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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호의 여백 문학] 우울증 강요하는 사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론 2

 

오태호(문학평론가)

 


1.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없다


  최은영 서사의 전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없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세계에 ‘없지 않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의 고유한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 새로운 생의 가능성이 모색된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2016)는 그렇게 우울증에 걸린 사회적 약자들의 통증에 공감하고 상처를 위무하는 작품 모음집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호명되는 미력한 존재자들의 생존기를 통해 다양한 상처 속에서도 여전히 생을 견뎌내고 있는 존재들을 추적하여 그들의 존재 의미에 공감하기 위해 쓰여진 텍스트들이다. 등단작인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예의 바른 우울증 미소’를 선보였다면, 다른 중단편들에서도 우울한 표정의 캐릭터들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존재감’으로 타자와 세계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읊조린다. 



 

   본고에서는 「작은 서사의 울림 – 예의 바른 우울증 미소의 치유력 - 최은영의 중편 「쇼코의 미소」론」에 이어 다른 중단편들의 의미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씬짜오, 씬짜오」에서는 왜 ‘안녕’이라는 말이 만남과 헤어짐의 베트남 인사말임과 동시에 타자와 공명하는 인사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한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독재시대의 국가 폭력으로 인생을 망가뜨린 가족의 애환을 마주한다. 「한지와 영주」에서는 흐릿한 존재감으로 타인과 세계를 감당해내는 ‘혼자가 아닌 혼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먼 곳에서 온 노래」는 망자가 된 선배에 대한 기억과 회상으로 애도를 표명하고 삶의 동력을 마련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카엘라」와 「비밀」은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애도 속에 일상을 견뎌내는 ‘정상적인 국민’과 유가족의 흔들리는 일상을 통해 참사 이후 정상적인 애도가 불가능한 현실을 차분하게 서사화한다.

최은영의 소설은 읊조리듯 독자에게 다가온다. 우울증의 색깔이 침잠된 잿빛에 가깝기 때문에 결코 경쾌하거나 가볍지 않다. 무겁게 가라앉은 존재들의 서사는 이 세계가 통증들의 천국이자 외로운 자들의 지옥임을 증거한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천국 같은 지옥에서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런 공감과 공명만이 이 세계를 더 잘 견뎌내는 방법이라며 위무의 서사를 건넨다. 

 


2.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씬짜오, 씬짜오」는 ‘만남과 헤어짐의 인사말’인 베트남어 ‘씬짜오’를 매개로 환대와 불편감이 공존했던 2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과거와 조우하는 작품이다. 13세였던 작중 화자가 독일에서 엄마의 유일한 말동무였던 응웬 아줌마와의 기억을 더듬는 가운데,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지닌 존재자들을 환기하며 한국과 베트남의 비극적 역사를 돌이켜봄으로써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방법에 대해 그려낸다. 결국 엄마와 응웬 아줌마가 매킨타이어가 말하듯 ‘서사적 존재’로서 ‘우정 어린 환대’와 ‘고통의 공감’을 경험하며 이웃 공동체를 구성했던 이야기를 다룬다. 


   1995년 독일에서 엄마의 유일한 말동무가 된 베트남인 응웬 아줌마는 엄마가 “아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아파하는 사람”이라며 엄마의 공감 능력을 칭찬한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6만 명이 죽고, 군인이 아닌 베트남 사람이 200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화자가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알게 된다. 그때 화자는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어요.”라고 말하지만, 투이는 한국 군인들이 할머니와 아기였던 이모를 포함하여 엄마 가족 모두를 죽였다면서, 엄마 고향에 한국군 증오비가 있다고 말한다. 엄마는 응웬 아줌마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지만, 아빠는 아빠의 형도 그 전쟁에서 스무 살 용병으로 죽었다면서 분노를 터뜨린다. 응웬 아줌마는 그건 전쟁이 아니라 “그저 구역질나는 학살일 뿐”이었다면서 두 가족은 멀어지게 된다. 


   형을 잃은 아빠와 가족을 학살당한 응웬 아줌마의 시각 차이로 인해 응웬 아줌마네와 이별하게 된 엄마는 목도리와 털모자, 털장갑 세 벌씩을 전한다. 엄마와 화자가 “씬짜오”라고 말하고 아줌마와 투이 역시 같은 말로 “씬짜오”라고 화답하지만, 포옹이나 입맞춤이나 이별에 대한 포장도 없이 헤어지게 된다. 화자는 스스로를 “서로를 경멸하는 부모 밑에서 영혼의 밑바닥부터 떨던 아이”였다고 떠올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야 엄마를 엄마 자신으로 사랑해준 사람이 응웬 아줌마였다고 회상한다. 20년이 지난 뒤 엄마를 빼닮아 있는 33세의 화자는 응웬 아줌마를 길 건너 사이에 두고 보면서 “씬짜오, 씬짜오”라고 말하며 엄마가 공감했던 응웬 아줌마와의 재회를 준비한다. 


   결국 「씬짜오, 씬짜오」는 베트남 전쟁의 피해자 가족인 ‘응웬 아줌마’와 타국의 피해자를 위무하는 엄마의 시선을 통해 공감 능력의 필요성과 함께 전쟁의 피해자가 가진 고통을 어떻게 나누어가질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가해자 국민의 일원인 엄마가 이웃 공동체의 일원인 학살당한 피해 유가족 응웬 아줌마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위로와 공감은 전쟁 이후 일상 현실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의 일환을 보여준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역시 상처와 용서를 질문하는 작품이다. 특히 1970년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소재로 ‘사법 암흑의 날’이라고 평가받는 이야기를 후경으로 배치하면서 국가권력이 국민을 사법 살인한 이후 피해자들의 생존 이야기가 그려진다. 순애 이모가 16세 때 모습 그대로, 동이 틀 무렵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한 엄마의 병실을 찾아와 용서의 말을 전한다. 순애 이모는 할머니의 이종사촌 언니의 딸로 16세 때 11세의 엄마보다 몸집이 작았지만, 엄마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를 잃고 나서도 더 잃을 것이 남아 있던 이모의 모습”을 사랑한다. 그러나 순애 이모의 남편이 북의 지령을 받고 움직였다면서, 긴급조치, 국가보안법, 반공법을 위반했고 내란 예비음모 및 선동을 했다는 이유로 동지들과 함께 사형, 무기징역, 징역 20년형 또는 15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이후 이모네 가족의 삶은 모든 것이 달라진다. 


   죽음 직후에 사람의 영혼이 멀리 떨어져 있는 소중한 사람을 보러 간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엄마는 16세 얼굴의 이모가 병실을 찾았을 때 자신이 이모에게 이미 오래전에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모가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면서,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진 채 빛에 실려 떠난다. 엄마는 유품을 전하기 위해 자기를 찾아온 이모의 딸이 전한 두 소녀(엄마와 이모)의 옛날 사진을 바라보며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라고 조용히 속삭이며 이모와의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인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약칭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배경으로 그 가족의 힘겨운 후일담을 추억한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인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를 지목하고, 1975년 4월 8일 도예종 등 사건 관련자들을 국가전복 기도 혐의로 7명 사형, 8명 무기징역, 4명 징역 20년, 3명 징역 15년 등을 선고한다. 이때 사형을 선고받은 7명과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여정남 등 모두 8명에게 형 확정 18시간 만인 다음날 새벽 사형이 집행되어, ‘사법 살인’이라는 비판 속에 ‘국제법학자협회’는 이 날을 ‘사법 암흑의 날’로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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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기력하나 유의미한 존재에 대한 성찰 -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한지와 영주」는 27세의 대학원 휴학생 영주와 수의사였던 케냐 흑인 한지와의 수도원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닌 ‘유의미한 존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내려는 미력한 존재들의 고군분투를 형상화한 것이다. 


   지질학 대학원을 휴학한 27세의 화자인 영주는 수도원에서 7개월을 보낸다. 그때 언니로부터 인생을 낭비한다면서,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거야.”라는 비난을 듣는다. 졸지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화자는 성경 공부를 하면서 “지옥이든 천국이든 영원이라는 개념”이 자신을 숨막히게 한다면서,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를 바라”다가,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나라는 것이 없었으면 했다”라고 자기 존재를 부정하던 중 한지와 한지 여동생 레아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한지의 여동생인 레아는 태어나서부터 10대인 지금까지 누워만 있으며, 레아의 마음이 두 살에 머물러 있고, 한지가 레아를 책임져야 한다면서 가족들 모두 레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있으며, 레아가 한지 가족에게 ‘침묵’을 선물했다고 전한다. 한지에게는 세렝게티 공원이 세상의 끝이었다면서, 레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자신의 연민 자체가 레아에 대한 오만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말한다. 

 

   “레아는 타인이 아니야. 나는 지금 여기서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내 몸의 일부는 나이로비 집에 누워 있어.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무슨 일을 하고 있더라도 나의 일부는 언제나 나이로비에 있어.” 

 

   ‘타인이 아닌 레아’와 함께 자신의 몸의 일부가 나이로비에 있다면서 한지의 시선은 사진 속 레아에 닿아 있고, 그때 한지의 얼굴에 일렁이는 따뜻한 빛이 화자의 창백한 마음 위에 비친다. 그것이 화자로 하여금 생을 견디게 하는 동력이 된다. 


   화자는 원시지구로 시작해서 여러 종류의 발굽이 있는 동물까지 중얼거리고 나면, 현실의 고통에서 자신을 분리시키게 되고, 그때 화자가 그들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화자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느끼면서 화자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혼자가 아닌 혼자’인 화자는 한지와 자신을 대비적 존재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나 존재감이 없는 나”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한지”, “자신감이 없고 무슨 말이든 우물쭈물하는 나”와 “누구와 있어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한지”, “제대로 웃지도 못해서 입을 가리는 나”와 “꾸밈없는 표정의 한지”가 서로 다르게 타인들의 눈에 비춰지기 때문이다. 


   나이로비에 돌아가기 2주 전부터 한지는 일종의 이별의 방식으로 대놓고 화자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화자는 침묵 주간을 신청한 이후, 한지에게 “내 적막한 마음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어. 한지, 네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축복이 가득하길. 망각의 축복을, 순간순간마다 존재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기를. 영주.”라고 노트에 한국어와 영어로 적지만, 노트는 한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한지와 영주」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닌 영주와, 아픈 여동생 레아에 대한 책임감을 지닌 한지와의 우정을 통해 시간과 타인, 존재와 기억,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질문한다. 그리고 세상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이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며 열패감과 패배감에 젖어들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함을 강조한다. 


   「먼 곳에서 온 노래」 역시 우울증 환자였던 2002학번 화자가 2009년 여름밤 32세의 나이로 객사하여 망자가 된 ‘1997학번 미진 선배’와의 과거를 회상하며, 폴란드인 율랴와 함께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존재’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을 견뎌내는 동력을 얻게 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화자는 봄 학기 강의를 마치고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와서, 미진 선배와 함께 살았던 율랴를 만난다. 율랴는 아버지로부터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과 “너는 쓸모없는 계집애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한다. 세계 어디에서나 ‘의미없는 존재’들은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있는 셈이다. 미진 선배가 러시아에 가기 직전 3년을 함께 산 화자는 미진 선배가 노래패의 학생운동 전통을 끊었다고 비난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들’이 물려주신 전통에 선배가 하나하나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화자는 “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평등한 관계맺음, 여성주의 교육”을 강조하는 25세의 미진 선배가 동아리를 떠나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으며, ‘고집불통에 독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던 선배의 눈물이 타인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누적된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미진 선배는 노래를 “교육의 도구이자 의식화의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라면서, “조회시간에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 같은 게” 아니길 바란 개인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화자는 율랴와 함께 97학번 김미진이 20세에 부른 <녹두꽃>을 오디오로 재생하며 듣는다. 테이프 끝에 담긴 마지막 노래는 미진 선배와 화자가 함께 부른 <녹두꽃>이다. 23세의 화자와 28세의 선배가 자신들 안에 있는 가장 곱고 가장 뜨거운 마음을 담아 부른 노래다. 그 노래를 들으며 화자가 병자도 아니고, 선배가 망자도 아니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율랴와 함께 미진 선배를 애도하는 셈이 된다. 그것은 화자가 미진 선배의 사망 뒤 율랴와 1년간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미진 선배에 대해 대화하며 실상은 서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현재적 애도와 슬픔의 공감에 해당한다. 

 


4.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미시 서사적 애도 - 「미카엘라」, 「비밀」



 

   2014년 4월 16일 침몰한 세월호 참사는 2017년 9월 현재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진상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미카엘라」와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를 이야기로 빚어낸 작품이다. 


   「미카엘라」는 미용실 엄마의 시점과 ‘미카엘라’인 딸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2014년 8월 16일 무렵을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를 기록한다. 엄마는 25년 전인 1989년 어린 미카엘라와 함께 폴란드 출신 교황 바오로 2세가 집전했던 미사를 보러 서울에 온 적이 있다. 그때는 여의도 광장에서 65만 명의 신자가 참석한 바 있다. 이번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한다는 소식에 2박 3일 일정으로 엄마가 집을 나선다. 

엄마는 슬픈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자식이 준 사랑을 하늘처럼 여긴다. 어린 미카엘라가 자신에게 준 마음이 세상 어디에 가도 없는 순정하고 따뜻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는 자식을 잃고 목숨 건 단식농성을 진행 중인 ‘유민 아빠’에게 다가온 교황의 모습을 보며 슬픔과 연민에 젖어든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교황에게 무언가를 애원하는 마음을 짐작해 보면서, 남자를 한번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처럼 미카엘라를 잃었다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 것인가가 고민되며 눈물이 고여오기 때문이다. 


   연락이 두절된 엄마를 찾으러 광화문역에 내린 31세의 미카엘라는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세상을 망친다던 아빠의 말씀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엄마 역시 자주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이 살 수도 있었던 ‘쇠털 같은 시간들’을 떠올린다.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었고 살릴 수 있는 시간 역시 충분했지만,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그들을 놓쳐버린 국가 기능 부재의 현실에 대해 깊은 가책을 느끼는 것이다. 엄마는 수진이라는 이름보다 미카엘라로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세상 모든 어두움을 물리치는 미카엘라 천사가 여자의 속에 뿌리내린 작은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고 전했던 미용실 손님 말을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카엘라」가 천주교 신자인 모녀의 두 시선을 교차 편집하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정상적 국민’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슬픔, 분노와 무기력, 무참함과 안타까움을 보여준다면, 「비밀」은 세월호 참사로 숨진 기간제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교사의 할머니인 말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말자는 8년째 딸의 차를 타고 같은 길을 지나 암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니지만, 지난 1년 반 사이 딸 영숙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오냐오냐하며 키운 손녀 지민이 중국에 간 지 1년 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8세짜리 지민으로부터 한글을 배운 적이 있는 말자는 기간제 교사였던 지민의 책상에 앉아 제주도 성산항으로 가던 여객선 위의 풍경을 그려본다. 말자와 딸 영숙과 사위가 다 모여 앉아 지민의 생일상을 차리지만, 지금 이 자리에 지민이 함께하지 못하기에 “모두 헛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숙은 “엄마 미안해”라고 말하고, 박서방은 지민이 중국 시골에 가서 선생님을 한다고 말하지만, 말자는 지민의 침대에서 지민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여러 번 듣게 된다. 그리고는 “집배원이 들어갈 수 없”고, “어떤 편지도 배달되지 않는다는 그곳으로” 직접 전할 편지를 접어 가겠다며 편지를 가슴에 품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지민이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이후 서로의 안부를 위해 굳이 그 사실을 숨기려는 세 가족의 ‘비밀 아닌 비밀’을 통해 참사 이후 유가족이 참담하고 우울하게 견디며 겪어냈을 법한 일상적 이야기를 서사화하고 있는 작품이 「비밀」인 것이다.




 

5. 미시 서사의 깊은 울림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다. 중편 「쇼코의 미소」에서 일본과 한국을 연결하며 ‘예의 바른 웃음’ 속에 숨겨진 우울증의 내면화와 공감 능력의 필요성을 조망했다면, 이번에 살펴본 작품들은 여전히 우울감에 젖어 생을 견뎌내고 있는 캐릭터들의 삶을 조망한다. 여전히 미력한 힘으로나마 세계를 읊조리고 있는 주인공들을 통해 작가는 관계의 필요성과 공감의 유력한 소중함을 확인한다. 


   최은영의 소설은 서사의 밑면에 모성에 대한 기대를 내포한다. 「씬짜오, 씬짜오」에서 응웬 아줌마와 공감하는 ‘화자의 엄마’,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 순애 이모에게 용서를 얻게 되는 ‘화자의 엄마’, 「한지와 영주」에서 화자에게 기억과 망각, 애도와 슬픔, 시간과 타자에 대한 경구를 전해주는 ‘할머니’, 「미카엘라」에서 자식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는 ‘엄마’, 「비밀」에서 손녀인 기간제 교사를 애틋하게 애도하는 ‘엄마(딸 영숙)와 할머니(화자인 말자)’ 등은 ‘착한 모성’의 신화를 현재화한다. ‘여성은 약하지만 모성은 강하다’는 속설을 ‘딸은 약하고 우울하지만, 어머니는 따뜻하게 공감한다’라는 식으로 대체하는 서사가 최은영의 ‘미시 서사’인 셈이다. 그리고 그 서사적 울림의 여운은 깊고 넓게 멀리 스며든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지구인들이 모두 일종의 우울증에 걸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열등감을 내면화한 존재들이라는 무기력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은영의 서사는 2010년대 소설의 성과에 해당한다. 개인의 이야기와 사회적 관심사가 서로 조응하면서 현재적 통증에 공명하는 작업이 소설의 핵심 과제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한 개인들이 견뎌내는 사회적 간난신고들은 고스란히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반영한다. 무기력한 존재태로 길들여지는 N포세대의 음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은영의 미시 서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내면화된 우울감의 다채로운 표정과 민낯을 간접적으로나마 선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선취가 최은영 서사가 도달한 높이에 해당한다. 

 




 

  

작성일 : 2017.09.28
저자 소개  

오태호
1970년생. 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문화 다》 편집동인.
2001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평론집으로 『오래된 서사』, 『여백의 시학』, 『환상통을 앓다』가 있음. oth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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