 되는 거죠. 인문학 자체가요. 대중에 맞추려고 하니까 비판적이고 탐구적인 학문인 인문학의 대중화가 결국 학문적인 성격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인문학 열풍의 원인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종찬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두 번째 질문은 그러니까 인문학 열풍의 원인에 대해서네요. 아까 말씀을 해 주셨지만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말씀을 해주신다면?


이종찬 :  근대 세계는 결국 분업의 세계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분업화의 과정 속에서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존재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이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감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 즉 자신의 좁은 전공 분야의 문제영역 속에 들어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유폐시킨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DSC김혜연.jpg김혜연 : 저는 대학의 인문학이 참여정부 시기부터 조정에 들어가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거의 다 붕괴됐다고 보고 있어요. 문제는 그때 대학교에 있던 인문학이 사실 대중들에게 거의 다가가질 못했다는 것이죠. 독립적인 우리만의, 학문을 만들어내지도 못했고 대중을 설득하거나 문화 수준을 올려준 것도 아니에요. 그 상황에서 예산 없으니까 무너진 거죠.


   사실 한국에서 인문학 뜬 건 스티브 잡스 덕분이에요. 이 사람이 아이폰이란 걸 만들었는데 코딩만 한 게 아니라 인문학 공부도 했다더라 하는 얘기 때문이죠. 공학만 할 게 아니라 인문학을 공부해서 종합적 지식인이 되면 아이폰 같은 신기한 물건을 만들어서 결국 돈을 많이 번다더라! 예요. 사실 인문학 열풍의 원인은 그거에요. 삼성도 예전에 인문학을 연구해서 수익모델을 뽑겠다는 프로젝트를 돌린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하는지가 궁금하네요. SM은 아예 우리는 문화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죠. 이미 작곡 편곡 분야는 공식이 나와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대중들이 인식할 때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려면 영어나 토익 점수처럼 또다시 갖춰야 하는 자본이나 기술이 이제는 인문학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 거예요. 이수향 선생님 말씀처럼요.


   요새 강남 대치동에선 라틴어 수업이 유행한대요. (좌중 웃음) 이게 지금 일종의 버블경제처럼 막 올라오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이렇게 봐요. 대중이 진리를 결정하진 못해요. 만약 대중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다 해도 지구가 실제로 평평해지진 않거든요. 지구가 둥글다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천문학자가 아니라 한 수도승이고, 명상과 통찰을 통해 깨달았다고 해요. 천문 관측이 아니라.


   제가 걱정하는 건 지금 경제성장이 거의 멈춰 있고, 이제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게 예상된단 말이죠. 인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돈 말고도 인생에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차별하지 않고, 조화로운 균형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게 인문학의 가치에요. 하지만 돈 버는 수익모델을 인문학이 제공해주진 못해요. 그런데 지금 인문학이란 게 잘 배우면 우리도 스티브 잡스처럼 돈을 왕창 벌 수 있을거야, 라고 희망을 품는 모습들이 보인다는 거예요. 만약 인문학이 그게 아니라면 대중의 실망은 어느 정도일지 저는 짐작이 안 되요.


   자, 경제성장도 안 돼, 돈 벌어준다는 새로운 기술이라는 인문학도 돈을 못 벌어줘, 그럼 대중들이 도대체 어디 가서 삶의 가치를 찾겠느냐는 것이에요. 최악의 경우라고 생각되지만 이건 좀 장기적으로, 국가적으로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이수향 : 저는 아까부터 말씀드린대로 아카데믹한 차원과 대중적 차원은 좀 나눠져 있다고 생각을 하구요. 학제적 인문학이 열악한 처지에 내몰리게 되니까 인문학 해봐야 먹고 살 거리도 없고 그러다보니 이제 ‘시장의 인문학’이 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학제적 문제 의식같은 것을 가지고 대중 강연을 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런 면에서 둘은 아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대중 인문학의 측면에서 원하는 수요와 방향이 단순히 얄팍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담준론이 아니라 그러한 강연이나 책 등을 통해서 그날이 그날인 일상에서 ‘먹고사니즘’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사고를 통해 자기 삶을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고, 또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이런 책이나 영화 강연, 팟캐스트들을 통해 최소한의 지적 허영이라고 부릴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의미있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저는 정책적 차원에서 좀 더 생각해보자면, 아까 잠깐 얘기 하셨듯이 그동안 정부에서도 인문학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나름의 정책적 접근으로 BK 혹은 HK, 코어 산업, 인문학 융성 등 이러한 비교적 중장기 계획을 내놓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약간 용두사미로 진행된 경향이 있지만 어쨌든 그런 정책적인 흐름들이 있었어요.


   학제 개편의 차원에서는 각 대학들에서 교양 수업들을 교양 대학 체제로 전환을 하는 방식으로 많이 시도를 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그냥 교양과목 몇 개를 그냥 학과에서 맡아서 하고 있었는데 이제 교양대학으로 분리를 시키면서 기존의 인문학과가 했던 역할들을 모두 교양대학 체제의 교수들로 새롭게 뽑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교양대학 안의 교수진의 구성이 철학, 역사학, 국문학, 외국문학 등과 자연과학이나 매체 등 다양한 구성원이 다 섞여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제일 주목을 받았던 것이 경희대의 후마니타스칼리지 모델이예요. 나름대로 성공적인 인문학 교육 모델이라는 평을 받았고, 저도 거기서 강의를 했었어요. 그런데 2014년 말에서 2015년 넘어가는 즈음에 후마니타스에서 굉장히 많은 강사들을 한꺼번에 해고를 했고 많은 비판을 받았죠. 저도 그 중에 한 명이 되었었는데, 물론 그쪽에서는 교과 개편 과정에 맞추고 수요가 적은 수업을 필요한 정리를 했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교양대학 체제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좀 더 인문학적인 지식을 융합적인 형태로 전달했다는 측면에서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를 받았던 경희대마저도 사실 굉장히 문제적인 상황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그런 사태가 관리 주체 간의 알력이나 시간강사법의 도래를 대비한 포석이었다 이런 평가도 있었구요.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른다는 원래의 질적 측면의 목적마저도 체계성이나 지속성의 실패로 인해 훼손될 수밖에 없어요. 대학에서도 인문학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방어를 못했던 거예요. 해결을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엘리트주의적 차원 혹은 아카데믹한 차원에서도 인문학의 위기적인 국면들을 정책적으로 해결을 못했는데 대중적 차원의 질적 변화를 선도한다라는 것은 더 어불성설이죠. 그런 차원에서 대학도 못한 어떤 인문학의 자정 노력 같은 것이 실제로 대중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가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아까 김혜연 선생님이 강남에서 라틴어 수업이 유행한다는 재밌는 얘기를 하셨는데, 저도 그런 기사를 봤어요. 그런데 라틴어 수업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정말 라틴어를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틴어라는 웬만한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최상위 심급의 언어를 우리는 쓸 수 있다라는 기표를 얻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 자식들을 나중에 아이비리그 수준의 대학에 보내야하는데 거기에서 스펙용으로 희소성 있는 라틴어를 쳐준다는 거죠. 그러니까 수준이 올라간 게 아니고 이미 죽은 언어-사어(死語)를 남다르다는 기표로서 획득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적인 수준의 발달 차원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인문학이 대중화 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저열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대신 진지한 차원의 인문학은 현재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 같은 분야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존재하게 될 것 같습니다. 순문학이나 문사철 자체를 아카데미시즘으로 배우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 계속 살아갈 거예요, 굉장히 좁은 세계겠지만. 대신 일반 대중의 차원에서 인문학은 훨씬 얕고 넓게 퍼져 있어서 책, 영화, 강연, 예능, 콘텐츠 이런 식으로 계속 소비가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부분에 관해서 절망적인 생각보다는 어차피 옛날부터 그래왔던 게 아닐까(웃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아주 깊이 있는 진지한 차원의 책을 읽는 대중이 얼마나 됐었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DSC이종찬02811.jpg이종찬 : 인문학의 영역뿐 아니라 어떠한 공적 영역 속에서도 나름의 ‘노이즈’는 발생한다고 봐요. 그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열패감에 휩싸이는 것도 그리 생산적이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 시장 자본화, 자산화의 지표에서 역설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추세입니다. 청년 세대들이 이런 방식의 ‘인문학 아닌 인문학’을 소비하는 주체라고 보기도 하는데요. 고용 절벽 상황에서 일말의 가능성으로서 하나의 진입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자본력으로 인문학을 자산화하려는 청년들이 물론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은 청년들의 존재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지방대 강의를 꽤 했는데요. 소위 ‘지잡대’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그들은 사실 이들만큼의 ‘열정’도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그걸 가지고 비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의 풍경을 보면, 자존감이 굉장히 낮고 스스로 자학을 합니다. 일종의 유희 문화 같은 건데요. 이런 식입니다. ‘그래 봤자 지잡대인데요, 뭐.’ 인문학 열풍이라는 우리 사회의 담론적 현상이 어쩌면 일부분에 불과한 특정 국면만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김민섭 씨 케이스를 개인적으로 눈여겨보게 된 맥락도 그와 같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요청이나 필요라는 현상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강박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종로3가 돈의동에 쪽방촌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인문학 유관분야 전공자로서 모조리 깨져버리는 경험을 했어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학 아닌 것의 영역에 훨씬 가까워 보였어요. 인문학에 대한 강박을 가진 건 저를 포함한 내부자들의 시선일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도 마찬가지예요. 동자동 쪽방촌은 인문학 프로그램이 이보다 더 일찍 시작됐어요. 영상을 전공한 제 친구가 이 분들을 대상으로 다큐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이 친구의 말도 비슷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이런 측면에서 인문학의 과잉이라는 현상의 이면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계속-

 

 

작성일 : 2017.11.15
저자 소개  

김혜연(소설가), 이종찬(문화평론가), 이성혁(사회, 문학평론가), 이수향(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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