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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혁의 아방가르드 주점] 서정시의 영원한 주인공, ‘당신’

- 두 편의 서정시를 읽고

                                                     이성혁(문학평론가)



  아래에서 이야기할 김행숙과 신동옥의 최근작을 읽으면서, 서정적 울림의 연원은 붙잡을 수 없는 저기 사랑하는 ‘당신’의 존재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김행숙의 시부터 읽어본다.  


낮에는 그 해변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 모래 알갱이가 자꾸 눈에 들어갔습니다. 낮에 내 눈은 점점 빨개졌습니다. 타는 눈동자, 깨진 무릎, 혓바늘, 코피, 벽돌, 깃발, 무쇠솥 등등이 모두 붉었고, 붉은 것들이 낮을 데웠습니다. 밤에도 열에 들떠서 나는 낮에 하던 생각을 멈울 수 없었습니다.


낮의 해변으로부터 계속 그 길인 줄 알고 밤의 바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찬물이 밤이었습니다. 물질적 변용이 밤의 성질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점점 깊어지는 것이 밤이었습니다. 어느덧 깊이를 모르겠는 것이 밤이었습니다. 아아, 내게서 길이 사라집니까 …… 길에서 내가 사라집니까……


노래를 부르는 그 입술은 누구의 것입니까? 나는 당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무한히 좇았습니다. 그 입술에 드디어 나는 닿을 듯, 닿을 듯한데, 한 번만, 한 번만, 이 어두운 눈을 등잔처럼 밝혀주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요. 나는 당신을 비추는 전신 거울처럼 서 있겠어요. 제발 눈을, 눈을, 좀 뜨세요. 내가 호소하면, 당신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영원히 뱉지 않는 검은 귀.


어느 별이 우주의 검은 귀가 됩니까? 나는 잊고 잊힙니다. 당신은 잊고 당신은 잊힙니다. 나는 당신의 무덤에서 잘 자고, 당신은 내 무덤에서 잘 잡니다. 잠에서 덜 깼을 땐 그곳에 남아 있는 내가 느껴졌어요. 아침에 일어나면서 나는 당신을 팔아넘겼고, 당신은 나를 다 팔아치웠어요.


요즘 도시 아이들은 구멍가게라는 단어를 모르고 자라지만 걔들도 크면 저마다의 구멍가게를 가슴에 품겠지요. 그러려고 아침밥도 먹지 않고 부리나케 학교로 가는 거겠죠. 늦었어. 죽었어, 망했어. 아침에 아이가 남기고 간 말입니다. 그것은 다 내가 했던 말입니다. 아아, 다 감긴 테이프처럼 똑같은 노랫말로 되돌아오는 것이 정년 아침의 속성이란 말입니까?
                               - 김행숙, 「낮부터 아침까지」, 󰡔문학과사회󰡕 2017년 여름호 

 
   이 시는 이젠 중견 시인이 된 김행숙 시인이 그간 자신이 걸어왔던 시혼(詩魂)의 궤적을 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연까지의 문장들의 시제가 과거이고, 아이-아마도 시인의 아이일 것이다-가 나오는 마지막 연의 문장들이 현재 시제인 것을 보면 그러한 생각이 틀리진 않는 것 같다. 이에 이 시를 시인의 자신의 삶에 대한 상징적 회고로 보고 읽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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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연은 낮의 시절에 대한 회고다. 시인에게는 낮의 시절이 있었던 것, 그런데 시인은 주로 바람이 많이 불어 모래 알갱이가 날리는 해변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 낮의 해변에서 시인은 어떤 삶을, 어떤 시간을 살았는가? “붉은 것들”에 달아올라 눈이 “점점 빨개졌”던, 그렇게 눈이 타는 시간을 살았다. 열에 들뜬 시간, 그리하여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시간을, 그는 살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2연에서 회고되는 밤의 시절에서는, 시인은 차가운 시간을 살았던 것 같다. 시인은 낮의 해변이 계속 이어지는 줄 알고 길을 가다보니 “바다로 걸어들어”가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시인의 몸을 휘감았을 찬 바다는 스스로 ‘물질적 변용’을 일으키며 점점 깊어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내게서 길이 사라”지는 것만 같고 “길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만 같은, 바다 속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검은 시간을 살았다….


   낮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길을 이끈 것은 3연에서 등장하는 ‘당신’인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당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무한히 좇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당신의 노래에 이끌려 밤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시인은 당신과의 입맞춤을 욕망하며, 하여 당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애원하며, 노래가 흘러나오는 입을 좇아 밤바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당신이 눈을 떠서 “등잔처럼 밝혀주”어야, 당신의 모습이 “전신 거울”이 된 시인에게 비추이면서 시인은 당신을 볼 수 있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결국 눈을 뜨지 않는다. 당신은 노래를 불러 시인을 유혹하면서도 시인의 호소를 듣기만하지 그 호소에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은 시인을 유혹하는 노래 부르는 입과,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영원히 뱉지 않는” 블랙홀 같은 귀만을 가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귀는 하늘의 우주에 있는 어떤 별-“우주의 검은 귀”와 같은–이라고 시인은 생각했다. 당신은 별처럼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당신과 입 맞추기를, 당신을 볼 수 있기를 시인은 욕망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시인이 도달한 곳은 길이 사라지고 ‘내’가 사라지는 어둠 속이다. 당신은 결국 시인을 검은 밤바다로 끌고 들어가서 시인을 깊이 모를 심연으로 빠뜨려 지워버리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당신과의 만남을 포기한다. 4연에서 그는 “나는 잊고 잊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잊자 당신도 ‘나’를 잊는다. 그렇게 내가 ‘당신’에게 잊히듯이 당신도 ‘내’게 잊힌다. 그리하여 내게 당신은 죽어 내 마음에 놓인 무덤이 되고, 당신에게 나는 죽어 당신 안에 놓인 무덤이 된다. 당신과 나는 서로의 무덤에서 잠을 자게 될 것이다. 나와 당신이 서로를 죽이고 서로의 무덤에서 잠에 빠져듦으로써, 심연의 숨 막히는 밤의 시간은 한밤중의 잠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잊었지만 서로에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와 당신에게 당신과 나는, 무덤이 되어 서로의 잠잘 공간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잠의 바탕이 되어 어떤 잠재성으로 존재한다. 잠재성은 사라지지 않는 것, “잠에서 덜 깼을 땐 그곳에 남아 있는 내가 느껴졌”다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침에 시인이 깨어났을 때, 그는 당신이 내게 남아있는 자취까지 팔아넘기고 만다. 나와 한 쌍인 당신은 이번에도 시인과 마찬가지로 ‘나’를 팔아치워 버린다. 시인에게 아침이라는 시간은 저 낮의 붉은 뜨거움과 밤의 차가운 물 속 심연으로부터 결별하는 시간인 것일까. 그런데 이 결별은 ‘팔아치운다’라는 말의 뉘앙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죄책감과 환멸을 동시에 동반하는 것 같다. 그렇게 아침의 시인은 자신을 유혹하며 이끌었던 당신과의 시간과 씁쓸하게 이별했다. 그는 불과 얼음의 시간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자신이 어릴 적 했던 말-“늦었어, 죽었어, 망했어”-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을 보면서 “다 감긴 테이프처럼 똑같은 노랫말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침의 속성”임을 깨닫는다. 낮부터 아침에 이르는 나의 테이프는 다 감겼으나, 그 테이프는 다시 되돌아가 저 아이의 삶을 새로이 기록하고 재현할 것이다. 저 아이 역시 낮의 시간을 지나 밤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고 잠에 들 것이며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구멍가게’라는 말은 모르더라도 시인처럼 자신의 “구멍가게를 가슴에 품”게 될 것이다…. 그 구멍가게란 불과 심연의 흔적이 담긴 시가 진열된 곳 아니겠는가. 꼭 그 시가 글로 쓰여진 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위의 시를 이렇게 자세히 읽어보니 이 시는 낮-밤-한밤중-아침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삶을 통해 인생의 사이클, 나아가 후대로 이어지는 삶의 사이클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삶의 핵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당신과의 관계가 놓여 있다. 시인의 후세대 역시 격렬한 낮을 지나 ‘당신’의 노래를 통해 밤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위의 시를 읽어보니, ‘당신’이라는 존재는 서정시의 영원한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아가 역시 ‘당신’을 절실하게 부르고 있는 아래의 서정시를 읽으면서, 서정시란 사랑하는 당신이 떠나갔기 때문에 쓰기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바람의 페달을 밟나봐
아득하게 울리는 풍금소리.

당신이 떠나고 더욱 멀어진 골짜기 언덕으로
눈은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을 파묻고 녹아 흐르네.

맹렬하게 사라지는 희디흰 빛 속에
갈기를 세우고 내달리는 물줄기의 계절감.

떨지 않고 울지 않고
침묵으로 닮아가는 돌멩이의 마음가짐으로
식탁보에 싸서 흘려보내던 슬픔을 기억해.

떨리는 손끝으로 빚어낸 그늘만큼
다시 숲을 키우는 꽃 덤불 볼까.

세상 모든 길은 당신 눈동자로 흐르고
아득하게 울리는 풍금소리.

산너머 다니던 나의 사랑
밤은 우리의 마지막 뼈마디여서
물살에 부서져 더욱 빛나는 당신 눈동자
                     - 신동옥, 「홍하의 골짜기」, 󰡔문학동네󰡕 2017년 여름호


   사랑이 하나의 사건이라면 당신의 떠남 역시 사건이다. 사랑하는 당신이 ‘나’를 떠나야만 했을 때,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것을 위의 시는 보여준다. 위의 시에서 당신이 떠나고 난 후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서정적 주체인 ‘나’의 감각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우선 ‘아득함’의 감각이 형성된다. 어디서 풍금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소리는 마치 ‘바람의 페달’을 밟는 것처럼 ‘아득’하다. ‘아득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가물가물할 정도로 매우 멀다”(다음 사전)이다. 풍금소리는 저 멀리서 바람을 타고 들려온 것처럼 들려왔던 것, 당신이 떠난 후 ‘나’의 청각과 시각은 모든 것들이 멀리서 다가오는 듯한 아득함의 감각에 놓인다. 저기 ‘골짜기 언덕’ 역시 “더욱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아득함의 감각은 “모든 것을 파묻고 녹아 흐르”는 폭설 때문에 더욱 깊어지고 나아가 역설적으로 거세지기도 한다. 녹아 흐르는 눈은 “맹렬하게 사라지는 희디흰 빛”을 시인의 눈에 폭력적으로 쏘아붙이면서 “갈기를 세우고 내달리는 물줄기의 계절감”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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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거세게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희디흰 빛의 아득함과 그와 동시에 내달리듯 모든 것을 녹이며 밀려오는 물줄기의 감각은, 당신이 떠난 이후 시인의 마음에 일어난 슬픔과 격정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저 감각에 시인은 휩싸이지 않는다. 침묵하는 “돌멩이의 마음가짐”이 되어 “떨지 않고 울지 않”으면서, 아마도 당신과 함께 밥을 먹었던 식탁보에 싸인 슬픔을 기억한다. 하지만 시인은 “떨리는 손끝으로” 침묵의 그늘을 빚어내는 마음만큼 당신과 함께 “다시 숲을 키우는 꽃 덤불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보는 것이다. 그 기대에 따라 당신을 더욱 절실하게 원하면서, 아득했던 세상의 길은 이제 희디흰 빛이 흘러내리며 “당신의 눈동자로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저 멀어진 골짜기에서 바람소리처럼 아득하게 울렸던 풍금소리 역시 “산너머 다니던 나의 사랑”이 보내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편으로 시인의 마음에는 폭설의 흰빛 ‘물살’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이 보내는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시인은 더욱 마음 아프다. 그리하여 거세지는 흰빛 물살은 길을 빛내던 “당신 눈동자”를 부서뜨리고 말 것이다. 허나 시인은 그때 더욱 당신의 눈동자가 빛날 것임을 알고 있다. 그 이유를 그는 “밤은 우리의 뼈마디”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독자에게 도리어 수수께끼를 던져주는 말이겠지만, 당신이 없는 시인의 마음은 밤일 것이요, 그 밤에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절실해져 세상 모든 길에 당신 눈동자가 또한 흐르게 되리라고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서 깊은 밤일수록 당신 눈동자는 ‘마지막’으로 삶을 지탱하는 흰 뼈처럼 빛난다. 슬픔의 거센 물살은 그 뼈마저 부서뜨릴지 모르지만, 그럴 때에도 당신 눈동자는 더욱 빛나며 밤을 지탱할 것이다.


   이렇게 당신이 떠났을 때 사랑은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을, 위의 시는 선명하면서도 아득하게, 여러 대조적인 이미지-특히 색채 이미지-를 구성하면서 보여준다. 특히 단단한 이미지와 유동적인 이미지 사이의 긴장은 시의 공간을 응축하면서도 확장한다. 사랑하는 당신이 떠난 것에 대한 슬픔의 격정을 이렇게 “돌멩이의 마음가짐”으로 견디면서, 마음의 밤으로부터 빛나는 당신 눈동자의 이미지를 기어코 길어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신동옥 시인이 마음의 고통과 슬픔을 묵묵히 견딜 수 있는 삶의 연륜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삶의 연륜이 깊어지더라도,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 이 글은 <시와 표현> 2017년 9월호에 실린 「서정시의 변치 않은 연원, ‘당신’」의 중간 부분을 수정한 것입니다.




작성일 : 2017.11.08
저자 소개  

이성혁
1967년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문화 다》 편집주간.
1999년 《문학과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2003년 《대한매일신문》 문학평론 당선. 평론집으로 『불꽃과 트임』,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 『서정시와 실재』,『미래의 시를 향하여』 등. redland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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