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기사[종합]
별점 평가
★★★★★★★☆☆☆
★★★★★★★★☆☆
★★★★★★★★★★
★★★★★★★★☆☆
★★★★★★★★★☆
★★★★★★★★☆☆
★★★★★★★★☆☆
위치 : HOME > 영화&드라마 > 영화 읽기
[임회록의 영화 사랑] 자본주의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 감독의 -<TOKYO!>(2008)


임회록(영화칼럼니스트)


   

   아주 오래 전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적이 있었다. 아마존의 열대 밀림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의 먹을 것을 자연에서 얻으며 생활하는 부족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의 밝은 웃음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잠시 가져 본 적이 있었다.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타자와 소통하는 지혜를 깨우친 그들의 모습에서 ‘소외’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한다면 도시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빌딩숲이라 일컬어지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자본주의 경쟁에 내몰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간다. 도시의 삭막함과 비정함을 전하는 뉴스가 연일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지만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지구상의 수많은 도시들 중에서 일본의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있다. 2008년 개봉한 <도쿄TOKYO!>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의 ‘스폰지’, 일본의 ‘비터즈 엔드’ 그리고 프랑스의 ‘꼼 데 시네마’가 공동제작하고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레오 까락스(Leos Carax), 봉준호 감독이 참여해 만들었다. 옴니버스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감독 자신들이 본 도쿄를 그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균질적이지 않다. 세 명의 감독들이 보여주는 도쿄의 다양한 모습을 그나마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것은 애니메이션으로 되어 있는 영화의 타이틀이다. 항공기 승무원의 안내방송과 함께 관객들을 도쿄로 데려가는 이 영화는 자동차의 경적소리, 군중의 웅성거림, 네온사인의 반짝임으로 도쿄의 이미지를 대신한다. 이 웅성거림과 현란함 속에서 도쿄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도쿄1movie_imageHU82D55J.jpg


   영화 상영의 순서를 바꿔 9년 만에 메가폰을 잡았다는 레오 까락스 감독의 <오물MERDE>(한국 상영 제목은 <광인>이다)을 먼저보자. 이 영화는 도시인들의 공포와 광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아가는 도쿄 사람들에게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만큼 공포스러운 것도 없다. 실제로 2008년 6월 도쿄의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서 비정규직 직원이 회사에서 해고되자 대낮에 길가는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이처럼 특정한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막역한 대상을 상대로 저질러지는 범죄만큼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도 없다. 레오 까락스의 <메르드>는 바로 이런 상황에 직면한 도시인들의 공포와 증오를 보여주는 영화다.


   도쿄 도시의 한 복판에서 맨홀 뚜껑을 열고 한 광인(드니 라방)이 등장한다. 이 빨간 머리 긴 수염을 한 외국인의 이름은 메르드(오물, 더 직접적으로는 ‘똥’이라는 뜻)이며 그는 도쿄의 지하 깊숙한 하수구를 집으로 삼고 있다. 메르드는 ‘일문자국’이라는 희귀한 국화꽃과 지폐를 주식으로 삼으며 도쿄 도심에 종종 출몰하여 도쿄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러던 어느 날 메르드는 하수구를 산책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쓰였던 전쟁 잔해들을 발견한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 전쟁 잔해들에서 우연히 수류탄을 발견한 메르드는 그 수류탄을 도시의 한복판에 무차별적으로 쏟아 붇는다. 수많은 사람이 살상되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어 공포에 휩싸인다. 메르드 때문에 빨간 수염의 외국인은 일본 전역에서 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증오에 찬 도쿄시민들은 메르드를 사형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메르드를 광적으로 신봉하는 단체가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레오 까락스 감독은 <메르드>를 통해 일본의 야만적인 역사의 흔적을 통해 도시인들의 공포와 증오, 광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 스스로도 말했듯이 이러한 공포와 광기는 도쿄가 아니더라도 대도시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도쿄’가 중요한 배경이 아니라 ‘도시’라는 배경이 더 중요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돌아가서 첫 번째 영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인테리어디자인(INTERIOR DESIGN)>(한국상영 제목은 <아키라와 히로코>이다)을 살펴보자. 미셸 공드리 감독의 여자친구인 가브리엘 벨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성공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아키라(카세 료)와 그의 여자친구 히로코(후지타니 아야코)를 도쿄에서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비다. 빗속을 뚫고 친구 아케미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 히로코는 아키라와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도쿄의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닌다. 그러나 부족한 예산과 도쿄의 살인적인 물가 탓에 부동산 중개인이 보여주는 방들은 하나같이 히로코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집세가 턱없이 비싸거나 젊은 커플들에게 인기 있다는 방의 창밖에는 고양이 시체가 널려있거나, 어두컴컴하고 좁디좁은 방에는 벼룩과 동거해야 할 처지다. 결국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지 못한 히로코는 아키라와 함께 친구 아케미의 집에서 계속 신세질 수밖에 없다. 집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정체성의 토대가 되는 곳이다. 그래서 히로코가 자신이 거주할 집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가 거주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꿈과 포부가 큰 아키라는 ‘도쿄’를 자신의 거처로 생각한다. 때문에 아키라는 자기가 만든 영화를 통해 “세상에 대해 자기 존재를 정의”하려고 한다. 하지만 히로코는 아키라의 여자친구로 자신의 존재를 한정함으로써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도쿄2movie_image.jpg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사는 것은 어렵다 못해 힘들다. 이처럼 대도시 도쿄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타인과의 소통을 단절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자신을 가둬버린 또 한명의 인물이 있다. 세 번째 영화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SHAKING TOKYO>는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린 히키코모리를 주인공으로 해서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히키코모리는 사전적으로는 ‘들어박히다’, ‘들어앉다’라는 뜻으로 오랜 시간 타인과의 접촉 없이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일반적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 스스로 갇혀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햇볕과 사람들과의 접촉이 싫어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11년째 생활하고 있다. 외부와의 모든 소통과 접촉을 거부한 주인공(카가와 테루유키)은 아버지가 매달 보내주시는 돈과 집안에 있는 전화로 생활하고 있다. 대도시에선 전화 한통이면 필요한 물건을 얼마든지 주문하고 배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 집에 물건을 배달하러오는 배달원과도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 어느 날 피자 배달부의 카터벨트를 보고 그는 본능적으로 배달부(아오이 유우)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 후 주인공은 배달부의 얼굴을 다시 보기위해 피자를 주문하지만 다른 배달부로부터 그녀가 히키코모리가 되어 집안에 은둔해 버렸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집을 나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주인공은 과감히 햇볕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모두 히키코모리가 되어 집안으로 들어간 때문인지 11년 만에 집밖으로 나온 주인공의 눈앞에 펼쳐진 대 낯의 도심은 인기척이라곤 없다. 텅 빈 도시를 질주하여 주인공은 팔에 버튼을 그려 넣고 있는 그녀의 집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자신의 몸에 감정(히스테리, 글루미, 러브 등)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버튼을 직접 그려 넣는 것은 다른 사람과 그러한 감정을 소통하고 싶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두렵고 힘들어서 결국 자기 자신에게 버튼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기만의 세계로 도망치려는 것이다. 하지만 11년간 히키코모리로 살았던 주인공은 자신만의 세계로 도망치려는 그녀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인가를 잘 알기 때문에 그녀를 필사적으로 집밖으로 데리고 나오려한다. 도쿄의 지리적인 특징인 지진을 중요한 소재로 사용한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는 우리의 삶에서 타자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영화다. 


   이처럼 이 세편의 영화는 공통된 주제 아래 만들어졌다기보다는 감독들의 각자 취향과 관심에 따라 ‘도쿄’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영화이다. 세 편의 영화는 어쩌면 ‘도쿄’라는 실체보다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느끼는 ‘공포’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인테리어디자인>은 인간 존재에 대한 공포이고, 레오 까락스 감독의 <메르드>는 타인의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인해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 즉,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범죄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 때문에 느끼는 공포와 광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는 번잡한 도시의 삶에서 도망쳐 혼자만의 세계에 안주하는 히키코모리를 통해 소통이 부재한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포스러운지를 보여준다. 결국 세 편의 영화는 ‘도쿄’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영화의 배경이 ‘도쿄’여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인 것이다.




 

작성일 : 2018.04.12
저자 소개  

임회록
영화 칼럼니스트.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이야기로 된 것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지만 특히 범죄서사물을 즐겨 본다. 최근에 쓴 글로는 "'달맞이 언덕'의 하드보일드 잔혹서사", "말하기 시작하는 몸" 등이 있다. fox_1002@hanmail.net
[댓글]
⊙ 이름
⊙ 비밀번호
⊙ 이메일
댓글 남기기
비판적 문화 공동체 웹진 [문화 다]   |   www.munhwada.net(또는 com)
문화다북스 대표 강소현   |   웹진 <문화 다> 편집인 최강민, 편집주간 이성혁   |   사업자번호 271-91-00333
[웹진 문화다 / 문화다북스] 연락처 : 02-6335-0905   |   이메일 : munhwada@naver.com
Copyright ⓒ 2012 Webzine Munhwad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