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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훈의 문화시론] 히딩크 광풍과 사회적 영성

오영훈(문화 칼럼니스트)


   ‘히딩크 감독 부임설’로 기묘한 양상의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면서 기존 신태용 감독이나 그를 선임한 대한축구협회가 난처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일부 네티즌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협회를 성토하고 히딩크 감독 모셔오기를 성원하고 있다. 청와대 청원까지 넣고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이 논쟁이 기묘한 이유는 실상 ‘말이 안 되는 요구’임에도 네티즌들이 계속해서 고집하기 때문이다. 일단 대한축구협회는 신 감독을 월드컵 본선까지로 계약했다. 신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최근 두 번의 경기에서 모두 0대 0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다른 팀들의 대전 결과가 어울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팀이 보여준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결과는 잡은 셈이다. 협회로서는 신 감독을 경질할 이유도 논리도 없다. 신 감독으로서도 잘 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히딩크 감독은 어떤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끌면서 한국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몇 안 되는 외국인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떠난 뒤 여러 팀을 전전했으나 당시처럼 놀라운 결과는 다시 만들지 못했다. 2006년 러시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러시아를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어 맡은 터키 대표팀에서는 2012년 같은 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9월 14일 전격적으로 가진 한국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도 성과에 대한 확신에는 선을 그었다.


   스포츠 칼럼을 연재하는 기자들은 ‘절차와 명분 없는 결정’은 그만두고 ‘냉정하게 상황을 보자’며 여론을 다독이려 애쓴다. 사실인즉 히딩크 감독시절 당시 우리나라는 축구대표팀에 고액과외를 시켰다. 월드컵 전까지 평상시보다 두세 배 많은 국가대표 시범경기를 벌이는가 하면 국내 축구리그 경기까지 단축시키면서 국가대표 훈련을 배려했다. 월드컵 성적을 위해서였다. 4강 신화를 일궈낸 주역으로 감독과 선수단은 영웅시됐지만 이런 배경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에겐 이런 설명이 통하지 않는듯하다. 일단 예전보다 해외 유명 축구 리그에 진출해 뛰는 선수들이 많은데 왜 대표팀에만 모이면 실력이 형편없냐고 묻는다. 히딩크 광풍 오래 전부터 각종 스포츠 이슈들에 네티즌의 ‘냄비 근성’과 ‘기억상실증’은 놀라울 정도였다. 얼마 전까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갓틸리케’라 불리던 임기 초반에 비해 후반 성적이 저조해지자 인터넷 상에서의 비난은 극에 달했다. 감독의 한결같은 지휘 스타일과는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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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딩크 광풍은 2017년 대한민국을 특징짓는 ‘촛불 민심’의 비정치적 이슈에 대한 표출이다. ‘적폐 청산’을 과제로 삼은 문재인 대통령과 그가 가져올 변화에 연호하는 사회적 흥분은 여의도만이 아니라 도심이든 식당이든 고속도로든 산이든 축구장이든 종목을 가리지 않고 도처에 깔려 있다. 어떤 흥분인가? 현대 한국사회를 진단하며 김진호 목사는 ‘깃발은 사라지고 촛불이,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염원이’ 들어섰다며, 이를 ‘사회적 영성’이라 부름직하다고 말했다.


   영성(靈性, Spirituality). 영성의 단초는 ‘더 커다란 실재’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우리가 통상 알고 경험하는 ‘세속적’ 세계는 이 더 커다란 세계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영성의 존재론은 ‘나’와 ‘삶’을 ‘지식’에 비추어 관조하게 하는 바탕으로 삶에 역동성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영적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추구하지 않았던 시대와 문화는 존재했던 적이 없다.


   한편 조선시대와 현대 사이를 시간 이동하는 드라마라든지, 사후 세계를 특정적으로 묘사하는 만화 등등 비종교적 영성은 최근 대중문화의 주요 화두로 자리 잡았다. 간단한 예로 엊그제 언뜻 본 의사들을 다룬 드라마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왔다. ‘마누라가 저세상에 간 지 십 년이 됐는데, 그 사람 워낙 숫기가 없어서 참 심심하게 지내고 있을 거야. 얼른 가서 함께 있어줘야지.’ 영성의 존재론 속에 근대적‧제도적 합리주의는 영성의 시녀로 전락할 위기 속에 있다. 영성만이 진리에 맞닿아 있다면 과학과 철학은 사상누각 신세가 된다.


   다수 의견을 따르고 또 따라가는 민주주의는 그렇게 비종교적 영성의 테마를 손쉽게 응용한다. 지도자→선동→민족의식/국가주의라는 포퓰리즘적 전체주의의 굴레는 영성의 존재론과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려 구르기 시작한다. 직관적으로 선명하지 않은 오늘날의 윤리적 삶은 유행하는 키워드를 따라 정의된다. 합리성을 체득하지 않은 사회적 영성은 손쉽게 폭력을 도구로 삼는 양심을 양산한다. ‘전쟁의 위협에는 선제공격으로 대응’ 따위의 무지막지한 폭력의 언어가 버젓이 통용되는 양상은 왜곡된 초월성을 향한 염원이 일상이 되었다는 증거다.


   이렇듯 사회적 영성 숭배가 도처에 팽배한 원인 중 하나로 세월호 사건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재난사고는 구조적으로 산재한 갑을관계를 드러내는 발화점이 되었지만, 그 파헤침을 독려하는 목소리들은 사회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너는 갑, 나만을’이라는 피해의식과 ‘헬조선’이라는 애증의 국가주의가 키워드로 부상했다. 세상의 부조리는 증폭되어 개인을 누르고, 도처에 만연한 혐오와 포기주의, 단발마적 쾌락주의는 중년‧청년 고독사를 종점으로 삼았다. 현실 도피적 이상주의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히딩크 광풍은 국가주의, 피해의식, 쾌락주의, 이상주의가 만나는 접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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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딩크 광풍과 같은 사회문제들을 헤쳐 나가는 길은 그런 유행들의 뒷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가능하다. 여섯 가지 방법을 뽑아봤다.


   첫째, 우리가 얼마나 모든 면에서 국가주의에 함몰돼 있는지 종종 짚어보자. 애국심을 조절하라는 말이 아니다. 애국심은 ‘우리’에 대한 애정이, 국가주의는 타국에 대한 적개심이 핵심을 이룬다. 군사전문가 여석주는 강한 군대는 적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히딩크 광풍에서처럼, 막대한 희생을 감내하며 추구해야 할 목적이 바로 타국 사이에서 살아남는 국가가 될 때, 다른 한편에서 파괴되고 잊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인문학? “중국보다 더 확실히 인문학 열풍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중국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지성, <생각하는 인문학>)이라는 논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사게 하는 마당이다. 바로 이런 인문학과 사회지성이 국가주의를 분석하는 지침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것 아닌지 시급히 물어야 한다.


   둘째, 축구협회로 대변되는 ‘갑들의 수작에 당한다’는 갑을관계 피해의식도 대리만족을 위한 기제로 횡행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피해의식은 음모론이 유통되는 양상과 흡사하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자위하는 것은 부조리한 갑을관계를 파헤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틀어진 갑을관계 해소의 정공법은 ‘지피지기’다. 손자가 이를 강조한 까닭은 자신도 적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승리를 기대하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축구협회 구성과 의사결정과정, 임원들의 면면을 보아야 한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짚을 때도 특출한 선수, 영광스런 성과만이 아닌 제도, 조직, 여론, 정치, 경제와의 관계 속에 비추어야 한다. 찬찬이 들여다보면 왜 그들이 신 감독을 지지하는지, 왜 국가대표 축구팀이 변변치 못한 경기력을 보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해결책은 어디서 나와야 하는지 그 지난한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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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단발마적 쾌락주의는 자살골에 기뻐하는 것과 다름없다. 골과 승리, 개인기에만 열광하다보면 패스, 체력, 용병, 전술, 나아가 훨씬 조용하지만 더 중요하고 고질적인 골칫거리들의 외침을 외면하게 된다. 여론과 단기적 성과에 이끌려 히딩크 감독을 선임하게 되면 한국 축구계의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비정상적인 계약해지라는 불신의 행정이야말로 두고두고 회자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넷째, 네티즌 댓글에 너무 휩쓸릴 필요가 없다. 댓글은 여론의 일부, 때로 극히 일부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치 바로 옆에 화가 치밀어 길길이 날뛰는 사람이 실제 있는 것처럼, 또 읽는 이도 그런 격노에 동조해야 할 것처럼 상상하게 만드는 게 댓글의 기능, 온라인 뉴스가 클릭수를 올리는 기제다. 감정적으로 격화된 댓글일수록―그렇기 때문에 많은 ‘좋아요’표를 얻을 수 있지만―실제론 더 소수의 의견만을 반영했을 확률이 높다. 정치적으로 상반되는 기사의 댓글을 찾아보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주민에의 인도주의적 접근을 옹호하는 사람은 북한 미사일 도발 뉴스에 분노하는 댓글을 가급적 멀리하려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섯째, 뉴스를 통해 사회 현상을 균형있게 관망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버리자. 짧은 글로 옮기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상황이 어디에나 있으리라 상상하면 겉보기에 놀라운 상황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문학동네 2014) 일부를 옮겨 본다.


   만일 우리가 지금껏 어떤 정당도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지 않았던 무대 뒤에 살짝 가려진 수많은 골칫거리들을 자각하게 된다면, 이른바 해결책이라는 것이 제2의 파장을 몰고 오리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면, 회의가 이뤄지는 원탁 주위에 압력이 작용한다는 사실과 특정 의제와 관련해 비참하리만치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최소한 몇몇 경우에는) 참여자 다수가 본질적으로 선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리하여 어려운 결정이 진짜로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의 분노는 꽤나 누그러질 것이다. (65~66쪽)


   마지막으로, 실용주의적 이상주의를 추구하자. 실용주의와 이상주의는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최대한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고, 가장 실현가능한 이상은 현실이 될 확률이 가장 크다. 실용주의적 이상주의는 댓글이나 염원, 몽상에 젖기보다는 실질적인 노력으로 바로 이어지기 쉽다.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걸음은 자명하고 간단하다. 뉴스 댓글이 아니라 축구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마법사의 지팡이에 열광은 할지라도 경기장에서의 기적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의 끈질긴 노력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작성일 : 2017.09.18
저자 소개  

오영훈
1978년생. 문화 칼럼니스트. 《문화 다》편집동인. 《산악연감》 편집위원.
인류학 박사. 네팔 셰르파족을 연구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랐음. 월간 <산>, 월간 <마운틴> 등에 기고. 7mmr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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