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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의 서도락(書道樂)] ‘향기’의 영향력과 전위정신의 현재화

― 오길영 평론집 『힘의 포획 : 감응의 시민문학을 위하여』(2015)를 읽고 

 

김지윤(문학평론가)

 

            
   오길영은 최근 발간한 평론집 『힘의 포획: 감응의 시민문학을 위하여』 (산지니, 2015)에서 ‘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가 서문에서 ‘향기’를 먼저 언급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예술의 본질은 그것이 전하는 ‘향기’에 있으며 “향기의 영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향기’는 독자/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욕망’ 때문에 ‘힘’이 된다. 그는 ‘향기의 영향력’을 “작품의 감응이나 글쓰기의 유물론이라는 개념으로 이 책에서 설명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감각을 통해 무언가 변화시킬 수 있는 추동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감각은 역동성을 촉발하므로 ‘살아있음’과 관련된다. 오길영은 ‘감응’을 말한다. 감각을 통해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감응’일 터인데 그 감응의 주체를 ‘시민’에 놓고 있다. 그는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와 혼란스럽게 착종된 한국의 상황은 정치적. 경제적 근대화의 미흡함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근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문화적 근대화의 심각한 지체현상, 성숙한 시민문화와 시민문화의 빈곤함이 더욱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10쪽)고 판단한다.

 

   그는 시대의 결핍을 ‘갱신된 시민문화’로 채우려고 하는데 그의 논의에서 찾을 수 있는 빛남은 그가 작금의 문제를 ‘지금 이곳’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대응방식으로서 해결하기 위해 현재적 시점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그는 시인은 “불화의 정치학을 수행하는 자”라는 진은영의 정의에 공감하면서도 우리가 김수영에게서 그 불화의 정신을 배워올 수는 있지만 ‘김수영의 현재성을 논의한다는 것이 그를 반복적으로 불러내 되풀이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되며 “김수영을 변화 없이 연장하고 반복하거나 복원하는 데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43쪽)라는 점을 확실하게 천명하고 있다. 요는 ‘문학의 전위성을 새롭게 벼리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의 전위정신을 배워서, 변형시켜, 차이를 만들어, 지금, 이곳에서 실천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김수영이 되는 것이 중요하”며, “시대와 불화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가 어떤지를 예민하게 파악해야 한다” (44쪽)고 그는 강조한다.

 

   랑시에르를 비롯한 수많은 서구 이론가와 철학가들이 문학의 정치성을 논해왔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들의 현실과 다르며 개념들을 ‘정치적이며 문화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오길영은 지적한다. 전위정신이 필요한 시대이지만 그것은 ‘차이’를 생성하며 현재화된 것이어야 한다는 의식은 비평이 끝없이 변신과 자기비판을 거듭해야 한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문학적 이미지는 형성하려는, 생성하려는 이미지이지 주어진 대상의 재현이나 표현이 아니다. 비평은 ‘바뀌지 않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인식의 행위이다. 비평이 비판이고 자기비판인 이유다.(91쪽)” 라고 그는 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 근대』 (2009)에서 포착한 근대의 징후와 같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국가나 공동체 등의 모든 견고한 것들이 다 녹아버린, ‘액체의 상태’에 던져져 있다. 정홍수의 표현대로 ‘인간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의 기획’은 녹아 사라졌다. 삶의 무게는 온전히 개인 혼자의 어깨에 걸쳐지게 된 것이며 불안정한 뿌리 뽑힌 개인들은 이 무게를 고스란히 홀로 감당한 채로 이 유동적인 세계의 ‘액체’ 속을 부유하고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 위에서, ‘액체의 시대’에서 더 이상 딱딱함은 복원해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근대의 가치들이 견고하고 무겁다면 현재의 ‘액체’로 된 가치들은 유동적이고 가볍다. 견고한 모든 것이 녹아버렸다면 이 가벼움과 유동성 속에서 비평정신은 오히려 창조성을 획득할 수 있는 계기를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많은 것들이 파괴되어버린 폐허에 선 인간은 오히려 ‘새로운 것을 생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오길영은 김현의 글 일부를 인용하여 “인식하려는 행위는 언제나 형성하려는 힘 위에 기초해 있지, 지키려는 힘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적고 “형성하려는 힘의 사유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인식의 공간이 문학(91쪽)”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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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길영이 ‘상상하여 창조하려는 심리적 힘’의 근원이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점이다. 그는 바슐라르의 문제의식을 수용하며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에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 없는 사회를 꿈꾸게 해준다.”(93쪽)는 점에 주목한다. 그간 문학의 효용성 상실에 관한 많은 논의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필요성, 유용성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의 논리를 벗어나 억압이 없는 자유를 향한 몽상가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것은 문학과 예술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오길영이 지적한 바대로 ‘엄숙주의가 지배했던 김현 당대의 한국 문학 공간’에서 몽상이나 즐거움은 한때 금기어였다. 그러나 가벼움의 시대에서 즐거움과 몽상은 해금(解禁)되었다. 이제 문학의 힘은 향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죄책감 없이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향기를 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감각을 잃은 상태에서 향기는 악취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또 감각의 회복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향기를 감각할 수 있는 힘으로 우리는 각자의 생존만을 위해 사는 ‘자기보존을 위한 존재’가 아닌 어떤 ‘무용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인간성을 되살릴 수 있다.
 

   그러나 김현이 김지하의 시를 읽으며 느꼈던 것은 ‘세계는 고통스러운 곳이다. 그 속에는 그러나 꽃이 있다’는 화해로운 인식 대신 그 인식이 유예되며 유지되는 시적 긴장이었다. 세상의 암흑에 작은 균열이 있고 스며들어오는 빛이 존재한다고 해서 세상이 밝다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결국 해소될 수 없는 욕망은 더 큰 괴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고통과 동시에 쾌락을 느낄 수 있다. 황량한 사막과 같은 땅에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어 꽃이 피고 그 향기가 바람을 타고 온다 해도 지금 사막을 건너는 일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닿을 수 없는 꽃의 희미한 향기는 신기루처럼 길 잃은 사막 여행자를 지칠 때까지 걷게 만들 치명적인 저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향기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추구하고 욕망하는 즐거움을 준다. 인간으로서 이 핍진한 삶을 견디고, 지속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이 피폐한 현실과의 ‘화해’가 아니라 오히려 불화하며 그 불모성에 저항하게 하는 것이다. 사막에 길들여져 잎을 버리고 가시투성이가 된 선인장처럼 체념하고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향기’가 촉발한 자기 안의 욕망을 믿고 나아가게 하는 힘이며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워지려는 힘이다. 이것이 오길영이 말하는 ‘전위정신’이다. 김수영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다고 하였으나 오길영은 자유에는 향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감응의 시민문학’은 “상상하려 창조하려는 완전한 자유를 느끼는 떠돌이의 즐거움”(93쪽)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오길영이 중요시하는 것은 이런 전위정신의 ‘현재화’이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비평가들의 평론에서 ‘뜨거운 시대’를 추억하는 386 세대의 향수를 찾아볼 수 있다. 90년대 이후 후일담문학이 유독 사랑받았던 것도, 근래 각종 미디어에서 유행하는 복고열풍도 사실 집단적인 애도의 정서에 가깝다. 그러나 현재의 공허함을 퇴행으로서 해결하려는 것, 현재에는 ‘없는 것’으로 결핍을 메운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뜨거움’을 회복시키되 그 불씨를 지피는 땔감은 모두 ‘지금 여기’의 것들이어야 한다. 이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없는 폐허에서 그나마 불에 탈 수 있는 것들을 힘겹게 찾아 모아야 하는 것이다.
 

   오길영은 과거를 돌아보고 향수를 느끼기보다는, 가능한 과거를 벗어나 현재의 문제를 현재의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오길영은 후일담문학이나 복고 선호 현상들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한다. “회고되는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회고하는 현재가 문제이다. 현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과거가 신비화될 때 애도는 실패한다. 과거를 과거로 떠나보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의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된다.” (139쪽)
 

   오길영의 말처럼, “각 시대는 각 시대 나름의 시대경험의 양상이 있다.” (126p) 문학의 종언이 선언된 이후에 무장해제된 채 빈손으로 서있다고 해서 그 고통을 자기연민하거나, 지나간 과거의 어떤 잃어버린 시절을 애도하는 대신 우리는 고통을 성찰해야 한다. 미화하지도, 신비화하지도 말고 과거가 현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아름답게 이별하고 나서 말이다. 김훈의 비판대로 ‘연민의 바탕 위에서 놓여진’ 문학작품을 지나치게 소비하지만 말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도의 감정을 소화시켜 살아있는 사람의 에너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성찰하며 고통과 쾌락을 가능한 생생하게 감각해야 한다는 것이 오길영의 생각이다. 그는 ‘내가 사는 세계는 살 만한가’를 끊임없이 반문하는 것이 문학이고,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읽는다’고 한 김현의 말을 반추해보며 “살 만한 세계가 아니라면 왜 그런지를, 그리고 그 세계를 살 만한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려는 고민의 모색”으로 김현 비평을 고찰하면서 김현 비평의 문제의식이 지금도 우리에게 호소력을 지니는 현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소설이 그것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이유와 타당성과 가치를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인류의 뛰어난 발명품” (123쪽)이라고 정의한다.
 

   “한국 문학은 좀 더 강인해져야 한다.”고 오길영은 문학계에 조언한다. “문학예술은 언제나 ‘현실 모순의 상상적 해결 (프레드릭 제임슨)에 머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문학의 정치가 지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는 상상적 해결책이 역으로 현실 모순의 극복을 위한 새로운 방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금 한국문학에는 고통과 항거와 투쟁의 사건에 신체성을 부여하는 생생한 감각이 태부족하다”(359쪽)고 오길영은 날카롭게 비판한다. 문학적 기념비는 “사건에 신체성을 부여하는 지속적인 감각들을 미래의 귀에 들려주는 것이다.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으로서 요즈음 쏟아져 나오는 ‘치유 (힐링 healing) 담론’에 대해 오길영은 ‘공허한 위로’라고 쓴 소리를 한다. 고통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이한 위로로는 실제로 아무것도 치유할 수 없다. 그러니 고통의 핵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협소한 내면성의 외딴 방’에 들어가 과거를 애도하기만 하는 것도, ‘관념과 언어조작의 세계’에만 갇혀있는 것도 한국문학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니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이 필요하다. “문학을 둘러싼 세상의 이치, 세상의 정치를 꿰뚫는 안목이 문학에게 있어야 한다” (52쪽)는 문제의식이다. 오길영이 말하는 시민문학은 개인과 전체를 동시에 사유한다. 개인에서 출발하여 다른 개인으로, 사회 전체로 나아갈 수 있는 이 연쇄적인 힘은 결국 파편화되고 단절되고, 가려져있던 개인들을 드러나게 하고 연대시킬 수 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이 힘을 얻기 위한 ‘감각’의 회복과 단련이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고, 들리지 않았던 것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는 이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가려져 있는 것들에 랑시에르의 용어처럼 ‘감각의 분할’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날카롭게 벼린 ‘감각’으로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욕망을 지속할 수 있는 즐거움을 얻으며 시대를 앓는 통증을 더 날카롭게 느껴야 한다.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인간의 고통, 다시 시작되는 인간의 항거, 가차 없이 개재되는 투쟁을”이라고 한 들뢰즈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길영은 작가들에게 ‘한 시대를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고 “당대로 돌아오라!”고 호소한다. 전 시대의 세상이 깨어지고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면, 그 깨진 조각을 들고 우리는 그 날카로움으로 이 어둠에 균열을 낼 수밖에 없다. 파편 위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들의 전혀 새로운 쓸모를 생각하면서.
 
 

작성일 : 2016.07.15
저자 소개  

김지윤
1980년생. 시인, 문학평론가. 편집동인.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2006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 부문 수상, 2012년 '시와 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 『수인반점 왕선생』, 현재 숙명여대 국문과 박사과정. sinceth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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