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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욱의 영화 현장] 놓치고 싶지는 않은 쿠스투리차의 영화 인덱스

-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의 <아리조나 드림>(1993)


장지욱(영화평론가)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의 <아리조나 드림>(1993)은 현실에 갈증을 느끼는 인물들이 저마다 지닌 꿈을 쫓고 동시에 욕망의 관계도로 얽혀 갈등을 만들어 낸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오가고 서사와 감정의 변주가 자아내는 블랙유머 등 쿠스투리차 감독 특유의 화법과 스타일은 이 영화에서도 계속된다.


   주인공 액셀(조니 뎁)은 뉴욕에서 물고기를 연구하며 산다. 어느 날 삼촌의 결혼식에 데려가기 위해 찾아 온 레거에 끌려 액셀은 아리조나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액셀은 엘레인과 그레이스 모녀를 만나고 서로 간에 꿈과 욕망이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중심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혹여나 이게 무슨 이야기냐 의문이라면 쿠스투리차의 영화에서 줄거리에는 연연하지 않길 바라는 바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이 작품도 서사는 하늘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흔히 말하는 ‘산으로 간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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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방식으로 쿠스투리차 영화의 내용을 요약하려 하면 한편으론 영화 줄거리가 허무맹랑하게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영화를 보다보면 왜? 라는 질문이 나오거나 갑작스런 전환과 진행에 갸우뚱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경험한다. 개연성을 뒷받침 해 공감을 유도하는 보편적인 서사 방식을 쿠스투리차 감독은 선호하지 않는다. 쿠스투리차 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소위 논리적 허술함이나 보편적인 교감이 부족한 서사의 공백을 특유의 에너지로 채우려 한다. 그런 그가 선택하는 방법은 마술이다. 마술은 다른 말로 판타지다. 그러나 단순히 판타지라고 부연하기엔 어딘가 아쉽다. 평단에서 말하는 마술적 리얼리즘, 판타지와 리얼리즘이 공존하는 특별한 세계. 마술과 리얼리즘을 결합한 이 아이러니는 현실이란 축에서 뛰어 오른 최고치의 상상계와 판타지란 축에서 내려앉은 최저치의 리얼리즘이 마주하는 어느 자리에 위치하는, 둘은 닿지는 않아 그 간극을 부유(浮遊)하는 것, 그것이 쿠스투리차의 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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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조나 드림>에서도 쿠스투리차의 마술은 계속된다. 풍선과 트럭, 넙치 등 막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쇼트들이 공중부양으로 세계를 부유한다. 그런데 <아리조나 드림>에서는 쿠스투리차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시도가 엿보인다. 서사 구조 안에서 판타지의 활용은 쿠스투리차 감독만의 고유한 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아리조나 드림>에서는 그 표현에 있어서 여러 영화들을 인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대표적인 장면이 하늘을 부유하는 빨간 풍선이다. 이는 알베르 라모리스의 단편영화 <빨간 풍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 보다 전, 영화의 인트로에 등장한 알레스카 원주민에 대한 액셀의 꿈 장면에서 정박된 배 이름은 다름 아닌 나누크이다. 로버트 플라어티의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다. 영화배우를 꿈꾸는 레거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나 <대부>의 대사를 통째 외우는 장면부터는 노골적인 수준이다. 그 중 압권은 엘레인이 경비행기를 조종하면서 레거에게 위협적으로 접근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해당 장면을 옮겨왔다. 이쯤 되면 죽은 레오를 실고 달리던 앰뷸런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E.T>를 떠올리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이제 궁금한 것은 쿠스투리차 감독이 삽입한 일련의 영화들에 대해 그가 가지는 태도나 입장이다. 이들 영화가 그가 애호하는 감독이나 작품들의 열전인지 아니면 작품 내용과 의미적으로 부합하고자 한 인용인지. 하지만 <아리조나 드림>에 나오는 영화 속 영화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 쿠스투리차는 모호하게 두었다.


   다시 그의 영화 속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공중부양하는 생선을 떠올린다. 아름다웠던 빨간 풍선도 다시 떠올린다. 액셀과 엘레인, 그레이스, 로거 이들은 모두 부유하는 인물들이다. 각자 삶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꿈을 꾸지만 어떤 성과도 결과도 보지 못하고 그 과정 속에서 일희일비 허우적대는 군상들이다. 인과와 목표, 결과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방랑자들. 같이 있는 것이 고통이기도 하지만 같이 있는 것이 위로이기도 한. 그래서 엘레인은 기차를 타고 싶었다가 비행기를 타기로 변덕을 부리고, 액셀은 그런 엘레인의 뜻대로 표를 바꾸고 그 와중에 새엄마 엘레인의 연인인 액셀을 그레이스는 사랑하고, 그 사랑은 액셀에도 와 닿고 그렇게 천둥이 치고 벼락이 치는 어느 날에 그레이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부유하는 군상들을 보듬는 감독의 마술은 늘 그래왔듯 원인이나 결과가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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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쿠스투리차의 스타일에 비추어 볼 때, <아리조나 드림>에서 여러 영화들의 인용은 무엇을 위한, 무엇에 의한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에게 어떤 ‘영향’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에너지인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그렇듯이. <아리조나 드림>에 나오는 많은 영화들이 쿠스투리차에게 어떤 의미이거나 호불호 어느 쪽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가 나열한 영화들은 그에게 어떤 ‘영향’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쿠스투리차의 ‘영화적 자의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영향 아래 놓인 군상들, 액셀의 삼촌 레오에게 캐딜락이, 일레인에게 비행기가, 그 연장선에서 쿠스투리차에게는 영화가 있다. <아리조나 드림>은 쿠스투리차를 공중부양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인덱스가 아닐까.


   <아리조나 드림>은 전작인 <아빠는 출장중>(1985)과 <집시의 시간>(1989)으로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던 명성에 비견되지는 못하는 작품이다. 이유야 뭐가 됐건 이후 작품인 <언더그라운드>(1995) 만큼의 화제성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놓치기 아쉬운 이유는 쿠스투리차에게 다가왔던 영화들, 그 인덱스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르도 성격도 제각각인 일련의 영화들이 쿠스투리차에게 선사한 영향의 결과로서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본다.         




별점

 대중성

6점.jpg

 평균

 최종 별점

 예술성

     7점.jpg

6.5

7.0


 

 

 

작성일 : 2017.09.13
저자 소개  

장지욱
영화평론가.
 2015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 수상. 부산대학교 예술학 석사 수료(영상학 전공) .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jiouk@filmbus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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