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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혁의 아방가르드 주점] 슬픔의 영혼과 고통의 심장

- 신철규의 시, 「심장보다 높이」


                                                 이성혁(문학평론가)



   몸과 마음, 몸의 리듬과 마음의 리듬, 기억과 이미지, 감각과 생각. 그리고 이 쌍들의 상호 전이지대인 정동(affect). 시인이 시를 쓸 때 붙잡고 있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슬픔의 정동을 강하게 감지하는 시인이 있다. 한없는 심연으로 가라앉는 감각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마음으로 빠져드는 시인. 시도 때도 없이 갑작스럽게 급습하는 왼쪽 가슴의 통증에 무방비인 시인.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심장 박동의 속도와 세기, 즉 심장의 리듬은 다시 마음의 리듬을 변화시킨다. 슬픔에 자주 빠지곤 하는 시인들은 그러한 몸과 마음의 변화에 민감하다. 어떤 영혼의 상태를 마음이라고 한다면, 몸과 영혼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듯이. 그렇기에 영혼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리. 고양이들에게도 영혼이 있다. 심장의 리듬에 따라 부풀어지는 꼬리. 그 꼬리는 부풀어 오르는 마음-공포나 적개심, 또는 성적 욕구-을 몸으로 표현한다.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 고양이의 몸은 눈을 감고 내 손길을 편안히 받아들인다. 그 몸은 고양이의 영혼을 평온한 상태에 놓이게 할 것이다. 인간 역시 그렇지 아니한가. 마음이 공포나 분노에 빠질 때 심장의 박동은 빨라지고, 땀은 옷을 적시며, 눈자위는 벌겋게 충혈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슬픔의 영혼을 가진 시인은 슬픔을 몸의 변화, 그 리듬을 통해 강하게 감지할 것이다. 슬픈 영혼을 가진 시인은 마음의 변화를 몸의 강렬한 아픔으로 경험하는 사람이다. 아래의 시를 보면, 신철규가 바로 그러한 시인인 것 같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전기가 나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녹슨 슬픔들이 떠오른다
어두운 복도를 겁에 질린 아이가 뛰어간다

바깥에 아무도 없어요?
내 목소리가 텅 빈 욕실을 울리면서 오래 떠다니다가 멈춘다

심장은 자신보다 높은 곳에 피를 보내기 위해 쉬지 않고 뛴다
중력은 피를 끌어내리고
심장은 중력보다 강한 힘으로 피를 곳곳에 흘려보낸다

발가락 끝에 도달한 피는 돌아올 때 무슨 생각을 할까
해안선 같은 발가락들을 바라본다

우리가 죽을 때 심장과 영혼은 동시에 멈출까
뇌는 피를 달라고 아우성칠 테고
산소가 부족해진 폐는 조금씩 가라앉고
피가 몸을 돌던 중에 심장이 멈추면 더 이상 추진력을 잃은 피는 머뭇거리고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고
할 말을 찾지 못해 바싹 탄 입술처럼
그때 내 영혼은 내 몸 어딘가에 멈춰있을까

물이 심장보다 높이 차오를 때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깊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무의식중에 손을 머리 위로 추켜올린다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이 무너지고 가라앉으면 안 되는 것들이 가라앉았다
물속의 얼굴들은 반죽처럼 흘러내렸다
덜 지운 낙서처럼 흐릿하고 지저분했다

누군가가 구겨버린 꿈
누군가가 짓밟아버리는 꿈

어떤 기억은 심장에 새겨지기도 한다
심장이 뛸 때마다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간다

나는 무섭고 외로워서 물속에서 울었다
무섭기 때문에 외로웠고
외로웠기 때문에 무서웠다
고양이가 앞발로 욕실 문을 긁고 있다

다시 전기가 들어오고 불이 켜진다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흐린 천장이 눈에 들어오고

어둠과 빛 사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서로를 조금씩 잃어가면서
서로를 조금씩 빼앗으면서

납덩이가 된 심장이 온몸을 내리누른다

                         - 신철규, 「심장보다 높이」, 󰡔문학동네󰡕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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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영혼을 가진 시인은 마음의 피부가 얇아서, 그의 마음과 몸은 즉각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그래서 마음은 외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인에게 외부 상황의 변화는 우선 그의 몸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는 마음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무의식적) 기억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외부 상황의 변화에 변화되는 슬픈 영혼의 마음에는 기억에 잠재해 있던 과거의 이미지들이 부상浮上한다. 위의 시에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이에 전기가 나간 상황 변화에, 시인이 “녹슨 슬픔들”의 마음을 갖게 되는 동시에 “어두운 복도를 겁에 질린 아이가 뛰어”가는 이미지를 떠올리듯이 말이다. 녹이 슬 정도로 마음 깊숙한 곳에 오래 넣어 두었던 시인의 슬픔들. 그것들은 아이 때 겁에 질렸던 기억과 연동되어 있다. 그 기억은 어떤 건물에 홀로 남겨져 있었던, 공포와 고독을 동시에 느꼈던 경험이리라. 지금 “텅 빈 욕실을 울리면서 오래 떠다니다가 멈”추는 시인의 목소리처럼, 그 아이는 어두운 복도에서 오래 뛰어다녔으리라.


   홀로 있음의 공포에 대한 시인의 기억은 이제 슬픔의 녹이 슬어 있다. 그는 생명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공포를 넘어 슬픔을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슬픔이란 피를 쉴 새 없이 뿜어대야 하는 운명을 가진 심장의 슬픔이다. 시인은 가슴을 울리는 심장의 쉼 없는 박동으로부터, 몸속을 흘러 다니는 피의 멈출 수 없는 유랑으로부터 슬픔을 느낀다. “피를 끌어내리”는 중력에 대항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보다 높은 곳에 피를 보내기 위해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심장의 운명. 박동하는 심장으로부터 출발하여 몸의 끝인 “해안선 밭은 발가락들”까지 다다르고는 다시 심장으로 귀환해야 하는 여정을 반복하는 피의 운명. 그렇게 끊임없이 뛰어야 하는 심장과 여정을 반복해야 하는 피가 삶을 유지시킨다.


   마음은 심장의 박동과 피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포는 심장과 피의 리듬을 급격히 변화시킬 것이다. 공포는 죽음, 즉 심장의 운동이 멈추리라는 예감에서 비롯된다. 하여, 공포는 마음과 몸이 공동 운명체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심장이 멈추고 피가 여정을 다한다면, 마음의 주체인 영혼 역시 자신의 삶을 끝마칠 것이다. 영혼의 정지는 말할 수 있는 능력 역시 다함을 의미한다. 심장이 “더 이상 추진력을 잃”어서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게 된 피처럼, 영혼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은, 그래서 “할 말을 찾지 못해 바싹 탄 입술”의 모습이다. 그 영혼의 모습은 죽음의 예감으로 텅 빈 복도에서 겁에 질려 우는 아이의 모습과 같다. 그 예감은 “물이 심장보다 높이 차오를 때”의 불안처럼 서서히 나타난다. 그 불안은 ‘몸-심장’이 먼저 느낀다. 그렇기에 “깊은 물속으로 들어갈 때” 몸은 “무의식중에 손을 머리 위로 추켜올”리면서 불안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것 아니겠는가.


   시인은 여기서 또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반죽처럼 흘러내”리는, 물속으로 가라앉아 익사한 사람들의 “덜 지운 낙서처럼 흐릿하고 지저분”한 얼굴들을 말이다. 이 얼굴들은 2014년 4월 16일에 익사한 아이들의 얼굴 아니겠는가? 꿈 많은 그 아이들의 죽음. “누군가가 구겨버”리고 “짓밟아버”린 아이들의 꿈. 짓밟혀버린 아이들의 ‘꿈-삶’을 당시에 접한 시인은 아마도 해야 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영혼은 그들의 죽음 앞에서 정지하고, 그리하여 마치 자신의 영혼 역시 죽음에 다다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어서, 그의 심장은 마비된 듯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렇듯 “전기가 나간 욕실에서, 죽음의 예감으로 공포에 떨었던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시인은 몸과 영혼이 강제로 정지되어야 했던,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이 무너”진 사태를 생각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은 공포를 떠올리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공포를 추체험하고, 어두운 물속에서 외롭게 죽인 이들의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생생한 공포는 심장이 마비되는 것과 같은 고통을 가져오리라.


   고통을 가져오는 기억은 심장에 새겨지는 것, 그 심장이 뿜어대는 피가 돌아다니는 혈관에는 고통의 기억이 들어 있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삶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보아야 했던 아이들처럼, 욕실이란 닫힌 공간을 벗어나고자 “앞발로 욕실 문을” 긁고 있는 고양이의 혼처럼, 그의 영혼은 외롭고 무서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두운 복도에 홀로 있는 아이처럼 “무섭기 때문에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무”서움을 느낀다. 시인에게 이 외로움과 무서움은, 전기가 들어와서 욕실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욕실 밖에서도, 그의 영혼은 물속에 머리를 박고 “무섭고 외로워서” 울게 될 것이다. 이제 그의 혈관에는 고통이 되어버린 ‘피-기억’이 돌아다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에 따르면, 그에게는 “어둠과 빛 사이에” 언제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보이게 될 것인데, 고통의 기억을 뿌옇게 부상시키는 그 김은 어둠과 빛이 서로를 빼앗아 자기 자신을 잃도록 이끌 것이다. 그리하여 “심장보다 높이” 손을 들어야 하는 시인의 몸과 마음의 슬픈 운명은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며, 그렇게 고통의 기억으로 무거워진 심장은 ‘납덩이’처럼 변하여 그의 “온몸을 내리누”를 것이다.


   이렇듯 전기가 나갔다가 들어오는 잠시 동안의 시간에서, 욕조의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시인은 납덩이가 되어버린 심장이 만들어낼 무거운 슬픔의 리듬으로 자신의 삶이 힘겹게 살아나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 리듬은, 비록 외로움과 무서움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울지라도, 삶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 이 글은 󰡔시와 사람󰡕 2018년 봄호에 실린 필자의 「슬픔의, 기쁨의, 고요의 리듬들」 일부를 수정한 것입니다.




작성일 : 2018.03.13
저자 소개  

이성혁
1967년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문화 다》 편집주간.
1999년 《문학과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2003년 《대한매일신문》 문학평론 당선. 평론집으로 『불꽃과 트임』,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 『서정시와 실재』,『미래의 시를 향하여』 등. redland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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