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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러시아 지성사 산책] 사상의 정치, 정치의 사상

- 다닐레프스키와 범슬라브주의 (1)

최진석(문학평론가)


   니콜라이 야코블레비치 다닐레프스키는 1822년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가까운 오를료프 현에서 태어났다. 군인 집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 관련된 특기할 만한 사건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는데, 사회학과 정치학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당시 유럽 과학의 최대 논쟁점이던 다윈의 학설이었다. 러시아인들은 다윈을 곧장 사회와 국가 체계에 연관해 상상하는 대담함을 보였는데, 다닐레프스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흥미로운 이력 중 하나는, 그가 1849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페트라셰프스키를 중심으로 모인 청년들은 서구의 ‘불온한’ 사상을 읽고 토론하는 회합을 가졌고, 거기엔 청년 도스토예프스키도 끼어 있었다. 이 모임의 성격에 관해 후일 알려진 것은, 불온은 했으되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으나, 아무튼 당대 전제주의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의 자극도 꽤나 중요한 반국가적 행위로 비쳐졌던 듯하다. 주목할 만한 혐의를 받지 못했던 다닐레프스키 역시 유죄를 언도받고, 러시아 북부의 볼로그다로 추방되었고 유형살이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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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듯, 다닐레프스키도 수도에서 벗어난 삶을 이후의 지적 이력을 위한 사색과 탐험의 시간으로 채웠다. 볼가강 자연 탐사대의 일원으로 참여해 생물학적 지식을 시험해 볼 수 있었으며, 형기이 중지된 후 농업부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북극해 부근의 생태 환경을 조사하기도 했다. 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의 사교계를 출입하던 당대 지식인들이 사회·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필화를 겪거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함몰되던 것에 비교하면, 다닐레프스키의 ‘외유’는 오히려 그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실험하며 가다듬는 기회였을 것이다. 1869년 출간된 󰡔러시아와 유럽󰡕(Russia and Europe)은 정치적 야심가가 아니라 사상가로서 다닐레프스키의 목소리가 반영된 역작이었다.

 

   러시아 지성사에서 다닐레프스키는 ‘범슬라브주의(Pan-Slavism)’로 분류되지만, 실상 고전 슬라브주의자들과 그 사이에는 큰 연관점이 없다. 자신의 사상을 정치적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고전 슬라브주의의 사상을 일부 수용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다닐레프스키의 이론 체계는 키레예프스키나 호먀코프, 악사코프 등과 연결짓기도 어려웠고 심지어 상충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닐레프스키에 따르면, 서구주의와의 대립각을 지으며 축조된 고전 슬라브주의는 기실 서구주의의 쌍생아나 다름 없었다. 서구주의자들이 내세운 서구 보편주의에 맞대응하기 위해 슬라브주의자들 역시 슬라브적 보편성을 주장했고, 이로써 서구와 러시아는 보편 대 보편의 논쟁 구도를 설정하게 되었는데, 인류애나 진보 따위의 추상적 이념들을 경합시키는 와중에 정작 러시아의 실제적인 현실 문제는 완전히 방기되어버린 탓이다. 1840년대 러시아 지식사회를 한창 달아오르게 했던 서구주의-슬라브주의 논쟁이 무익하게 소진되어 버린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발밑의 현실에 눈감은 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인류를 걱정하는 이념들 사이의 우열 관계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보편 인류(obshchechelovechestvo)란 말만 그럴 듯한 추상 관념일 뿐, 러시아인, 독일인, 프랑스인, 영국인 등으로 직접 마주치는 민족적 실체보다 하등 나을 게 없었다. 다닐레프스키는 당대 식물학의 유비를 끌어들여, 모든 꽃의 특징을 추상화해 만든 꽃은 관념적으로만 상상될 뿐 실재하지 않듯, 보편 인류도 그저 머릿속 공상에 불과하여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못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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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lay_Danilevski


   “보편적 인류란 현실적 실체가 아니며, 종족이나 민족보다 협소한 하위의 개념이다... 보편 인류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향한다는 것은 무색무취의, 한 마디로 완전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은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에 다르지 않다.”


   단지 추상 개념의 비현실성만을 비판했다면 다닐레프스키를 지성사의 한 장면에 배치할 이유가 없겠다. 그의 혜안은 보편적 인류를 비판하는 동시에 전체 인류(vscechelovechestvo)를 구제하려 들었다는 점에 있다. 전체 인류란 러시아인, 독일인, 프랑스인, 영국인의 공통점을 추리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섞이지 않는 특수성, 개별성을 모두 통합하는 방식을 통해 획득한 개념이다. 달리 말해, 인류란 각 민족의 공통점을 추출함으로써 표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공유점이 발견되지 않는 모든 특수성마저도 끌어모음으로써 도달하는 관념이라는 것이다.


   그럼 세계사를 전체 인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 보편 인류의 관점에서 세계사는 곧 유럽사였다. 유럽의 제국민이 이룬 공통의 성취만이 가치있고 유의미하기에 러시아인들은 유럽인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야 했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인이 아니라 보편 인류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별 민족들이 갖는 자기만의 특색들 전부가 인류 전체를 이루는 요소들이 된다면, 러시아인은 러시아인으로 남을 수 있게 된다. 심지어는 유럽과의 공통점을 찾고 계발하기 위해 애쓸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다닐레프스키는 모든 민족들 사이에는 섞일 수 없는 특수성이 존재하며, 오직 그것만이 각 민족의 고유성을 구성하고, 그것을 통해서만 그 민족은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보편적 인류애 따위는 당장 집어치워야 할 망상으로 드러났고, 전체 인류의 한 성원으로서 러시아인, 슬라브 민족의 고유한 길을 찾아나서야 할 사명이 부여된다.


   이제 인류 역사는 언어-민족 단위로 구성된 역사-문화적 유형(historio-cultural type)에 의해 구별된다. 그러므로 러시아인이 아니라 슬라브 민족이 사상의 초점이 된다. 지금까지 약 10개의 역사-문화적 유형들이 존속해 왔으며, 각각의 유형들은 민족별 특색에 의거해 서로 다른 문화적 유형을 성립시켰다. 가령 고대 그리스인들은 예술 분야에서, 로마인들은 사법·정치 체계에서 탁월성을 보였고, 근대 유럽인들은 정치·문화에서 두드러진 장점을 나타냈다. 이들은 각각 자기 민족에 고유한 장점을 살려 역사-문화적 유형을 성립시켰으므로, 결코 특정한 분야를 척도로 우열 관계를 가를 수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헤겔로 대표되는 추상적 사상에 대한 다닐레프스키의 혐오감은 그의 문화유형론에 이르러 완전히 헤겔적 도식에 도달한 듯 보인다. 그것은 보편적 인류 속의 특수한 개별 민족이라는 변증법적 종합의 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성일 : 2017.09.11
저자 소개  

최진석
문학평론가.
수유너머104 연구원. 2015년 《문학동네》 평론 등단.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vizar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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