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기사[종합]
별점 평가
★★★★★★★☆☆☆
★★★★★★★★☆☆
★★★★★★★★★★
★★★★★★★★☆☆
★★★★★★★★★☆
★★★★★★★★☆☆
★★★★★★★★☆☆
위치 : HOME > 통합 > 연속 기사
[〈특집〉 에코세대가 자신의 삶을 말하다(2)] 좀비 파이터(1)

문종필(문학평론가)

   


정병일(鄭炳一)―― 그놈은 내심과 정반대되는 행동만을 / 해왔고, 그것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몽상한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이유. 의지가 아닌, ‘당신때문이라고.

 

   당신이 강박적으로 광장 주변을 배회하는 것도, 당신이 보험을 들기 위해 애쓰는 것도, 당신이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당신이 병에 걸리면 절대로 안 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습관처럼 내뱉은 것도, 당신이 철저히 건강관리 하는 것도, 어쩌면 가족이 붕괴되면 모두가 끝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발언들을 사회적 책임으로 우회할 수 있고,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판할 수 있다. 당신 책임이기보다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구부러진 사회가 더 책임이 크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불만을 쏟아내도 당신은 특정한 조직이나 사회가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두꺼운 가면을 쓴 채, 평생을 살아간다. 남들 앞에서 수많은 거짓말을 하며 등을 구부린다. ‘가족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사랑하는 당신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산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 글은 피할 수 없는 저주를 어깨에 짊어 쥐고 살아가는 늙지 않는 청년의 이야기다. 우울하지도 참혹하지도 않다.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부르주아 좀비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봐도 어리석은 찐따. 혼자서는 살지 못해 거머리처럼 남의 피나 빨아먹고 사는 찌질이. 이런 진따의 생존기를 누군가는 비웃겠지만, ‘진따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유의 길과 생존의 길. 두 갈림길에 서 있다. 비겁하게 생존을 선택한 이상 살기 위해 피를 빨아먹어야 하는 드라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선택한 운명이므로, 이번 생에 받아야 할 벌은 달게 받겠다.

      

 

좀비

 

   나는 행복하다. 성실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배고픔 없이 성장할 수 있었고, 마음씨 착한 누나가 내 곁에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공부하며 잘 지낸다. 결혼하지 못하고 돈 벌지 못해 눈치 보며 우아한 말을 우아하지 않게 뱉어 가며 살아가지만, 공부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느껴진다.

 

일포스티노movie_image.jpg


   영화 <일포스티노 The Postman>에서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말한 다음과 같은 대사는 영화 속에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몸짓이었는지 모른다.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하지만 낫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이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지 모르고, 흘러내리는 피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늙은 피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좀비 같은 삶을 무의식적으로 즐긴다.

 

   좀비처럼 사는 인생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민을 재생시킨다. 그래서 슬픔은 기술이 될 수 있고, 자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슬픔을 만들어 내는 일이 항상 유리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구겨진 눈빛을 동시에 받아내야 한다. 이 눈빛은 나로 하여금 등을 웅크리게 하고, 내 안에 있는 괴물을 재생시킨다.

 

  ‘습관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슬픔도 습관이 되면 더 이상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지 모른다. 영화 <Hostiles>에 등장하는 한 병사(토마스 메츠)의 몸짓처럼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말을 타고 질주한다. 상처가 낫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투정 부리지만, 어쩌면 상처 낫지 않음이 오히려 깨끗하게 상처가 낫는 것과 관련 있다. 노숙자의 마음으로 산책 하고 주변을 걷는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이것은 분명 장점이겠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학부 때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만날 때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A는 재능이 있고 성실했지만, 형평이 좋지 않아 소설 쓰기를 그만두어야 했고, 학부 시절 이광수를 주제로 A5 200장 분량의 논문을 쓰고, 일본어책을 번역한 B도 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인생은 아이러니한 것인지 모른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닌 메뚜기 같은 내가 박사 논문을 쓰고 있고, 평론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내가 좀비처럼 죽지 않고 기생할 수 있는 특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회

 

   에코세대에 속하는 1980년생인 나는 정규적인 수입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디를 다니던 떳떳하지 못하다. 독자분들께서는 어떻게 살아요? 라고 신기하게 쳐다볼 수 있겠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데 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런 나를 처연하게 바라볼 수 있겠지만, 좀비는 죽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내 꿈은 일정 수입을 벌어들이는 거다. 이 돈으로 밥 지어 먹으며 하고 싶은 연구를 매듭짓고 죽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방대 시간강사의 삶이 피곤하다고 적었지만, 내게는 피곤함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진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지 모른다.

 

   밥그릇을 챙기고자 하는 내 의지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히려 병든 것은 내가 아니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사회가 병든 것일 수 있다.

 

   병든 세상 속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며칠 후, 떨어지게 될 벚꽃처럼 힘없이 내려앉아 으깨질 것이다. 꽃은 지고 다시 피겠지만, 더 이상 힘없이 떨어지고 싶지 않다. 단 한 번만이라도 찬란하게 휘날려 보고 싶다.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하면 이기적인 욕심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회.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백수

 

   돈을 벌지 못하는 내 마음은 다리를 절고, 어깨를 돌아가게 한다. 제대로 걷지 못해 이렇게 저렇게 걷는다. 이렇게 저렇게 걷고 있기 때문에 눈치 보며 살아간다. 술집에 가면 술값을 내지 못해 눈치 보고, 책을 살 때도, 아침에 일어날 때도 눈치 보며 살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단하게 된 이후, 소소하게 원고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원고료가 나올 때 즈음에는 종종 모임에 나가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술값을 몰래 계산하고 도망친다. 등을 보이며 질주할 땐, 밀린 월세를 지불하는 것처럼 막힌 가슴이 뻥 뚫린다.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등록금을 벌기 위해 노력했고, 재학생 시절에는 전산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 벌이를 했다. 전산실 아르바이트는 만족스러웠다. 터진 가슴을 끌어안고 전산실로 향하는 날엔 응급실로 실려가 며칠을 앓았다.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든지 붙잡고 싶었다. 소논문을 마음껏 인쇄할 수 있었고, 컬러 프린트를 사용할 때도 큰 부담이 없었다. 언젠가는 이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시로 소논문을 복사했다. 이렇게 쌓여가는 논문을 바라보며 한동안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공부만 하면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집을 나설 때면, 사람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공부하면서 돈 벌 수 있는 꿈의 직장이라고 말이다. 그 당시 내가 받은 임금은 적었지만, 이 돈으로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연애를 했다.

 

   생각해 보면, 전산실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아침 8시에 전산실 문을 열고, 11시에 문을 닫을 때면 시간당 최저임금을 계산할 수 있었고, 의무적으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던 탓에, 공부한 분량을 수치로 측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천으로 향할 때면, 뿌듯한 마음을 움켜잡고 놓지 않았다. 하지만 전산실 아르바이트는 장학금 형식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박사 과정 수료 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학원에 다시 이력서를 뿌렸다.

 

   학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운 좋게 연락이 왔다. 하지만 고민에 빠졌다. 버틸 수 있었지만, 걷기가 싫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보다는 시발정신으로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백수의 시작은 이때부터로 기억한다. 남의 피를 본격적으로 빨아먹었던 날은 이때부터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D’라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다양한 인문학 강좌가 열리는 곳이었는데, D 공간 대표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몸으로 때우겠으니 인문학 강좌를 듣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다행히 D 대표가 허락해 주었고,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재수생 시절 칠판 지우는 아르바이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독하게 일했다. 집에서 밥은 얻어먹을 수 있으니 어떤 방식이든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수업과 세미나를 병행하며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즐겁게 설거지하고, 청소하며 공부했다. 한 푼도 받지 못했지만, 돈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다. 보수적인 학교보다는 적응하기 편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다. 이때 공부한 밑천으로 평론가가 될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소소하게 원고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백수다. 백수로 산다는 것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눈치 보며 살았던 시간이 너무나 길었던 탓에 이제는 눈치 보는 감각마저 느끼지 못한다.

 

 

-계속-

작성일 : 2018.05.02
저자 소개  

문종필
문학평론가.
웹진 <문화 다> 책임 편집동인. 1980년생. 문학평론가. 2017년 <시작> 문학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ansanssunf@naver.com
[댓글]
⊙ 이름
⊙ 비밀번호
⊙ 이메일
댓글 남기기
비판적 문화 공동체 웹진 [문화 다]   |   www.munhwada.net(또는 com)
문화다북스 대표 강소현   |   웹진 <문화 다> 편집인 최강민, 편집주간 이성혁   |   사업자번호 271-91-00333
[웹진 문화다 / 문화다북스] 연락처 : 02-6335-0905   |   이메일 : munhwada@naver.com
Copyright ⓒ 2012 Webzine Munhwad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