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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의 문학시론] 우리 애들이 달라졌어요

― 아동문학의 사회적 조건들의 변화


김혜연(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난 절대로 작은 인간이 아니었다. 난 평생 동안 항상 큰 사람이었어. 그리고 난 왜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 수 없는지 이해가 안 돼."
   

   "하지만 틀림없이 태어날 때는 아기였을 거 아녜요."

 

   "내가 아기라고? 어떻게 감히 나한테 그런 소릴 지껄일 수 있어? 건방진 놈! 뻔뻔스럽고 오만한 놈! 네 이름이 뭐야?" - 로알드 달, <마틸다> 중


   얼마 전 중학교 남학생 십여 명이 여성 교사 수업 시간에 다같이 자위행위를 하다가 들킨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언론에 보도된 교사들의 간담회에서 이 사건은 교권 추락이라기보다는 젠더 권력이라는 결론이었다. (한국일보, <여교사 성희롱하는 우리 반 ‘일진’, 어떻게 할까요>, 2017. 7.15) 만약 비슷한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해 학생들은 즉각 귀가 조치 후 교장이 허가할 때까지 등교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와 이웃, 동료 학생들을 포함한 집단 상담이 이루어지고 수업을 진행한 교사는 피해자로 간주되어 해당 서비스를 받을 것이다. 가해 학생들이 전학 처분을 받게 될 수 있다. 마을과 마을 사이가 대단히 떨어진 미국에서 전학은 사실상 등하교가 불가능한 조처가 될 확률이 높다.


   중재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피해 교사가 퇴직한 다음 부모들에게 고액의 민사 소송을 걸 수도 있다. 가해 학생들이 십여 명이니 잘만 하면 평생 먹고살 금액의 손배상금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 그런 처리가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일단 청와대 행정관으로 앉아 있다는 양반부터 학창 시절 여성 교사를 보며 성적 판타지를 키웠다는 말을 무려 책에다(!) 써서 남기는 사람이니 말이다. 수업 시간에 자위 공모(?)를 벌인 남학생들이 그 행정관의 책이 보도된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을지 궁금하다. 역시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마시는 법이 아니다.


   원래 아동문학은 근대 사회가 발달하면서 가정에 머무르는 아이들을 한데 모아 근대 사회에 걸맞는 도시 노동자로 키워내기 시작한 사회적 조건에서 생겨난 문학이다. 전통 사회에서 아이들은 덩치만 작은 어른이었지만 근대 사회에선 그 위상이 달라졌다. 근대 사회의 어린이란 순수하고, 감수성 예민하고 연약하고 지식도 정보도 경험도 부족하다. 그러니 어른들의 지도가 꼭 필요한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근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틀거리가 흔들리는 현대 사회에서 어린이 또한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존재들이 아니다. 어린이도 미디어 등을 통해 유무형의 권력을 이용하고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미성년자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 형법의 취지는 미성년자가 본인 행동의 의미를 잘 모르거나 책임질 수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상당히 높은 지식과 정보가 유통되는 사회에서 모든 미성년자가 무조건 성년자보다 미숙하다는 가정은 현실과 좀처럼 들어맞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얼마 전 한 고등학생이 학교 폭력을 행사했다가 퇴학을 당한 뒤 복교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학교 교장은 피해자의 권리를 들어 법원 결정을 거부했다.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도 아닌데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십대 후반의 고등학생이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가해 학생이 아는 것은 한국에서 사람을 때려도 별 탈이 없다는 것일 게다. 비슷한 사건이 서구 사회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엄청난 금액이 걸린 소송전이 오가고 가해 학생이 학교 졸업장 받는 것은 거의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자주 서구 교육의 개방성과 창의성을 부러워하지만, 그와 동시에 타인에 피해를 주는 행위는 가차없이 처분하는 원칙은 잘 보지 못한다. 많은 부모들이 한국의 교육 환경을 한탄하며 이민을 가지만 ‘정’도 없고 ‘유도리’는 더욱 없는 선진국 교육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여교사스틸movie_imageVFT5SZPQ.jpg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2015) 스틸 사진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하기 쉽지 않고 피해를 당해도 보호하지 못하는 처지가 지금의 한국 사회다. 그렇다고 저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내버려두기엔 왠지 불안하다. 그 불안에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뒀다가 어른 체면이 상할 것 같은 두려움이 깔려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사회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방식 아동문학이 처음 태동하던 시절에 생겨났던 몇백 년 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 형법대로, 미성년자는 미숙하고 연약하므로 자기 행동의 의미를 모르고 책임도 질 수 없을까? 정말 그럴까. 비록 미성년자가 성인과 똑같은 책임을 질 수는 없을지라도 자기 능력의 한계 안에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 사회에서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교사의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타인에 피해를 주는 행위를 저지르면 전학이나 퇴학을 시킨다. 물론 민사 소송은 따로 이루어진다. 학생으로서 질 수 있는 책임을 지게끔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가해 학생의 퇴학 등의 조처가 가혹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본인의 능력 범위 안에서 책임지게끔 하는 조처와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가 없게 하는 조처 중 어느 것이 과연 가혹한 것일까.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로 한국 사회가 아이들을 ‘과보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동문학은 아이들의 순수성과 연약성을 호소하는 대신 폭발하는 근대 사회의 대표적 약자로서 아이들을 자리매김함으로써 현대 문학의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아동문학은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려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아이들을 “어른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 없는” 상태에 묶어두는 것이야말로 진정 학대이다. 한국에서 “대학 가면 모든 게 해결되니 그때까진 아무것도 스스로 할 필요가 없다”는 핑계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순치시켜 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대학가 봤자 별거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 결과 한국 아이들은 어른 되기 전까지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 덜컥 스무 살이 되면 뭐든지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갑자기 변모할까? 인간은 연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책임감 있는 어른 되기도 마찬가지다.





작성일 : 2017.07.07
저자 소개  

김혜연
1980년생. 문화 칼럼니스트. 소설가.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박사 졸업. 아동문학 계간지 <어린이책 이야기> 2017년 봄호를 통해 등단. 저서로 『동화, 영혼의 성장』, 경향신문 영화소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연재(2005), 대중음악 웹진 음악취향Y 필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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