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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의 시지푸 숨결] 회향의 시학

안상학 시인의 시 세계

김정남(소설가, 문학평론가)


   불교에서 말하는 회향(廻向)이란 자신이 쌓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중생과 다른 불과(佛果)에 돌아가도록 하는 일을 뜻한다. 이는 다시 보리회향·중생회향·실제회향이라는 삼종(三種) 회향으로 나누어진다. 이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안상학 시인이 1988년 등단 이래 일구어온 27년간의 시력(詩歷)을, 나는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회향의 가치로 설명하고 싶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과 지혜를 나눈다는 이 이념은 진리 추구의 가치를 지탱하는 두 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를 조화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행위의 진리 추구 방식도 이와 동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학 안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소통 부재의 무중력의 공간 속에 가두는가 하면, 예술적 계기성을 경험적 현실로부터 직접적으로 연역하려는 오류가, 지금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등단작인 「1987年 11月의 新川」을 떠올린다.


검은 물만 흐르는 신천 가득
철새는 날아올 수 있을까 날아와
저렇게 시린 발목을 담그고 있어낼까
신천을 가로지른 철교 아래
신천동 산동네 사람들이 모여 나와
영세민 취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철새무리
장화를 신고 오물을 건지는 아저씨, 철새
수건 미리 쓰고 돌 나르는 아줌마, 철새
허접 쓰레기 소각하는 할머니 철새, 할아버지
철새, 매캐한 연기는 바람 부는 방향으로 누워 흐르고
하천 둑에 붙박인 녹색 깃발은 제자리 펄럭임을
하고 있다 정오 한때
낮은 하늘에 걸린 전투기 한 대 여전히
철새는 날아오지 않고 사람들이
식어버린 밥을 먹고 모닥불 가에 모여든다
천변 봉제공장 여공들은 잠시 은행잎처럼
몇몇은 담장 밑에 옹송그리며 앉아 있고
더러는 노점 떡볶이를 먹으며 재잘대고 있다
늦가을 바람에 날리는 햇살 속에서
낙엽들만 철새처럼 와그르르 몰려다니는
저 썩어 흐르는 신천은 무사해도 되는가
무사해도 되는가
「1987年 11月의 新川」부분


   이 작품은 신천교 부근의 황량한 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검은 물만 가득 흐르는 신천에서 취로사업을 벌이고 있는 산동네 주민들을 철새무리에 비유하면서, “썩어 흐르는” 한 시대의 공간이 무사하게 용인되는 현실을 예리하게 건저 올리고 있다. 파편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무심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은 소외된 한 시대의 공간을 부조하는 미적 장치인데, 이 속에서 시인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이성복, 「그날」) 현실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미학적 형상화와 사회적 의미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위에서 언급한 회향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보리의 과덕(果德)이 중생회향의 가치와 이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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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미, “「기느리댁 사랑채」에서 사랑어른의 인품이 일곱 살 난 딸아이에게로 전해졌듯이, ‘아배’의 푸근한 인품”(졸고, 「애틋함과 불편함 사이」, 『시작』, 천년의시작, 2008. 9.)이 그대로 시인에게 전해져, 그의 윤리의식의 기틀을 이룬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시집 『아배 생각』(애지, 2008. 5)에 수록되어 있는 「도라지꽃 신발」, 「아배 생각」, 「아버지의 감나무 이야기」, 「수평선은 없다」, 「아버지의 검지」등의 작품이 그 좋은 예가 된다.


지문이 반들반들 닳은
아버지의 검지는 유식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신체에서 눈 다음으로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언제나 첫줄은 안중에 없고
둘째 줄부터 읽었을 것이다, 검지는
모든 책 모든 쪽 첫줄을 읽은 적 없지만
마지막 여백은 반드시 음미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중략)

나는 이렇게 아버지의 여백을 읽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의 검지」부분


    화자는 아버지의 검지가 유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밑줄을 긋듯 길잡이”가 되어준 검지가 언제나 “점자를 읽듯 다음 줄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줄은 안중에 없고/둘째 줄부터 읽었을” 아버지의 검지는 “마지막 여백은 반드시 음미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시가 여기까지라면 검지를 대고 책을 읽는 독서 행위 자체를 현상적으로 풀어낸 것에 머물겠지만, 시는 그 다음의 비약을 준비한다. 어디선가 아버지가 “이 시를 읽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는 화자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판단의 주관자로 개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자식은 “아버지의 여백”을 읽는 검지라는 인식에까지 나아가면, 세대의 순환에 개입되는 존재론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시적 의미가 확산되고 있음을 감득할 수 있다.

 

   시 속에 내재해 있는 이러한 도약의 순간은, 하나의 의미가 새로운 의미와 만나고 더 큰 의미망으로 확산되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물상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갈대가 한사코 동으로 누워 있다
겨우내 서풍이 불었다는 증거다

아니다 저건
동으로 가는 바람더러
같이 가자고 같이 가자고
갈대가 머리 풀고 매달린 상처다

아니다 저건
바람이 한사코 같이 가자고 손목을 끌어도
갈대가 제 뿌리 놓지 못한 채
뿌리치고 뿌리친 몸부림이다

모질게도
입춘 바람 다시 불어
누운 갈대를 더 누이고 있다
아니다 저건
갈대의 등을 다독이며 떠나가는 바람이다
아니다 저건
어여 가라고 어여 가라고
갈대가 바람의 등을 떠미는 거다
「선어대 갈대밭」전문


   이 작품은 바람과 갈대밭 사이의 관계를 “아니다”라는 부정어를 개입시킴으로써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부정어는 전술한 의미를 삭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중첩하기 위한 부가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현상적으로 갈대가 동쪽으로 누워있는 것은 “겨우내 서풍이 불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사실의 배후에 존재하는 의미를 갈대와 바람의 관계를 통해서 인격화시키고 있다.

 

   갈대가 동으로 누워 있는 상황성은 다음의 네 가지로 의미가 부여된다. ⑴바람에게 갈대가 “머리 풀고 매달린” 상처,  ⑵같이 가자는 바람의 손목을 “뿌리치고 뿌리친 몸부림”, ⑶“갈대의 등을 다독이며 떠나가는 바람”, ⑷“어여 가라고” 갈대가 바람의 등을 떠미는 것. 여기서 ⑴과 ⑵가 사랑의 상처와 몸부림으로 가득 찬 “겨우내”의 상황이라면, ⑶과 ⑷는 고단한 시련의 시간이 지나가고 별리의 상황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입춘” 무렵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형상화된 바람과 갈대의 인격적 관계는, 인간사에 존재하는 무수한 봉별(逢別)의 상황성에 대한 하나의 전범적(典範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서로를 다독이는 담담한 이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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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자연사를 이해하는 시인의 시관 속에서 인간은 부정적 계기로 작동하며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을 요구한다. 다음 시에서 “내 손이 슬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의 부정성이 오롯이 드러난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시 정신이 사회적 의미망으로 확산되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손으로 사는 동안
잘 난 사람들의 손은 악마적이다 
앞발이 손이 되는 것은 대체로 소유를 위해서며
앞발이 손이 되는 것은 대체로 폭력을 위해서며
앞발이 손이 되는 것은 대체로 군림을 위해서다

두 손으로 사는 동안
못 난 사람들의 손은 더 악마적이다
대체로 자본 앞에서 빌어먹기 위해서며
대체로 폭력 앞에서 싹싹 빌기 위해서며
대체로 권력 앞에서 두 손 들기 위해서다
「내 손이 슬퍼 보인다」부분


   이 작품에서 화자는 직립을 통해 얻어진 두 손의 자유를 부정한다. 짐승의 네 발과는 달리인간의 두 손은 “악마적”이라고 말한다. “잘난 사람들”의 두 손은 소유․폭력․군림을 위해서, “못난 사람들”은 두 손은 대체로 자본 앞에서 “빌어먹기”, 폭력 앞에서 “싹싹 빌기”, 권력 앞에서 “두 손 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 두 손의 극한은 결국 끊임없는 싸움이며, 인류의 시간은 바로 이러한 “싸움을 재생산하는 역사”라고 정의한다.

 

   화자는 과자를 주려고 손을 내밀면 뒷발로 서서 허우적거리는 개의 앞발이 “무언가 얻으려고 안달하는 내 손인 듯하여” 서글프다 말한다. 하지만 배가 부르면 바로 발로 돌아가는 “도무지 잉여를 모르는 저 개의 손”을 보며 스스로를 반성한다. “과자를 주면/이내 네 발로 돌아가는 저 단순한 동물”과 아욕(我慾)의 늪에서 끝없이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삶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욕계(欲界)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근본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딛고 사는 “발밑이라는 곳”을 통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발밑을 가진 적 없는 젖먹이와
발밑을 상실한 노인의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닮았다
발밑을 잠시 버리고서야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몸짓
발밑 없이 와서 발밑과 동행하다 발밑을 잃고서야 돌아가는 인생
때가 되면 발밑에 연연하지 않아야 될 때가 한번은 오는 법이다
「발밑이라는 곳」부분


   발밑을 가진 모든 존재는 “단독자”다. 생은 “발밑 없이 와서 발밑과 동행하다 발밑을 잃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의 발밑은 “신성불가침 지역”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무수한 전쟁은 많은 이들의 발밑을 빼앗았고, 그들을 죽인 전범들의 발밑도 모두 “발바닥에서 이탈”했다. 세상 모든 존재의 발밑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는 존재의 고유성과 신성성을 시인은 “나무들에게서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제가 디딘 땅 안에서만 자유를 구가하는 나무와 같이 우리는 모두 홀로선 단독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집단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인 국가주의나 지역주의, 패권주의 등등의 광기가 ‘온전한 단독자’로서의 인간 실존을 끊임없이 침해해 왔던 것을 생각할 때, 시인이 말하는 발밑의 존재성은 오롯이 빛을 발한다. 

  

   그러므로 “먹지도 않는 인간을 인간이 죽이는 것”(「팔레스타인 1,300인―그들은 전사하지 않고 학살당했다」)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수성(獸性)을 상실한 인간의 “무딘 어금니”와 “귀여운 발톱”이 결국 총칼의 역사를 쓴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학살을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날카로운 어금니를 기르고/매서운 발톱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평화가 가깝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사의 쟁투를 자연계의 약육강식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시인에게 이는 어불성설이다. “사자가 얼룩말을, 매가 들쥐를 잡아먹”는 자연계의 먹이사슬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살상과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총칼로 저지른 피의 역사는 “학살”이라는 철저한 인위(人爲)의 결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인이 「두더지꽃」이라 명명한, 길냥이들에게 죽임을 당한 두더지의 선혈 낭자한 죽음의 현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무런 인연이 없다할 수도 없는 이 꽃의 순환은
내 몸속 내 피의 순환과 썩 다르다 할 수는 없겠지요만
대체 내가 먹는 이 쌀꽃은 또 누가 피운 걸까요만
점심을 먹는 내내 내 머리는 자꾸만 두더지꽃을 곱씹고만 있네요만
없는 인연 서로를 아낄 때 꽃이 피기는 피는 거겠지요만
「두더지꽃」부분


   어느 날, 아침 현관 앞에 피범벅이 된 두더지의 주검이 놓여 있다. 이를 시인은 “두더지꽃”이라는 감각적인 시어로 치환하면서 이 인연의 사슬에 자신이 어떻게 간여(干與)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숙고한다. 우선 사료를 먹은 길냥이들의 보은이나 자랑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순환은 살풍경하기만 하다. 화자는 길냥이들에게 사료를 주었으나, 두더지를 잡아다 바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꽃의 순환” 속에 화자가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인연 없는 서로를 아낄 때 꽃이 피는 법”이라는 경구와 마주치게 된다. 가까운 인연에 대한 사랑은 때에 따라서 소유와 집착으로 변질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는 윤리는 쉽게 가족이나 국가, 더 나아가 인류라는 집단 속에 우리를 밀어 넣기 때문이다. “그대들에게 가장 먼 것에 대한 사랑을 권한다”(프리드리히 니체,『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말과 같이, 멀리 있는 인연을 사랑할 때 오히려 그것은 꽃이 된다. “내가 먹는 쌀꽃”이 특정인을 위해 예비된 것이 아니듯 말이다. “두더지꽃”으로 명명한 “피꽃” 앞에서 시인은 몰아(沒我)를 벗어난, 연기(緣起)의 사슬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연은 무수한 엇갈림을 전제로 한다. 여기, 선명한 이미지로 그 아이러니를 가슴 서늘하게 그려낸 한 편의 시가 있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부분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려야 했다고, 화자는 깊은 후회의 말을 토로한다. 사람의 눈에는 인연의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기에 조급하기 마련!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고,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으로 건너”가고 마는 것이다. 그대로 그 자리에서 연꽃처럼, 민들레처럼 “뿌리 내린 듯”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비로소 그 사람이 아침처럼,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다는 아이러니!


   거대하게 순환하는 우주적 시간이 절대적이라면, 실존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개별자들은 계산될 수 없는 지점들로 흩어져 있다. 문학은 어디에 주목하는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시간(圓)을 넘어, 무수한 점들 안에서 공통적인 것을 추출한 인과론적인 시간(線)을 가로질러, 무수한 개별자들의 엇갈림과 그 실존의 무게(點)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라는 뼈아픈 오회(悟悔)가 모든 문학적 글쓰기의 씨앗이자 출발점이 아니겠는가.


   “마하반야바라밀다”는 큰(마하) 지혜(반야)로 피안(바라)에 이른다(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 옥타비오 파스는 이 “피안에 이름”을 하나의 초월 혹은 도약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앞서 거론한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시 정신도, 시에 내재한  도약의 순간에 얻어진다. 가령, 새벽에 피우는 담뱃불에서 반딧불을 떠올리고 결국 자신을 “무정의 알”(「새벽 담배」)로 여기는 이 시적 계시의 순간! 이처럼 문학은 항시 “바라밀다”하고자 한다. 안상학 시인의 시가, “활의 시위처럼 리라의 현”처럼, “치명적인 도약”의 순간을 내재한 화약의 언어가 되어, 깊고 너른 회향(廻向)의 시학을 일구어나기길 빈다. “이상하리만치 사랑하는 것들과 가까이 살 수 없는”(「소풍」) 그의 고단(孤單)한 이번 생은 어쩌면 이를 위해 예비된 업(karma)인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열린 시학』2015년 겨울호에 발표된 안상학 시인의 시세계를 조명한 작품론을 재게재한 것이다.





작성일 : 2017.10.30
저자 소개  

김정남
1970년생. 소설가, 문학평론가.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 펴낸 책으로 문학평론집 『폐허, 이후』·『꿈꾸는 토르소』·『그대라는 이름』, 소설집 『숨결』(제1회 김용익 소설문학상 수상작)·『잘 가라, 미소』(2012년 4분기 우수문학도서),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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