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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남훈의 리뷰]  중력같은 운명이 간절히 우리를 부를 때



- 임동확,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문학수첩, 2017)

 

손남훈(문학평론가)

 



   임동확 시의 중핵이 ‘1980년 5월 광주’라는 사실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첫 시집인 『매장시편』이 그러했고 이후의 시집 또한 그 변주와 연장이었음을 우리는 누차 확인해왔다. 말하자면 ‘억압된 것의 귀환’으로서 그는 썼고 우리는 읽었으며 모두가 동참해 왔던 것이다.




   80년 5월의 광주는 단순히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발발한 역사적 우연으로 여길 사안이 아니다. 거기에는 채 언어화 되지 못한 사람들의 행적과 죽음이 있었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의 피 묻은 욕망을 넘어, 저항하려는 자들의 순결한 희망조차 함께 했었다. 그리하여 광주를 말하는 지금 이 순간, 그것은 과거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하여 우리들을 구성한 육체이자 그 상처가 된다. 그렇게, 5월은 운명이자 소명으로 우리의 몸에 새겨진다. 광주라는 육체를 쓰다듬는다는 것은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수인번호 174517을 묘비에까지 새긴 프리모 레비처럼, “일체의 망각도 허락되지 않는 하나의 명령이자 온몸을 마비시키는 발작처럼 밀려오는 고독과 불의에도 쉽게 굴하지 않으려는” “위엄”(「칸나」)을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견고한 밤의 고요를 뚫고 무사태평한 날들의 비닐하우스를 찢어발기며 백금처럼 불멸하는 기억의 원소들이 온다. 너무도 두렵고 순결하여 차마 발설하지 못한 46억 년 전의 태양계 저편, 굳게 봉인된 시간의 비밀을 물고 지금껏 중심의 별 하나 갖지 못한 채 화성과 목성 사이를 부랑아처럼 떠돌던 운석들이 신의 사자들처럼 몰려온다. 한낱 눈먼 탐사객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단체 관광버스로 몰려와 멈춰 버린 시간의 잔해들을 사냥 나서는 이상한 행성. 비로소 저만의 궤도에 안착한 우연들이 흠 없는 최초의 원형과 예지를 떠안은 채 그만 다급히 콩밭으로 숨어 들거나 개울물로 뛰어든다. 마침내 완강한 사랑의 중력에 붙들린 채 더 낡거나 늙기 이전의 위엄을 불러 모으는 천체들이.

- 「운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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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시인은 80년 5월에 “중력”처럼 붙들려 있다. 이를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운명”이라 했거니와 그것은 시인에게만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라도 스스로의 몫을 주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 시집은 그 운명에 처한 이들, 그 가엾은 모든 (우리) 존재들에 대한 시인의 애도의 언어들로 가득 들어차 있다. 첫 시집 󰡔매장시편󰡕에서 보았던 운명의 형성 과정이 30년도 훌쩍 지난 지금 굳어진 운명으로, 그러나 여전히 반복되는 실재로, 운석처럼 낙하하고 있다. 그것은 때로 “다급히 콩밭으로 숨어 들거나 개울물로 뛰어”들어 쉽게 사라지는 것처럼 “눈먼 탐사객들”에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의 “견고한 밤의 고요를 뚫”는 “불멸하는 기억의 원소들”인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해왔지만, 그저 “무사태평한 날들”을 살아온 시간의 흐름에 맞서, 마치 “화성과 목성 사이를 부랑아처럼 떠돌던 운석”처럼 지금, 여기에 “신의 사자들처럼 몰려”와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비닐하우스”같은 우리의 기만을, 나태를, 눈멂을 “찢어발기”고 있다. 시인은 이를 “기억”이라 말한다. 과거의 그 무엇이지만 시간적 거리로 절연될 수 없는 “완강한 사랑의 중력”이 거기에는 작동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항상 우리는 아이러니였다고, 패러독스였다고, 그것들의 반복이었다고 한 번 더 되새기듯 말하고 있다.

 

   아직 꽃피기에 이른 참싸리가 홍자색 꿈을 꾸며 두런거리는 봄밤. 정적과 평화의 순간은 잠깐뿐, 벌써 숙소 바로 앞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린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 담장 곁 청매실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길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저 멀리 썩은 굴피나무 둥지에 돋아난 노란 개암버섯들이 한낮 천년수 가는 길에 보았던 독사처럼 꼿꼿이 자루를 세우고 갓을 편 채 독을 뿜어내고 있다. 일사불란하게 군락을 이룬 채 흔들리던 동백나무, 비자나무 숲도 돌연 자유 시민이 되어 오직 각자의 명령과 보폭에 따라 흩어지고 모여들기를 반복하고, 북가시나무 위에선 미처 예측하거나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소요와 고요의 기준점을 알려 주며 되지빠귀 새가 홀로 울고 있다.

 

그러나 끝내 미지로 남을 낱낱의 소리들이 밤의 계곡으로 멧돼지처럼 씩씩대며 속속 집결하고 있다.

- 「고요는 힘이 세다」 전문

 

   “정적과 평화의 순간”이 왔다고 여기는 순간 “물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청매실이 떨어져 내리”는 그 때 “노란 개암버섯들”은 “꼿꼿이” “독을 뿜어”낸다. “일사불란” 하던 것들은 “미처 예측하거나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소요와 고요”와 대비점을 이룬다. 말하자면, 대립되는 두 벡터의 힘들이 마치 줄다리기하듯 팽팽한 긴장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시인은 이 두 힘의 동시성을 목격하게 하고 끊어진 문맥 사이에서 우리를 멈칫거리게 한다. 다른 시인들이라면 기피할 것만 같은 접속사, 그러나 이 시집에서는 빈번하게 사용되는 “그러나”는 그 명확한 증례다. “그러나”의 앞뒤에서 우리가 감각한 이미저리는 연속성과 불연속성 사이에서 쉽사리 갈피를 잃는다. 다시 읽고 더 생각하게끔 이끄는 이 멈춤은, 발설된 언어 너머에 발설되지 않은 더 많은 무언가를 우리 앞에 당도시킨다. “끝내 미지로 남을 낱낱의 소리들”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 그것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다”는 진술은 차라리 시인의 친절한 설명에 가까운 것이다. ‘5월 광주’에서, ‘4월 팽목항 앞바다’에서, 우리는 “세상의 눈길이란 눈길을/ 하나의 망막으로 결집하는” 경험을 했지만 실은 “더 이상 그 어떤 예언도, 기도도/ 가닿지 못하는 시선의 사월 바다”(「사월의 바다」)만 먹먹히 볼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러니 시인은 말한다. “네 눈동자와 마주친 내가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너를 찾아서」)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가속도 붙은/ 세월의 등짝이나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그칠 것인가. “고만고만한 꿈꾸기와 해몽의 나날 속에서”(「무제」) 안주할 것인가. 이 시집이 빛나는 자리는 바로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는 데 있다. 단순히 교조적이거나 계몽적인 물음, 관념이 가하는 당위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임동확의 시는 ‘매장’과 ‘수장’ 사이를 관류하는 우리들의 체험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소명에 응답하고 있는 건 아닌지”(「운명 교향곡」)를 새겨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에 새겨진 저 많은 수인번호를, 그 날것의 육체를 다시 쓰다듬어 “가면”이 아닌 “복면을 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섣부른 추측이나 이해들을 연이어 좌절시키는 불투명한 어둠의 근원”(「태백산 시론(詩論)」)에서 “최후의 염치와 자존을 지켜 갈 줄 아는 미래가 남아 있는”(「용산역」)지를 “간절하게 부르”(「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불가능한 애도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기사 제휴 :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2017년 겨울호 원고 재수록

 

작성일 :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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