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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미니픽션] 한차현 소설가의 「판타지의 가격」(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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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가격

 

한차현(소설가)

 

페이스북에는 과장이 넘쳐난다. 누군가는 자신의 럭셔리를 과장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우울을 과장하며 누군가는 자신의 숙취를 과장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불면을 과장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슬픔을 과장하며 누군가는 자신의 분노를 과장한다. 잔뜩 치우친 정치색을 과장하고 넓고 깊은 인문학적 지식을 과장하며 신랄한 유머감각을 과장한다. 지극한 들꽃 사랑을 과장하고 이국 취향의 요리솜씨를 과장하고 결혼생활의 너절함을 과장한다. 누군가는 새로 사귄 페친과의 각별한 관계를 과장하며 누군가는 차단당한 옛 페친의 쓰레기 같은 인성을 과장한다.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데다 포토샵으로 덧칠한 증거 사진까지 첨부되곤 하니 생판 거짓은 아니요 보다 많은 페친들로부터 좋아요를 얻기 위한 애교 수준의 과장과 포장과 과시. 아마 당신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


나의 경우, 믿어줄지 모르지만, 과장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을 행할 뿐이다.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데다 증거 사진까지 완벽하게 조작된 거짓을 창조할 뿐이다.


페이스북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가 여느 실존인물보다 매너 있고 매력적이며 개성 넘치는 인물이도록 가꾸는 일. 그게 내 직업이고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 이곳, 페이스북세상 아닌 강남역 14번 출구 앞 스타벅스 2층 창가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시간 역시 내 소중한 업무의 한 부분이다.


이즈음 내가 창조하고 연출하는 캐릭터는 모두 다섯 종류다. 남자 둘 여자 셋. 402, 302, 201. 작년 6월 입사해서 처음 부여받은 캐릭터가 딱 두 가지였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업무량도 두 배 이상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부디 다음 달 있을 연봉협상에서 내 가치가 두 배 이상 평가받을 수 있길 빈다. 참고로 우리 2팀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오뉴 선배는 무려 14가지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떡 주무르듯 하시는 분이다. 숫자만큼이나 대단한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보유한 페친 추종세력-페이스북 파워로, 개중에서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캐릭터의 경우를 예로 들면……. , 지금 그딴 잔소리를 늘어놓을 겨를이 없다. 약속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재성 씨가 곧 나타날 것이다.


정수연. 38세 여성. 미국 포틀랜드 거주. 11년 전부터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포틀랜드 시내에서 작은 제패니스레스토랑을 운영. 남편과는 7년 전 이혼했고 현재 도심 외각 언덕의 단층빌라에서 외동딸 조안 리(18)과 반려견 토비(알래스카 말라뮤트. 4)와 함께 거주. 서양화를 전공한 경력을 살려 자신의 최신 그림을 종종 페이스북에 사진 찍어 올리곤 하는, 내 분신과도 같은 여섯 캐릭터 가운데 한 명.


페이스북 아닌 강남역 14번 출구 앞 스타벅스 2층에서 오늘 내가 연기할 인물은 정수연이 아니다. 서울 사는 그녀의 조카 정승현이다. 곧 나타날 이재성 씨를 정수연 대신 만나, 그녀가 포틀랜드에서 가져온 기념품을 전달하는 것이 오늘 정승현의 할 일이다.

 

 

고모가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죄송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한국 떠나기 전에 꼭 연락드린다더군요.”


이재성 씨. 마포의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43세 직장인 남성이다. 산악자전거 모임과 수상스키 동호회에 속해 주말마다 활동적인 레저를 즐기는, 아직은 청년 같은 외모의 독신 남성.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2년 전이요 소통하는 친구는 2백 명 내외.


이 남자, 요즘 정수연에게 푹 빠져 있다. 8개월 전 우연히 페친 사이가 된 그녀에게 완전히 미쳐 있다. 리얼 월드에서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럴 수도 없는 누군가 때문에 온통 뜨거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걸 어찌 아느냐고? 지난 5개월 동안 이재성 씨와 정수연 사이에 오간 수천 차례 페이스북 메시지를 대강이라도 훑어본다면, 당신도 나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 완전 미쳤군.

 

4시 정각.


드디어 약속 시간.

 

이재성 씨가 곧 실내에 들어설 것이다. 두근두근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둘려볼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정수연의 실제 모습을 찾아서. 하지만 70시간 이상 손꼽아 기다려온 순간은 안타깝게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잠깐 들어온 지 사흘 째던 오늘 오전, 천만 뜻밖의 슬픈 소식을 접한 정수연이 고향 여수로 서둘러 내려간 것이다. 여고시절 단짝 친구 한 명이 지난 밤 교통사고를 만나서 저 세상으로 떠났던 것이다. 가련한 이재성 씨, 그녀의 조카 정승현의 설명에 심히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 그녀의 체취가 깃든 기념품과 더불어 며칠 뒤 꼭 연락드리겠다는 전갈에 재차 가슴 일렁이는 연정의 기대감을 이어갈 것이다.

 

 

2백만 원.


이재성 씨에 대해 회사가 책정한 금액. 내게 주어진 업무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재성 씨의 아름다운 페이스북 속 연인 정수연을 움직여, 한 치도 틀림없는 그 액수를 징수해내는 것.

 

 

2백만 원. 과한가? 지난 몇 개월의 숱한 밤 시간, 질척질척 오묘한 페이스북 메시지들과 함께 몽롱하도록 행복한 상상의 성채를 쌓아간 이재성 씨에게, 그만하면 제법 적절한 판타지의 가격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네. 벌써 412.


이 인간 왜 안 나타나는 거야.


그때였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바삐 올라서던 누군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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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예사롭지 않은 눈빛. 그만으로 통하는 바가 분명하다.


그 누군가 망설이며 내게로 다가온다. 조심히 묻는다.

실례지만, 정수현 씨…….”


젊은 여성이다. 예쁘다. 기분 좋게 예쁜 얼굴이다.

, .”


내가 황망히 대꾸했다.

저는 조카인데요, 저희 고모가, 오늘 오전에 갑자기 여수로 내려가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신…….”

아아, 그런 일이.”

그런데 저어, 이재성 씨 맞으세요?”  “아 예, 이 차장님이요.”


여자가 불규칙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오후에 급하게 광화문 본사로 들어가게 되셨어요. 그래서 제가 외근 다녀오는 길에 대신 들렀어요.”

아아.”

정수연 씨 꼭 만나 뵙고 사과드리라고, 이거 꼭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몸에 좋은 차라고. 며칠 안에 꼭 다시 연락드린다고…….”

.”


내가 짧게 웃었다. 웃고 말았다. 욕먹기 딱 좋은 소리지만 여자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그저 당황스럽고 짜증났을 것이다.


이재성과 정수연의 보이지 않는 대결에 비해 이런 만남이란 얼마나 낯간지러운가. 과장과 포장과 과시도 거짓도 잘 통하지 않는 리얼 월드 속 만남이라니.


느닷없는 궁금증 하나.


저쪽 업체에서는 내 소중한 캐릭터, 정수연의 판타지 가격을 과연 얼마나 책정했을까?

 

 

 

 

 

작성일 : 2018.05.11
저자 소개  

한차현
소설가.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슬픔장애재활클리닉> <변신> <여곤> <영광전당포 살인사건> 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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