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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에코세대가 자신의 삶을 말하다(2)] 좀비 파이터 (2)


문종필(문학평론가)



보험


   매달 나가는 보험료가 걱정되긴 했지만, 닳아가는 몸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실비 보험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난간에 부딪혔다.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선 직장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존재하지도 않은 직장을 만들어야 했다. 만만치 않은 장벽이었다. 불안한 가슴을 끌어안고,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에 방문하는 날. 자존심은 이렇게 무너졌다. 하지만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누나가 보험료를 내주겠다며 자동이체를 해 주었다. 누나는 나를 생각하기보다는 가족의 입장에서 책임져야 할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험료를 내주기로 결심 한 것 같았다. 누나가 돈을 대주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한 달에 1만 2천 원을 내야 하는 실비보험에 가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다행이다. 몸이 아프면, 검사료 일정 부분을 면제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인 것을 어떻게 하랴.


   지금은 다행히 백수가 아니다. 누군가가 직업을 물으면 평론가라고 대답한다. 물론 한 달 수입은 적다. 여전히 청탁 받긴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청탁받은 글을 잘 쓰는 것이다. 청탁받으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지만,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정 욕망으로 인해,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하고 무작정 승낙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누군가의 기회를 뺏는 기분이어서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의자에 앉아 고생한 시간을 감안하면 원고료가 야박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원고료가 막상 들어올 때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젠 누군가가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



결혼식과 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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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에 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 돈을 빌려 축의금을 충당해야 했다. 백수로 생활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결혼식 소식이 들려올 때면 땅속 깊이 숨었다.


   스스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을 빌려서 결혼식에 가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질문 앞에 당당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지인의 결혼식에 가는데,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빌려서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내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 남의 노동으로 축의금을 내야 하는 행위가 오히려 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자체가 행복한 날이니 굳이 가지 않아도 그들은 서운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날이 인맥 자랑하는 날은 아니지 않겠는가. 먼 훗날 당신이 내 사정을 듣게 된다면 그랬었구나. 라고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야학교 후원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야학 선생은 부담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되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러 갈 때면 설레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을 할 수 없었던 나에게 오히려 야학은 안식처와 같은 공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야학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고민 하나가 생겼다. 야학교에 후원금을 내야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야학교로 이체되는 CMS 계좌를 없애는 방법을 알아보고, 지워 버리려고 노력했다.


   한 동안 내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야학교로 자동이체 되지 않았고, 후원금을 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하지만 등단을 하고 난 후, 원고료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내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내가 후원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야학교에 오시는 분들은 나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루를 힘들게 버티는지 모른다. 하루빨리 속물에서 벗어나야겠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답은 자명하다. 돈을 벌어야 한다. 


   이 글은 ‘에코세대가 자신의 삶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쓰인 글인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적은 것 같다. 강박적인 리듬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이다. 문학은 하지 않고, 이렇게 돈 벌 생각만 하고 있다.



짓눌린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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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벚꽃처럼 힘없이 떨어질 내 주변 동료들을 생각한다. 가진 것은 자존심밖에 없는 ‘나’와 ‘당신’을 생각한다. 힘겹게 일자리를 얻은 너에게 축하해 줄 수 없는 속물인 나를 생각한다. 


   봄날에는 휘날리는 벚꽃을 만나보고 싶고, 경주에 가서 커다란 삶과 커다란 죽음 사이를 자전거 타고 질주하고 싶다. 사랑하는 너와 손잡고 갈라진 도시를 말없이 걷고 싶다. 이런 내 바람이 봄날에는 이뤄질 수 있을까. 남들처럼 나도 돈 벌게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기까지 ‘좀비’ 이야기다. 살지도 죽지도 못해 남에 피나 빨아먹고 살아야만 하는 드라큘라의 이야기. 찌질이 같은 삶. 어른이 될 수 없는 아이의 삶. 이런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당신이 드라큘라거나 미녀가 아니면 모을까.



몽상

 

   이 글을 쓰고 난 후, 내 몸도 내 주변도 내 마음도 많이 변했다. 어느 시인은 하루에도 몇 번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고 간다고 적었는데, 나는 그런 경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번 ‘카톡’을 지우고 탈퇴했다. 오랜만에 만난 너와 함께 밥 먹으며 거리를 걷고 수다를 떨었다. 누군가는 박사 논문이 완성되면 돈 벌 기회가 생길 거라며 희망 섞인 말을 꺼내 놓기도 했다.


   이 글은 ‘급식체’로 쓰였고 자학적이다. 어쩌면 하소연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나이는 먹었지만 독립하지 못해,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당신’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생존할 순 있지만 ‘자유’가 없는 일상!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사랑하는 너를 지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 살아야겠다. 부지런히 일해야겠다.



글 서두에 인용된 시는 김수영의 「적」(김수영, 「적」, 『김수영 전집 시(1)』, 민음사, 2004, 254쪽.)이다.




작성일 : 2018.05.04
저자 소개  

문종필
문학평론가.
웹진 <문화 다> 책임 편집동인. 1980년생. 문학평론가. 2017년 <시작> 문학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ansanssu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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