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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에코세대가 자신의 삶을 말하다(1)] 베이비붐세대의 메아리, 세기말과 밀레니엄 사이의 이행(移行)의 세대

  
                                              김지윤(문학평론가)

 


   ‘에코’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한 님프로, 헤라의 질투를 사서 다른 사람의 말의 끝부분을 되풀이하는 운명을 맞는다. 메아리는 하나의 흔적이면서, 소리가 옮겨가면서 변형되어 새롭고 낯설게 들리게 하는 변주(變奏)이기도 하다. 끝을 간직하면서 새로움을 준비하는 텅 빈 “사이(間)” 공간의 울림 같은 것. 


  에코 세대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킨다. 이런 연도 구분은 보통 엄밀하지 않고 가변적이긴 하지만, 나 역시 이 구분법에 따르면 에코 세대다. 내 출생연도가 속하는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지만 나는 ‘에코 세대’라는 말이 가진 시적인 상징성에 끌린다. 에코 세대 자체가 마치 ‘메아리’를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마지막과 새로운 시대 사이의 틈 안에 위치하고, 전 시대의 끝자락에서 파편처럼 남은 유산(legacy)을 간직하되 전혀 다른 언어로 탈맥락화했기 때문이다. 마치 아날로그 언어를 일부 가져와 디지털 언어로 변형시킨 것처럼 체질적으로 다르지만 본질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부”라는 사실이다. 변형과 재배치를 거쳐 초기의 모습은 흔적만 남아 있는 그런 메아리와 비슷한 상태. 
 

   물론 에코 세대가 ‘에코’가 된 것은 이렇게 거창한 수사를 더할 필요도 없이 “베이비붐 세대의 메아리”라는 것에서 연유한다. 사실 이 표현은 “출생붐의 메아리”라는 의미다. 전쟁 후 대량 출산세대였던 베이비붐 세대의 2세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80년생이고 99학번이다. 나는 80년대의 문을 열고 태어나서 한 세기의 마지막 해에 대학에 입학했다. 90년대 학번이면서 생년 앞자리에 ‘8’을 달고 있고 마흔의 직전에 놓여있는 30대 끝자락의 사람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속한 세대적 특징에 대해 생각해보려 하는 것은 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제 에코 세대에 속한 이들이 새로운 신진세력으로 ‘기성’의 문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에 대한 세대적 성찰이나 이론적 규정은 여전히 베이비붐 세대의 시선으로 보았던 “X, Y, Z세대”에 대한 낡은 담론 안에 머물러 있다. 내가 20, 30대이던 때, 베이비붐 세대는 나와 내 선배들, 후배들을 보며 ‘신세대’라고 불렀었다. 당시 다수의 세대 담론들이 등장했지만 언제나 담론을 주도하는 것은 기성세대 쪽인 경우가 많으므로 보통 ‘새로운 종자’인 이 젊은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 ‘X세대’라는 표현이 대중화되었고 X, Y, Z로 나누는 세대구분법이 유행할 때 X는 낯설고 불가사의한 것을 의미했다. 수학에서 X는 미지수이며, 뢴트겐이 X 선을 처음 발견할 당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X-ray’라고 명명했고 ‘X-파일’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대상에 관한 비밀스러운 기록을 의미하듯 X는 종래의 상식으로는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미지의 대상에 붙이는 알파벳이고 알 수 없는 것이 늘어날수록 Y, Z 등 미지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 시기 알파벳을 사용한 신세대 담론들은 대부분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젊은이들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입장이 다르다. 이제 베이비붐 세대는 물론 386세대의 많은 사람들도 은퇴자가 되었으며, 에코세대의 일부는 사회의 중견세력이라 할 수 있는 40대에 접어들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이미 사회생활 15년-20년차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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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초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인기나 최근 소위 “IMF 세대”를 조명하고 반추하는 문학 작품들의 등장에서 엿볼 수 있듯 대중문화와 문학계에서 80년대가 이미 추억의 시간이며 ‘복고’가 되어 가고 있는 대중적 감수성의 세대변화 속에 ‘에코 세대 스스로의 시각에서 본인들의 세대를 성찰하는’ 일이 필요해졌다.  
 

   이제 에코세대들은 대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 세대’가 되었다.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일 중 가장 큰 사건은 “세기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설과 ‘휴거’에 관한 괴소문들이 나돌던 세기말의 풍경을 나는 기억한다. 세기가 바뀌던 때 수능시험을 치르고 99년에 대학생이 되면서 “이 고생을 하고 대학에 가자마자 세상이 멸망하면 어쩌냐”는 싱거운 우스갯소리를 던지곤 했다. 20세기의 마지막 밤에는 우습게도 사뭇 긴장이 되기도 했다. 세기말의 불안과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공존하던 때였다. 
 

   나는 위에서 에코 세대를 “틈” 안에 위치한 세대, ‘끝’의 흔적을 가지고 새로움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사이 공간에 위치한 세대라고 말했다. 좀 거창하게 이름 붙여보다면 “이행(移行)의 시대”. 에코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표현을 좋아하는데 흔하게 쓰이는 ‘낀 세대’라는 표현보다는 듣기 좋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면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건너가는” 것처럼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넘어가는 많은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많은 것이 변화하는 지점을 목격한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일한 세대를 살았다 해도 경험의 내용은 모두 결이 다를 수 있으니, 나의 개인적 사례를 들어보자. 어렸을 때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가져다주면 선물을 준다고 하여 삐라 주우러 다니고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열심히 그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통일 포스터를 그리라고 하여 어리둥절하였던 세대. 어렸을 때 88 올림픽이 개최되는 것을 보았던 강렬한 경험이 있고 2002 한일 월드컵 ‘거리의 열기’의 주역으로 속칭 “월드컵 세대”라고 불리기도 했던 세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보사에 들어가서 동경하던 ‘운동권’을 취재하며 이전 시대의 이념적 금서(禁書)들을 탐독하였으나 이미 운동권 문화는 퇴조기였다. 동아시아 전반에 지속되었던 장기 불황과 97년 IMF 사태를 경유하며 생겨난 ‘국가도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열정보다 현실을 선택한 청년들은 집안 경제와 취직 준비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학우들의 동경은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 조치 이후 그 즈음에는 이미 대중화되어 있던 배낭여행과 유학에 쏠려 있었다.  
 

   나는 성장기에 ‘오렌지족’들과 소위 ‘압구정 문화’가 형성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생긴 맥도날드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강남이라지만 논밭이 가득 있던 동네가 갑자기 개발되어 건물들이 들어서며 그저 평범하던 학원가가 ‘강남 교육 특구’로 조성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교육받은 첫 세대였으며 초기 PC통신 유저였고 이동통신수단을 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였던 첫 세대였다. 워드프로세서와 텍스트 메세지에 익숙하고 텔레비전보다 인터넷의 쌍방향 정보를 선호하는 포스트텔레비전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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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인 1999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 (빌 게이츠, 안진환 역, 청림출판)에서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다”는 문구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생각에도 속도가 필요하다니. 당시 국내 인터넷 인구가 500만을 넘어섰고, 정보 기술 혁신의 미래에 대한 많은 기대와 예측과 약속이 눈앞에 펼쳐지던 때였다. 그러나 “생각에도 속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많은 면에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건재했다. 남자만 반장이 가능하고 여자는 부반장밖에 할 수 없었던 학교에서 여학생으로 재학하며 자라났던 내 안에서도 여성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는 가부장적인 사회 통념과 여성도 사회의 주역으로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 는 사고방식이 부딪치고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여성 작가들이 대거 스타로 부상되고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이나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와 같이 90년대 전반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공격적인 페미니즘 문학을 읽는 이들이 많았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시집을 잘 가려면 여자가 남자보다 학벌이 좋으면 안 된다”와 같은 2018년 현재적 관점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은 이들에게 관용되던 시절이었다. 


   나의 성장기는 이처럼 많은 모순적인 것들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환상문학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렇게 모순적인 시대의 감각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20세기적인 것들에서 무의식과 직관, 비이성을 포괄하는 21세기적인 것들로의 전환을 겪은 세대의 감성은 현실 너머에 있는 환상적인 것들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컴퓨터 문학 시대의 문을 열었던 이우혁의 『퇴마록』(1994~2001) 시리즈와 악령소설의 범람,  80-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홍콩영화를 배후로 승승장구했던 무협지, 전생의 사랑을 그린 『은행나무 침대』와 같은 전생물의 인기, 신비주의와 뉴에이지의 유행 등 90년대는 환상물의 황금기였다. 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도 『해리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드래곤 라자』 시리즈 등 수많은 환상문학 시리즈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물론 세기말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불경기 등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자기 안에 모순을 품고 있던 시대의 감각에 어필한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판타지는 현실의 모순, 불일치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코세대에 대한 성찰은 소고(小考)에 지나지 않는 이 짧은 글에서 마무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단 이번 특집에서 첫 번째로 올리는 글이라는 편리함을 빌어 나는 이 글에서 에코 세대를 재정의하고 성찰할 현재적 필요가 있다는 것과, 에코세대의 ‘이행’이라는 성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제기 정도를 꺼냈다. 질문은 답을 찾아나가기 위한 길고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던짐으로서 윤곽을 밝혀내고, 어떤 이해에 도달해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질문의 미덕이란 “정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낳는 것”이라고 시어도어 젤딘은 말했다. 향후 한국의 중년세대가 될 에코세대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앞으로 이어질 다음 글들이 더 나은 질문들을 풍성하게 쏟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성일 : 2018.04.24
저자 소개  

김지윤
1980년생. 시인, 문학평론가. 웹진 <문화 다> 책임 편집동인.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2006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 부문 수상, 2012년 '시와 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 『수인반점 왕선생』, 문학박사, 숙명여대 강사. sinceth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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