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기사[종합]
별점 평가
★★★★★★★★☆☆
★★★★★★★★☆☆
★★★★★★★★★★
★★★★★★★★★☆
★★★★★★★☆☆☆
★★★★★★★★☆☆
★★★★★★★★★☆
위치 : HOME > 문학 > 외국문학 읽기
[이것이 정치소설이다(4)] 모리 오가이의 『아베 일족』

 김혜연(문화 칼럼니스트, 소설가)

 


  '가장 일본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모리 오가이의 대표작 『아베 일족』은 1641년 다이묘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죽음을 다룬다. 호소카와 타다토시는 실존 인물로, 죽을 때 무려 열여덟 명의 가신이 따라 순사(殉死)했다. 흔히 『아베 일족』은 에도 막부의 전근대적 봉건성을 지적함으로써 근대 일본 정신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순사의 잔인성을 걷어내고 자세히 읽어보면 현대 정치에도 아직 살아 있는 권력의 속성이 보인다. 




   『아베 일족』은 호소카와 가문의 당주 타다토시가 몇 대 손이고, 그에 딸린 가신들과 친인척들, 각종 동맹으로 얽힌 사람들의 이름을 한참 나열한다. 현대적인 독자들에게는 누구의 누구의 친척이 어떻고 누구의 아들과 딸을 결혼시켜 맺은 동맹이 친인척 관계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주워섬김이 매우 지루할 것이다. 


   이렇듯 족보를 그대로 베껴 쓴 듯한 부분을 넘어가먄 모리 오가이는 비교적 순사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순사가 일어나는 이유는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주군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주군의 신임을 얻어 출세하고도 따라 죽지 않으면 충성심 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체면을 상실하는 것이다. 무사로서의 체면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고, ‘이에(家)’라고 불리우는 가문을 유지하는 무형의 자본이기도 하다. 작중에는 순사를 하지 않으면 모두 손가락질을 받고 체면을 잃어 낭인으로 떠돌 수도 있가에 그게 두려워 순사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후일 에도 막부에서 순사를 엄격히 금지한 걸로 보아 실제 역사에서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베일족8954616844_f.jpg


   순사에는 엄연히 순기능(?)이 있었다. 순사를 통해 현 당주를 모시는 가신들이 죽고 나면 자연스럽게 새 당주를 보좌할 젊고 새로운 가신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권력이 순환하면서 가문의 분위기가 일신된다. 새 주군을 중심으로 그동안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힘이 모인다. 그러한 젊은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권력을 잡고 있던 기존 가신들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이다. 순사라는 방법이 잔인해서 그렇지 사실 이러한 권력 이동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주기적인 선거와 정권 교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순사자는 유족의 편안한 생활과 가문의 충성심을 인정받고, 주군은 후계자를 위해 원활한 권력 이동을 도모할 수 있기에 양쪽 다 정치적 이득을 얻게 된다. 순사자는 물론 주군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죽기 전 주군은 신중하게 순사 상대를 고른다. 이러한 순사 상대를 고르는 것은 사실상 논공행상에 가깝다. 타다토시는 순사를 되도록 피하고 싶었지만, 병이 깊어져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판단에 실수를 범한다. 그동안 공도 없고 실수만 저지른 열일곱 살 난 쵸쥬로는 순사를 허락받아 가문의 영광을 누리지만 오랫동안 유능하게 일해온 아베 야이치에몬은 주군의 마음, 순전히 취향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 순사를 허락받지 못했던 것이다. 


  모리 오가이는 타다토시의 편향된 선택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늘어놓지만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는 쵸주로의 순사는 센고쿠(일본 전국) 시대 성행하던 주군과 시동간의 동성애 관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쵸주로가 귀찮을 정도로 타다토시를 찾아와 매달리는 과정의 묘사를 자세히 보면 일본에 성행하는 연인간의 동반 자살, 신쥬(心中)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사이자 군인이었고 근대적 인간을 지향했던 모리 오가이가 순사의 주된 이유로 동성애를 언급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베 야이치에몬의 순사가 허락받지 못한 이유도 앞뒤를 따져보면 유능하고 옳은 말을 많이 했던 아베는 순사시키기보다는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이 가문의 앞날에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런 뜻이었다면 잘 전달했다면 좋으련만, 순사하지 못했다고 따돌림 당하던 아베는 결국 할복을 하고 만다.




  어쨌거나 아베는 허락받은 순사자들 옆에 묻히지만 봉록을 나눠 받는 과정에서 아베 가문은 소외를 당한다. 순사자의 유족들은 봉록을 늘려 받는 등 혜택을 입었지만 아베 일족의 봉록은 한데 모아졌다가 자손들 숫자대로 똑같이 배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베 집안의 장남이자 새 당주 곤베는 아우들에게 체면을 상실하였다’고 서술하는 부분에서 순사란 실질적 이득을 염두에 둔 정치 행위라는 사실이 극명히 드러난다. 순사자들의 가문은 봉록을 늘려 주었지만 ‘허락받지 않은 자살자’에 불과한 아베 가문의 봉록은 그대로이다. 게다가 가문의 당주를 맡은 장남의 봉록이 차남과 삼남의 그것과 똑같다면 당주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당주의 체면이 서지 않으면 가문의 존립이 위협받는다. 어이없는 것은 아베 일족의 봉록 배분은 새 주군 미쓰히사의 뜻이 아니라 실무를 처리하던 측근 하야시의 생각이었다. 


  결국 아베 일족의 당주 곤베는 타다토시 1주기를 치르는 행사에서 위패에 상투를 잘라 바치는 것으로 항의한다. 여기서도 모리 오가이는 너그럽게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새 주군의 권력 기반이 튼실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드는 행위는 정도 이상의 처벌을 유발하였다고 암시한다. 곤베는 할복 대신 여느 잡범마냥 교수형에 처해짐으로써 큰 모욕을 당한다. 중세 유럽에서도 참수가 아닌 형벌은 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었다. 곤베가 죽고 아베 일족은 멸문지화를 당한다. 


   아베 일족 토벌 과정에서도 정치가 개입한다. 토벌대장 다케노우치는 선대 주군 타다토시와 전쟁에 나서 공을 세운 전력이 있다. 새 주군 미쓰히사의 측근 하야시는 아베 일족 토벌대장으로 다케노우치를 추천하면서 “선대 주군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 말은 뒤집으면 타다토시 대에서 출세했으면서 순사하지 않았으니 배은망덕하다는 뜻이 된다. 물론 억울한 소리이다. 주군이 허락해야 순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쓰히사는 측근 하야시의 추천을 받아들이고 다케노우치는 토벌에서 기꺼이 전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케노우치의 형 하치베는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한 벌로 유폐를 당한다.



아베일족오가이8954616844_wf.jpg




   타다토시에 대한 순사에서부터 곤베의 사형, 아베 일족의 멸문까지 단계마다 상식적인 판단이 대신 정치 논리가 깊숙히 개입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정치 논리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논공행상을 둘러싼 갈등, 체면의 상실로 인한 실각, 측근의 자의적 판단, 그리고 권력 기반이 허약한 나머지 정당한 항의가 하극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상황 등등. 물론 피를 흘리는 순사와 토벌은 토지라는 한정된 자원만으로 통치해야 하는 봉건시대 정치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토지란 늘어날 수 없으니 논공행상을 하려면 누군가의 토지를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명예롭게 빼앗는 방법은 순사요, 불명예스럽게 빼앗는 방법은 토벌인 셈이다. 


   생산력을 담당하는 하부 구조는 농업에서 공업 자본주의로 진즉에 바뀌었지만 상부 구조에 해당하는 정치 논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일본은 센고쿠 시대를 겪은 나라, 전략 전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능력만으로 사람을 등용해본 역사적 경험이 있다. 『아베 일족』에 등장하는 미묘한 정치적 언사는 학자와 문사가 정치를 해온 조선 역사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위안부’ 협상을 비롯한 외교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자꾸 밀리는 탓은 전적으로 국력 차이일까?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정치 논리라는 것의 저변 어딘가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가. 참고로 『아베 일족』의 다이묘 호소카와 가문 현재 당주는 다름아닌 호소카와 모리히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79대 총리이다. 그러고 보니 현 일본 총리의 이름이 우연찮게도 아베(安倍)이다. 웃지 말자.




 

작성일 : 2017.06.12
저자 소개  

김혜연
1980년생. 문화 칼럼니스트. 소설가.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박사 졸업. 아동문학 계간지 <어린이책 이야기> 2017년 봄호를 통해 등단. 저서로 『동화, 영혼의 성장』, 경향신문 영화소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연재(2005), 대중음악 웹진 음악취향Y 필진(2006~)
[댓글]
⊙ 이름
⊙ 비밀번호
⊙ 이메일
댓글 남기기
비판적 문화 공동체 웹진 [문화 다]   |   www.munhwada.net(또는 com)
문화다북스 대표 강소현   |   웹진 <문화 다> 편집인 최강민, 편집주간 이성혁   |   사업자번호 271-91-00333
[웹진 문화다 / 문화다북스] 연락처 : 02-6335-0905   |   이메일 : munhwada@naver.com
Copyright ⓒ 2012 Webzine Munhwad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