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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나만의 명장면’을 찾아(7)] 6․3항쟁의 한 가운데서

- 전광용 장편소설 『창과 벽』(1967)


박정희(문학평론가)


 1. 


   단편소설 「꺼삐딴 리」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전광용은 소설 창작과 한국근대문학 연구의 두 영역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소설가이자 교수이다. 그의 소설 창작은 1950년대부터 1970년 즈음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문학연구는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한국현대문학연구에 기여했다. 


  그런데 소설가 전광용의 작품세계는 「흑산도」, 「꺼삐딴 리」 등으로 대표되는 단편소설에 국한되어 알려져 있다. 그의 단편소설은 이른바 ‘교과서적 소설작법’을 실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가 창작한 장편소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단편소설에 비해 『태백산맥』(1963-4), 『나신(裸身)』(1963-4), 『창과 벽』(1967), 『젊은 소용돌이』(1966-68) 등의 장편소설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작가가 대하 연작 기획 속에 이 장편들을 창작하면서 완결을 짓지 못하고 ‘미완’의 상태로 남겨놓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장편들은 그 자체로 독립된 완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완’으로 간주해 읽을 필요는 없다. 



소설집-흑산도 표지.jpg


   대학생들의 관점에서 4․19 혁명 과정을 보고하고 있는 『젊은 소용돌이』, 5․16군사 쿠데타 직후 병역미필자를 색출하여 구성했던 국토건설단의 이야기를 다룬 『태백산맥』, 5․16군사 쿠데타 이후 6․3항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식인의 현실 참여문제를 다룬 『창과 벽』 등은 그 창작시기를 고려하더라도 1960년대 정치사회 현실의 한 가운데서 고투한 작품들임을 알 수 있다. 전광용의 장편소설은 혼란스러운 1960년대 정국과 사회현실의 역사 단계를 소설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1960年代記’라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전광용의 장편소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면서, 그 가운데 5․16 이후 6․3항쟁의 과정에 이르는 정국에 대응하는 지식인의 태도 문제를 다루고 있는 『창과 벽』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창과 벽』은 1967년 11월에 전작(全作)으로 간행된 장편소설이다. 작품의 말미에 ‘제1부’라는 표지가 있지만 그 후에 더 발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창과 벽 제1부’는 그 자체로 내용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작품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창과 벽』은 대학교수인 한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군사정부에서 민정으로의 이행과정에 쟁점이었던 지식인의 현실참여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가운데 지식인의 올바른 가치관을 모색하는 중심이야기와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교수학자라는 개인적 갈등의 양상, 한일회담에 대한 사회적 갈등, 근대화에 대한 비판 등이 교직되어 1960년대 중반의 현실을 보고하고 비판한 작품이다. 


 

전광용-창과 벽 표지.png

 

 

   역사학자이며 교수인 한민은 4·19 이후 도미(渡美)하여 2년 동안의 미국 체재를 마치고 귀국하여 학교로 돌아온다.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자신을 생각하며 지금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며 ‘그 모색 과정은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그간에 동료교수들 가운데 이윤은 혁명정부의 고문(顧問)이 되어 있으며, 안일은 에세이스트로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신문사와 언론 활동으로 바쁘다. 조용호는 교수가 정치를 망친다며 이윤을 비판하고, 매문가(賣文家) 지식인이라고 안일을 비판한다. 하지만 생활고로 인해 조용호는 학관(입시학원) 강의를 하기에 이른다. 한편 한욱의 친구인 언론인 박천우는 선거에 야당으로 입후보하여 낙선한 뒤 새로운 정치모임을 계획한다. 사업가 최상억은 밀수사건으로 한욱의 집으로 도피해오고 경리과장에게 보상을 조건으로 모든 죄를 덮어씌운다. 


   이러한 현실과 함께 개인적인 삶 속에서도 한민의 ‘모색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6·25때 납치된 아버지, 그를 위해 불공(佛供)의 힘으로 남북통일을 믿는 어머니, 4·19때 총상을 입어 절름발이가 된 동생 한혁. 아내 현숙은 ‘빈처’의 모습이다. 식모를 둘 수 없는 벌이에 대한 불만에서 빚어진 부부갈등에서 한혁은 아무런 힘이 없다. 딸의 등록금문제로 학교 서무계에서 모멸감을 느낀 그는 결국 사업가 최상억의 도움을 받으러 가기까지 한다. 최상억의 새로운 사업의 동업자 제안을 거절하기는 하지만, 집에 돌아와 취중에 자기 아내에게 교수직을 버리고 회사간부로 취직을 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러한 서사를 통해 작가가 기획하는 것은 지식인의 현실비판의 객관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역사학자인 한욱은 학문의 객관성과 주체성 사이에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한욱에게 역사학은 과거의 민족의식을 탈피한 ‘과학으로서의 학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이전의 역사학은 “소박한 민족의식의 전위부대로 자처”하며 “의사(義士)나 애국자연하거나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이전에 남을 위한 공부나 학문을 내세운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영웅주의적인 생각이었던가.”(전광용, 󰡔창과 벽󰡕, 을유문화사, 1967. 24면.) 따라서 현금의 역사학은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과학으로서의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편 한욱은 개체와 전체의 관계에 대해 “하나하나의 인간이 개체의 건실한 주체의식과 생활능력을 갖추지 못하였을 때, 그 사회는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국가 민족의 존명조차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대 사회는 “개인의 의지에 의한 굳건한 바탕 위에 서서, 자각된 연대의식으로 자기 의무를 다하고 뭉칠 때, 인간 상호의 그리고 국가나 민족의 보람찬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49~50면)이라는 신념을, 한욱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욱의 이러한 객관적 학문에 대한 믿음은 상아탑과 현실 사이에서 모순을 경험하는 가운데 재조정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개체와 전체의 관계에 대한 자기의 확고한 신념은 미국대사관의 파티 장에 초청되어 참가했을 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욱은 자기의 미국 체재 기간 때의 한국정부의 무관심과 미국정부의 자기 유학생에 대한 배려를 비교하는 가운데 “역시 국가라는 중추적인 권력 배경이 없을 때, 그 개인이란 하나의 보헤미안에 불과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각된 개인(개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회·국가(전체)라는 한욱의 관점에서 스스로 모순된 발언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아울러 이러한 ‘과학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객관적 시각이 현실에 대해 얼마나 모순적인지는 다음의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운 이웃나라끼리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들 반대 데모를 합니까?”


   제임스의 돌연한 질문에 한민은 이 외국인에게 오해가 안갈 대답을 찾고 있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제임스는 말을 덧붙였다.


    “원칙은 그렇지만, 거기 대한 대답은 간단한 한 마디로 할 수 없는데…….”
 학생들이 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유아독존의 기세를 보이고 있는 앞에서 한민은 길다란 사설을 늘어놓고 싶지 않아 대답을 회피했다.


    “대체 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극한적인 행동을 취하는 데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키이 포인트가 있을 거 아닙니까?”


   “당신은 남의 일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일본에 대한 과거의 감정이나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직결되어 있는 피해자인 우리로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가로놓여 있는 것입니다.”
 

   제임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248면)

 
   위 대목은 1964년 3월 ‘화형식’, 5월의 서울대 문리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과 이른바 YTP 사건이라고 칭해지는 무장 군인의 법원 난입 사건에 대한 시위, 단식농성 등으로 이어지는 학생들의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단식 데모를 취재하러 온 외국인 기자가 교수 한민과 나누는 대화의 일부분이다. 미국 통신사 특파원 미스터 제임스가 학생들의 한일회담 반대 시위의 이유에 대해 묻자 한욱은 간단한 한 마디를 찾지 못하며 결국 제임스를 이해시키는 데 실패하고 만다. 외신 기자의 질문은 ‘제3자의 객관적 시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욱의 말로 하면 ‘원칙’이다. 하지만 이러한 학문의 객관적 시각은 감정이나 현실을 모두 다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이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남궁박사-한욱-강세훈으로 이어지는 학문 세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욱의 스승인 남궁박사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온 역사학자이다. 작품에서 그는 아주 짧은 몇 마디로 한욱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을 뿐이지만 한욱에게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겨레의 사대(事大)와 자학”에 대해 비판하거나 “시류의 속된 욕망에 이끌리지 말고 자신의 신조대로 계속 정진하라”는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앞의 말은 한욱이 미국 대사관에서 느낀 우리 정부에 대한 자학의 느낌을 꼬집은 것이며, 뒤의 것은 동료 교수들의 행로와 가장으로서의 불성실로 동요하던 한욱의 내면을 읽고 한 말이다. 한욱은 학문적인 관점에서 선배들의 민족주의적인 방법론을 비판하고 있지만 교수의 역할은 그 이상의 것이다. 한욱 자신은 과학으로서의 학문을 추구하지만 자기가 지도하는 학생 강세훈의 졸업논문에 대해 “냉정한 객관적 안목으로 비판하면서 주체성의 발판 위에서 다룬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더 이상 학문의 객관성과 주체성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결말부분에서 한욱은 교수의 위치(시민)에서 교수결의문을 통해 교권을 지키며 출옥한 학생에 대한 처벌을 보류하는 등의 저항을 실천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자의 주체성의 범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즉 교수-학자의 주체성은 그것이 상아탑 안에 갇혀서도 안 되지만 청치참여나 현실참여의 형태가 되어서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시기 지식인의 현실참여 문제를 다룬 많은 작품들 가운데 과학으로서의 학문이 현실비판의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이처럼 소설로 천착한 작품은 『창과 벽』이 거의 유일하다. 1960년대 지식인의 사회참여의 양태를 적나라하게 형상화하고 있으며 젊은 지식인의 울분과 열정과는 다른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창과 벽』은 ‘교수-작가’로서 전광용의 진면목에 해당하는 작품인 동시에 당대 지식인 사회의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전광용-작가사진.jpg

소설가 전광용


 3.


   『창과 벽』은 1960년대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다양한 지식인 담론이 생성되고 분화되는 가운데 작가의 ‘지식인적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기 전광용의 다른 장편소설 또한 지식인 담론의 서사화에 주력한 결과물들에 해당한다. 그의 장편소설은 아카데미 속의 대학 교수와 예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주인공들이다. 『젊은 소용돌이』에서는 4·19 혁명의 한 주체이면서 예비 지식인인 대학생들의 현실 참여의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연대의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창과 벽』에서는 대학 교수 집단의 지식인으로서의 현실 참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지식인으로서 시대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그 태도의 문제는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논쟁과 갈등의 과정 속에서 모색되고 성찰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작가적 태도는 『창과 벽』의 주인공 한민에게서 확인되듯이, 과학적 태도로서 학문을 하는 학자의 자의식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실비판의 객관성 문제를 확보하기 위한 학자로서의 과학적 태도는 ‘민족’이라는 과제를 성찰하면서 현실 참여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인으로서의 성찰의 과정은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에 머무르지 않고, 1960년대라는 격변하는 사회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사회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와 아울러 『창과 벽』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의 역사적 현장을 고스란히 ‘보고’하고 있다는 점 또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인 9장과 10장에서는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학생들의 시위를 각종 구호와 결의서 등을 삽입하여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6․3학생운동사’의 역사적 기록에 값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학외(學外)의 ‘언론 보도의 시선’이나 참여 학생의 시선이 아닌 ‘교수의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 또한 전광용의 소설세계에서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광용의 장편소설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이제야 출발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끝)




작성일 : 2018.03.21
저자 소개  

박정희
1976년생. 문학평론가.
서울대 글쓰기교실 연구교수, <문학사상> 제65회 신인평론상으로 등단, 공편 『심훈전집』, 『송영소설선집』 hee00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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