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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진희의 문학 공감] 차가운, 열애

- 신달자 시집 『열애』(민음사, 2017)


엄진희(문학평론가) 


  일상이, 현실이 아름답지 않거나 혹은 정의롭지 못하다면 시는 일상어로 쓰여질 수 없다. 그래서 시인들은 ‘시적 언어’를 쓰는 것이고 그 시적 언어란 유창하고 화려한 기교 같은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말을 더듬거리는 데서 찾아질 때도 있다.


   신달자의 언어들이 그렇다. 언어를, 문법을 더듬거리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언어 안에서 이방인이 된다는 것’(이진경 외 역, <천의 고원>, 124; Ⅰ, 104)이다. 시는 ‘지금까지의 자신과 결별’하면서 탄생(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신상희 역, 나남, 2010, )하는 것인지 모른다. 자신의 언어의 한계에 마주쳐서 말더듬을 수 밖에 없는 운명.


   같은 말을 반복한다든지, 내가 지금 어떤 상태나 처지에 놓여 있는지 말할 수 없을 때 그리고 침묵해야 할 때도 시는 말해야 한다는 역설 앞에서, 시는 제 핸드백에서 물건을 더듬듯이 말들을 더듬기 시작한다. 발을 헛딛는 것처럼 말을 헛딛을 때 말들이 굴러 굴러 몇 천 년을 구르다가 그 말들이 서로 열애에 빠졌을 때 하나의 시는 상 위에 산낙지처럼 온몸으로 쓰여지는 것일까. 그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인가.

 

열애8937407590_f.jpg


몸을 낮춰야 마음이 보여 그래야 푸른 피가 도는 거지
시 시 시는 더 푸르러야 해 소리치며 강의를 하고
나는 더 어디 높은 곳이 없나 허우적거리며
강의를 끝낸다.                             
                                시 ‘버들잎 강의’ 중  
    


   이렇게 시 창작 강의는 더듬거리며 끝났다. 시는 푸르러야 하건만, 시인은 시처럼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 말더듬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말더듬기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다. 어눌하고 뒤틀린 말하기 속에서 시는 다른 세계를 만든다. 일관성 있고 아무 문제 없는 현실이 아니라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서도 그것이 또 하나의 세계가 되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누나! 지금 아버지 제사 준비 중이야
......
이따 한 말씀할래/
......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동생이 말하고 있다
(중략)
아버지 외제 제사도 받아봐요
                                       시 '국제전화' 중에서


   말이 침묵하고 있을 때, 대화도 성립되지 않고 말을 더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찾아갈 수 있으려나 뉴질랜드를, 그럴 때면 아버지 제사는 아예 외제 제사가 된다. 제사상에 파인애플이 올라가면 어떤가, 제대로 찾아가기만 한다면야. 하지만 생전에 비행기도 한 번 못 타본 아버지라면 그것도 어려울지 모르겠다. 시는 헛헛하게 농담을 던질 수 있을 뿐이다. 어머니는 또 어떤가. 채석강에서 어머니를 불러본다. 어머니는 세상에 안계시지만 시커멓게 타 숯이 된 어머니는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켜켜이 쌓여 계신다. 이렇게 멀리, 그리고 한번 더 말해지는 ‘이렇게 멀리’, 말은 다시 더듬거린다.


열애신달자8937407590_wf.jpg


어머나! 우리 어머니 여기 계시네
시커멓게 타 숯이 된 어머니 켜켜이 쌓여 있는 거 보네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중략)
이렇게 멀리
이렇게 멀리                            시, ‘아 채석강아’, 중에서 


   말더듬이의 삶은 일평생 모순이다. 나는 떠나지만 나는 남는다.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날 때 나는 떠난건가 남은건가. 나는 떠났지만 아직은 아니다. 떠났지만 동시에 남아 있다는 말은 또 다른 말더듬기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시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모순이 지양되지 않고 남아서 불가능한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고 체류하고 있는 세계. 이 세계는 우리가 전에 본 적 없는 세계, 새로운 가능한 세계인지 모른다. 이방인의 세계.


   이 세계가 남성적 세계, 지배적인 기존 질서가 보지 못하는 세계일 것이다. 시인은 이런 세계를 끊임없이 창조해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버린다. 그것이 불가능한 삶일지라도, 그 낯선 일상을 제 일상으로 만들어 다른 그림을 그린다. 시는 떠난 것도 남아 있는 것도 아닌 그 어느 ‘사이’에서 예외적으로 머물면서 기존의 질서를 파먹는다. 


서울행 자동차의 시동이 걸린다
말하건대 나는 떠나지만 나는 남는다
(중략)
서울에 닿아서도 나는 서울에 있지 않았다.            
                                          시, ‘나는 모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중에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사나운 소 한 마리 몰고 손목 휘어지도록 잡아끌며 살아가는 건지 모른다. 소의 뿔이 허공을 치받을 때마다 뼈가 패일’(시, ‘소’ 중에서)때 시는 그 허공에 다시 침을 뱉는다. 시적언어로, 더듬거리기로, 일상의 문법을 난도질하고 새로운 말들을 만들며, 했던 말을 뜻도 없이 반복하고, 비틀고, ‘사이’를 만들면서.  





작성일 : 2017.10.11
저자 소개  

엄진희
문학평론가, 시인.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수료하고 현재 연구 중에 있다. 2017 <문학의 봄> 시부문 신인상, 2017 <한국문학예술> 문학평론 부문 신인상 수상. kafka20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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