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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영의 비평 파노라마] ‘허무’에의 직면과 ‘책’이라는 어떤 신에게 보내는 기도

-문보영의 시집 『책기둥』(민음사, 2017) 


 박윤영(문학평론가)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 시편 89장 47절


   우주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허무’(虛無, emptiness)이다. ‘허무한 것’을 뜻하는 히브리어 ‘헤벨’은 ‘증기’나 ‘숨’, ‘호흡’이라는 뜻으로 쉽게 사라지고 말 것을 의미했는데, 이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허무를 악덕으로 여겨 신 앞에서 거짓되고 망령된 상태를 가리키거나 우상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허무라는 어떤 감정은 모든 존재와 그들의 행위를 아무 것도 없고 텅 빈, 무가치 하고 헛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인류가 만약 허무에 사로잡혀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아마 지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문보영의 시집 『책기둥』에는 존재의 허무함이라는 무상성 위에 뿌리 내린 생에 대한 천진한 읊조림이 담겨 있어 흥미롭다. 그녀의 시에서 인간은 신이 입은 “오리털 파카에 갇힌 무수한 오리털들”일 뿐이므로, 살아 있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아쉽게도 “약간 죽은 사람”인 우리는 “삐져나온 오리털을 무신경하게 뽑아 버리”는 행위를 통해 종말을 맞이하며, 신의 약속을 비웃듯, “죽은 이후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으며 천사와 악마도 없고 단지 한 가닥의 오리털이 허공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다 바닥에 내려앉”을 뿐이다.(「오리털파카신」) 즉, 우리는 의미 없는 삶과 감흥 없는 죽음, 그리고 영원한 끝을 향해 달리는 “모기”나 “파리”, “돼지”같은 한낱 미물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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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시시하고 허무한 시인은 “멀리서 봤을 때 지구가 마침표라면 얼른/다음 문장을 써라”라고 조언한다.(「“         *”) 그래서인지, “지말”, “앙뚜안”, “스트라인스”는 “풍성한 바나나”를 소유한 “시인”과 “독자”를 부러워하며 “공동창작”을 시도한다.(「공동창작의 시」) “어린 시인”인 그들은 저마다 “쓸데없는 걸 쓰는” “시작 노트”를 가지고 있으며 “시쓰기는 참으로 쓸모 있는 인간의 놀이”라고 생각한다.(「파리의 가능한 여름」) 그러나 아무렇게나 쓰는, 쓸데없는 글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N의 백일장의 풀숲」에서 시적화자인 ‘나’는 “사전”을 뒤적여 시를 쓰는 “뚱뚱한 시인”을 “절벽”으로 밀어 버리고 “모르는 단어를 갖다 쓴 시를 찢”어 버린다. “시는 자연현상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가 관측 결과와 일치하지 않을 때는 수정되거나 폐기”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법칙」) 


   그러니깐 시인에게는 ‘쓴다’는 행위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가령, 시 「그림책의 두 가지 색」을 비롯하여 「위주의 삶」, 「남는 부분」, 「빵」, 「시인과 돼지」 등의 시적화자들은 일기를 쓰기도 하고, 시나 소설을 짓기도 한다. “도달하려는 마음 없이 밀어 내려는 마음 없이 돌고 있”을(「위주의 삶) 뿐인 시인에게 ‘쓴다’는 행위는 염세의 생각과 자기 파괴의 충동을 일시적으로나마 멈추게 한다. 시인은 무엇인가를 쓺으로써 “무릎에 올려놓은, 깍지 낀 손처럼 누구에게나 무심”한 “시간”과 도처에 널려 있는 “죽음”과 같은 “뒤에 두고 온 것들을 등으로 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인과 돼지」, 「위주의 삶」)


   나는 책을 한 권 더 집어 든다 죽은 아빠가 조각 공원 구석 바위에 앉아 편의점 죽을 떠먹는 내용이다 튼튼하지 못한 투명플라스틱 숟갈로 죽을 떠먹다 바위에 죽을 흘렸다 이야기가 끝난다 다른 책을 펼치면 바위가 죽을 마저 흘리고 있다//나는 정신적 다이어트가 필요해 날마다 책을 읽는다 모든 책의 내용이 같아질 때까지 책을 읽는다 도서관 사서가 같은 옷을 입어서 어제 읽은 슬픈 이야기와 오늘 읽은 행복하지 못한 이야기가 구분되지 않는다.

-「정체성」 부분

 

  작가이면서 독자이기도한 시인의 “정체성”은 도서관을 통해 매개된다. 시인에게 “책기둥”은 “맨 아래 깔린 책을 읽으면 그 위에 쌓은 모든 책을 다 읽는 거나 다름 없”는 통시성으로 짜 올린 공시성의 세계이다. 문보영이 조금 “기울어진” “책기둥” 위로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시편들은 아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반복되는 그저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변을 신경 쓸 재간도 없이, 미래를 도모하지도 않고 오직 한 자리에서 홈을 파며, 어쨌든, 바닥에 흔적을 내고, 그것을 위해 몸을 꼴 대로 꼬며 깊어지는 동작만을 반복”한 문장이 집중한 그 순간일 것이다. (「멀리서 온 책」)





작성일 : 2018.03.16
저자 소개  

박윤영
문학평론가, 편집동인.
2016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숙명여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yuyo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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