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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문학 쟁점]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의 절망

협의와 계약() 없는 관계의 미래 

  김필남(영화평론가)

 

사건은 지난해 1220,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이하 오문비’)이 한국문화예술위원의 ‘2016년 문예지우수콘텐츠아카이빙사업에 선정되면서 발생한다. 이 사업은 사업주체가 별도의 신청서를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위원들이 전체 1,761건의 콘텐츠를 검토·심사·선정했다. 그 결과 총 44종 문예지의 콘텐츠 507건을 선정해 기본지원금 300만원과 건당 42만원의 아카이빙 구축활용 권한구입비가 지급되었다. 오문비는 18건의 콘텐츠가 선정되어 1,056만원을 발간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 이번 호 원고료를 충당하는 것도 버거운 오문비에 고맙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원금 문의를 위해 담당직원에게 연락을 취하며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오늘의문예비평은 선정발표가 난 바로 다음날(12/21) 지원금 1,056만원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지원금 포기결정은 산지니 출판사(이하 산지니’) 측에서 내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담당부서는 2015년 오문비를 발간한 출판사로 개별연락을 취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이 사건이 문제적인 것은 오문비 편집위원들이 사업선정과 포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데 있다. 오문비 손남훈 주간은 곧바로 산지니 강수걸 대표와 통화를 했고, 대표는 2015년 오문비의 발행인편집인이었기에 결정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발행인·편집인이라는 직함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산지니로부터 들은 유일한 말(통보)이다.

 

이미 언론매체에서 여러 번 보도되었듯 오문비는 26년 동안 폐간의 위기를 수차례 겪었다. 이명박 정권(2009)부터 문예지 지원금은 눈에 띠게 삭감되었으며 문예지의 위기를 초래했고, 2014년부터는 우수문예지 정책이 갑작스레 변경되면서 지원금 자체가 사라졌다. 자금부족 현상이 길어지자 편집위원들은 폐간이나 휴간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문비 존폐여부는 편집위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선배평론가들의 열정, 적자를 감내하고 발간을 맡은 지역의 출판사들(지평, 세종, 책읽는사람, 해성, 책읽는저녁, 공급처 도서출판 전망), 이제껏 잡지를 읽어온 독자들에게 그 몫이 있는, ‘지역 공동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역의 도움을 통해 오문비를 만들 수 있었다고 믿기에 이를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으로 환원하거나 소유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산지니의 지원금 포기 결정은 오문비를 출판사의 소유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도 오문비의 열악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출판사가 내린 결정이라는 데서 분노와 절망을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편집위원들은 이 사건이 발생하고 2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역 출판업계 한 관계자는 "지역을 대표하는 출판사와 잡지가 대립하는 모습은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우선 양 측이 만나 그동안 쌓인 앙금과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일보>, 2017.01.23.)

 

  이런 상황에서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위의 기사처럼 이번 사건을 산지니와 오문비 편집위원들의 대립(‘오래된 앙금’)으로 치부하거나, 출판법(발행인편집인이 강수걸 대표이기에 오문비가 산지니출판사에 귀속되어 있다?!)에 문제가 없는데도 이를 사건화하면서, 지역 출판사를 괴롭히는 행위쯤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는 법적 문제로 시시비비를 따질 사안도, 인간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도 아니다. 5년이 넘게 함께잡지를 만들어 온 출판사의 단독적 결정, 지역출판사-문예지 편집진 간의 관계의 허약성을 보여주는 사례임을 알리려는 의도이다

 

오문비 편집위원들이 이 사건을 공론화 하려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부산을 대표하는 출판사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산지니가 오문비에 지원된 지원금 1,056만원을 포기한 경위와 공식적인 사과를 받기 위해서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우리는 산지니 대표에게 메일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고 여러 매체를 통해 사과를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둘째, 이번 사건은 지역-출판-작가의 상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예이기도 하다. 즉 산지니의 지원금 포기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지만, 지역 출판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절차와 합리성을 따르지 않는 모습을 확인시켰다는 데서 공론화 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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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비와 산지니는 계약서를 쓰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문예지를 함께만들었다. 사실 오문비는 순수문학 없이 비평으로만 채워졌기에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오문비의 발간은 출판사의 적자를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적자일지도 모를 오문비의 발간을 도운 산지니가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편집위원들은 2010년 말 해성출판사에서 산지니로 옮기는 과정에서 산지니와 계약서를 작성하는 문제를 두고 장시간 논의했다.

 

우리는 계약서에 발간기간과 출판비용금액 등을 정확히 명시해야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무한정 산지니에 문예지 발간이라는 책임을 지우는 것도 문제적이라고 생각했기에, 계약기간을 통해 떠나거나 남는 등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계약서를 작성하면 출판(제작)비용의 조율 등의 논의를 공식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적자가 분명한 문예지의 발간을 돕는 출판사의 입장에서 계약서는 불필요했을지 모른다. 당시 대표는 신뢰를 바탕으로 발간을 맡는 것이라 계약서는 쓸 수 없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금액은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문예지지원금의 절반과 출판비용의 일부를 출판사에 지급하고, 원고료는 편집위원 측에서 책임을 진다는 구두계약을 맺었다. 발행인(2015년 발행인 및 편집인을 맡음)은 강수걸 대표로 출판(제작, 편집, 디자인, 인쇄 등) 전반을, 편집권(기획)은 오문비 편집위에서 도맡았다. 이는 오문비 편집위원과 출판사가 이원화 체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26년이라는 시간동안 오문비의 발행인이나 편집인들이 출판이나 기획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오문비의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사적소유물로 이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는 오문비 발간을 맡았던 지역 출판사와 선배세대의 편집위원들이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오문비에서는 출판사-편집위원의 관계와 역할이 어느 한 쪽에 종속되지 않음을, 철저히 이원화 체제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산지니는 오문비 발간에 힘썼지만, 자본의 문제와 입장 차이로 끝내 결별한다.

 

굳이 오래 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계약서를 쓰지 않은 우리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음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오문비 편집위원들은 발행인편집인의 이름이 가지는 입장이나 위치에 대해 충분히 상의하고 이해했어야 했고, 오문비를 출판사의 소유물로 여길 수 없음을 자료로 남겼어야 했다, 출판에 사용한 전체 금액이 얼마인지 오문비 편집위도 알고 있어야 했다. 발행인편집인이 왜 필자들의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어야 했다. 딱딱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출판사의 노고를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한 우리의 미숙함이 뼈아프다.

 

그런데 이 문제는 오문비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가-지역 출판사 사이에도 대체로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계약()없는 계약’(구두계약)으로 책의 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작가를 만난 적이 있으며, 발간 후에는 인세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보았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열악한 출판사 사정을 고려해 인세를 쉽게 포기하거나, 인세의 지불날짜를 먼저묻지 못한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지 못함으로써 작가는 결국 의 위치에 서게 된다. 작가와 출판사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고, 지역 출판의 발전을 저해하는 지점이다.

 

오문비 또한 계약서 작성을 간과했다. 오문비를 가장 오래 발간한 세종출판사의 경우 출판비와 원고료를 모두 책임졌기에 계약서를 쓸 필요가 없었고, 2003년부터 우수문예지선정이 되면서 관례처럼 출판사에 지원금 절반을 보냈고, 그 절반은 원고료로 사용해왔다. 암묵적, 인간적 관계 때문에 계약서는 쓰지 않거나 못했으며, 남은 건 결국 각기 다른 기억과 잡지의 처음과 마지막 장에 적혀있는 발행인편집인의 이름뿐이다. 현실의 논리에서 중요한 건 기억과 인정이 아니라, ‘활자였다

 

한 권의 책이 작가-출판사-독자와의 협업 관계에서 완성 가능한 것처럼 산지니가 지역을 대표하는 출판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출판사 대표와 직원들의 노력으로만은 불가능하다. 지역의 작가들, 오늘의문예비평이라는 비평 브랜드도 한 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오문비의 지속 또한 산지니를 포함한 지평, 세종, 책읽는사람, 해성, 책읽는저녁이라는 지역의 출판사, 공급처 도서출판 전망 등의 희생에 가까운 도움 덕분에 가능했다. 또 정부지원금, 독자들, 후원자들, 그리고 필자들의 노고도 잊을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산지니는 생각해야 한다. 왜 지역에서 오문비를 지역 공동의 자산이라고 부르는지, 오문비를 진정 산지니의 이라고 주장 할 수 있는지 말이다.

  

현재 송인서적 부도로 피해를 본 산지니는 출판유통구조의 병폐에 대해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책의 발간 여부를 선택·결정할 수 있는 지역의 영향력 있는 출판사가 출판비용 부족으로 한 호 한 호 어렵게 잡지를 발간하는 오문비에 1,056만원이라는 거금을 오문비 편집위원들과 상의도 없이 포기한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나? 산지니 출판사는 오문비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좋은 문예지를 함께 만들자던 그 (계약서 없는) 약속들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산지니가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출판사임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힘이 건강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뻗어갈 수 있기를, 지역출판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으로 쓰이길 바란다. 비록, 오늘 이 글은 절망에서 쓰였지만 말이다.

 

덧붙여, 오문비 편집위원들은 산지니 출판사로부터 공식사과를 받는 그날까지 문제제기를 할 것임을 밝힌다.

 

 

 

 

 

 

 

이 글은 격월간 <함께가는 예술인>(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산지부) 2월호에 수록된 글을 수정·보완했음을 밝힙니다

 

 

작성일 : 2017.03.23
저자 소개  

김필남
1981년생. 영화평론가.
비정규직 노동자. 현재 <지하생활자> 공동운영위원,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 feel456@hanm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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