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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의 영화 호출] 삶과 죽음에 대한 역사적 물음

-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2017)

이승현(영화평론가)



   최근 극장가의 흥행 성적이 눈에 띨 정도로 묘하다. 개봉 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아이 캔 스피크>와 <범죄도시>가 예상외의 인기를 얻었던 반면에,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남한산성>은 성공적인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물론 이들 영화의 흥행 성적이 한국영화의 부진이나 이상 징후를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두 영화는 그 시작부터 어딘가 유사한 점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원작 소설이 있다는 점이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작가의 유명세나 원작 소설의 완성도에 있어 이미 주목받은 작품들이었다. 여러 가지로 성공한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용이하지만, 원작의 완성도가 오히려 개별 작품이 되어야 할 영화에 대한 비판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원작이 있는 영화의 특징을 잘 알면서도 오히려 이 글은 개별 작품으로서 영화 <남한산성>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여 다루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단 본격적인 비교는 보다 많은 분량을 요할뿐더러, 원작과의 비교나 극장가의 상황에 대한 분석이 이 영화가 놓인 위치를 더 잘 보여줄 수는 있다고 해도, 개별 영화가 가진 특징을 부각시키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작 소설을 떠나 영화 <남한산성>에 주목함으로써 영화가 자체가 가진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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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남한산성>은 초기부터 주목을 받는 영화였다. 김훈의 원작 소설이 가지는 유명세가 영화에 대한 인기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겠지만, 영화의 화려한 출연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등 한국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주연급의 남자배우들이 많이 포진했다. 거기다 배경음악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카모토 류이치가 참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그만큼 완성도 있는 구성 요소들이 결합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탄탄한 기초는 스크린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는 자막과 함께 두 신하의 서로 다른 성격이 부각되면서 영화는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청의 군대와 홀로 마주하고 있는 최명길(이병헌 분)의 앞에 그를 위협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가 쏜 화살이 쏟아진다. 이어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이어 등장한 김상헌(김윤석 분)은 얼어붙은 강 위를 한 노인과 걷고 있다. 강 위의 얼음길을 안내하는 노인에게 김상헌은 손녀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가자고 몇 번 말하지만 노인은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김상헌은 이내 돌아서는 노인을 칼로 베어 죽인다. 영화 제목이 보이기 전까지 그려지는 이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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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청과의 화친을 통해서라도 살 길을 찾고자 하는 최명길과 죽을지언정 끝까지 항전하고자 하는 김상헌의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럼에도 이들의 대립이 인물 중심으로만 흐르거나 심리적인 묘사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는 이미 영화의 시작과 함께 감지된다. 엄청난 수의 청군과 최명길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은 이 영화가 사극이면서도 전쟁을 기반으로 한 블록버스터급의 영상을 보여주리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김상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다르지 않다. 얼어붙은 강 위에 눈이 내리는 장면은 아름답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전쟁이라는 극적인 상황 그리고 눈이 내리는 풍경과 그 속의 산성은 서로 이질적이면서도 강력한 영화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남한산성>이 특별히 반전을 가진 영화가 아니며 누구나 알 수 있는 결말로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자칫 지루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마치 책과 같이 장를 나누고 그 장마다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을 꼽꼽하게 따라가는 동시에, 중간 중간 볼거리로서의 에피소드를 삽입함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찾아간다. 물론 영화가 청과의 전쟁 장면에 집중하지 않고 전쟁이라는 상황을 영화의 후면에 배치한다는 점에서 흔한 전쟁영화를 예상한 관객의 기대를 배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이 맞서고 칼과 총이 부딪치는 전쟁 장면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삶을 대면하는가의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 때문인지 조선과 청의 관계를 단순히 이분법으로 선악의 구도로 나누지 않는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가 조선과 대립하는 청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칸이나 용골대로 대표되는 청나라 군대는 조선을 침략한 절대적인 악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목적이나 계획에 맞게 자신들의 일을 할뿐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청군은 매우 객관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칸의 인식을 통해 드러난다. 명 황제를 위한 새해 의식을 치르는 조선 조정을 향해 칸은 자신들을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포를 쏘려는 용골대를 만류한다. 오히려 어떤 장면에서는 청과 비교하여 조선이 더욱 나쁜 국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용골대와 함께 역관으로 등장하는 정명수(조우진 분)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김류(송영창 분)가 그에게 ‘조선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자, 정명수는 자신이 노비 출신이며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 아니니 자신에게 다시는 ‘조선사람’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남한산성>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조선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인간을 살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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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남한산성>이 선입견에 벗어나 인간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미덕을 가진 영화라고 해도, 주제를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내재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후경화되어버린 조선의 민중들이다. 영화에서 조선의 민중들은 마치 청군이 아니라 조선의 대신들과 싸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날쇠(고수 분)의 요청으로 김상헌이 병사들의 추위를 막기 위해 가마니를 나누어 주었지만, 말들이 굶주리자 나누어 주었던 가마니뿐만 아니라 초가의 볏짚까지 말먹이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내 말들이 죽고, 죽은 말은 병사들에게 고기로 제공된다. 이러한 상황에게 순찰을 나온 김류를 병사들은 조롱하기까지 한다. 또한 최명길과 김류가 청군의 진영에 다녀온 후 조선은 선공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성에서 나선 병사들이 머뭇거리자 김류는 앞으로 나아가라며 부관으로 하여금 뒤에 있는 병사들부터 칼로 베도록 지시한다. 이렇듯 영화 속에 민중들의 처참한 삶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주체적으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는 민중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날쇠와 칠복(이다윗 분)을 내세운다. 이미 정묘호란으로 가족들을 잃은 두 사람은 김상헌에게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전쟁으로 가족들을 잃고 고향을 떠났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명이나 청과 같은 전쟁의 명분은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마치 청군이라는 배경처럼 남한산성에 있는 하나의 배경처럼 느껴질 뿐이다. 날쇠와 칠복은 김상헌에게만 그들의 뜻을 전할 뿐이다. 화친을 이야기하는 최명길도 살기를 바란다는 인조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뜻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의 그들 나름의 신념을 통해 남한산성이라는 공간 속에서 청군이라는 죽음을 그림자는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 노인을 살해했던 김상헌의 변화는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보여질 수도 있다. 노인의 손녀인 나루를 보살피고 날쇠와 칠복이를 대면하면서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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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최명길은 김상헌에게 다시 조정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삶과 죽음의 길에 대해 논한다. 최명길은 살아야만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있다며 삶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말한다. 이에 김상헌은 그것이 백성의 길인지 임금의 길인지를 묻는다. 최명길이 함께 걸어갈 길이라고 말하자, 김상헌은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 속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김상헌의 답을 통해 보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보았던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날쇠와 칠복 그리고 나루를 만나면서 달라졌다고 하겠다. 나루를 날쇠에게 맡기면서 먼저 절을 하는 그의 모습이 그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민중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또다시 김상헌이라는 다른 목소리를 통해 최명길에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민중들의 목소리가 이처럼 후경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극의 중심적인 갈등에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쟁에 나서거나 격서를 전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날쇠를 통해 드러내지만, 이는 조선 관료들의 무능함과 민중들과 동떨어진 그들의 신념을 부각시킬 뿐 그들을 반성케하는 원인이 되지는 못한다.


   물론 영화 <남한산성>은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크린에 보이는 장면이 그러했고,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러했으며, 배우들의 연기가 그러했다. 그러나 영화가 전쟁 속에서 삶과 죽음을 묻는다면, 그 역사적 질문은 어딘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그들의 신념을 고려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지만, 영화 내내 답답했다. 오히려 관객의 입장에서 더 쉽게 동일시가 될 수 있는 날쇠는 사건의 중요한 대목에서 기능적으로 등장하거나, 삶에 대해 이미 통달한 인물처럼 보였다. 영화는 분명 역사적 사건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하고 있다.


  그러나 극중에 부딪히는 인물들의 신념은 왕과 조정이라는 당대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역사라는 관점에서 당대를 이해한다면, 이들의 신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현재의 서사로서 치환될 때 온전히 객관적인 역사로 존재할 수 없듯이, 그것을 호출하는 이들의 인식은 현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한산성>과 같이 역사적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영화는 그 물음이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의 메시지는 그저 하나의 문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별점

 대중성

  6점.jpg

 평균

 최종 별점

 예술성

   8점.jpg

7.0

8.0

 

 

작성일 : 2017.10.31
저자 소개  

이승현
1979년생. 영화평론가. 편집동인.
201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so-lsh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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