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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신작 미니픽션] 황경란 소설가의 「하늘, 보다」(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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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보다

 

  황경란(소설가)

  

    칸의 눈에는 오늘도 사장의 먼산이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 먼산 봐요?”

    한참을 서 있는 사장의 옆으로 칸이 다가섰다. 사장의 시선이 닿는 하늘 어디께로 칸의 시선이 머물렀다. 저기 어디쯤 사장의 먼산이 있을 테지만, 이제 칸은 사장의 먼산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 산은 말이지. 한 번 오르면 제자리에서만 맴돌다 하루해가 저물어 버려. 메아리조차 울리지 않는지 아무도 내 소리를 듣지 못하지. 그러니 아예 먼산을 보려고 하지 말라는 게 사장의 당부였다. 그런 산이라면 그냥 눈을 감아죠,라고 칸은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 칸은 저도 모르게 실눈을 떠가며 사장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사장님, 이제 깜깜해요.”

    칸의 성화에 뒷짐을 진 사장의 손깍지가 풀렸다. 유난히 큰 손바닥이었다. 손바닥 하나로 제 얼굴을 귀까지 덮어내는 사장의 손은 누구보다 크고 두꺼웠다. 그 손으로 사장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모든 인부들이 떠나고 공장이 문을 닫은 지 한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사장의 손톱 사이사이에는 시커먼 쇳가루가 박혀있다. 결코 칸보다, 아니, 다른 누구보다 가난할 수 없는 손이었다.

   사장이 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못이기는 척 돌아섰지만 전기가 끊긴 공장에서 누울 자리를 찾으려면 어쩔 수 없는 해거름이었다.

   공장 안에 들어서자 두 사람의 눈동자가 어둠을 밝혔다. 사장은 칸을 찾았고, 칸은 사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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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 고생이다.”

   깊은 한숨과 함께 사장이 말했다. 작게 웃는 칸의 얼굴 위로 달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구름이 많은 밤하늘이었다. 칸은 창문 너머로 밤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이곳이 좋았다. 그동안의 불면증이 씻은 듯 사라졌고, 불면증에 시달렸던 기억도 조금씩 잊혀졌다.

 

   불면증을 앓던 그 시절의 칸은 커다란 창고에 물건을 쌓고, 옮기고, 싣고 나르는 일을 했다. 커도 너무 큰 창고였다. 칸은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먹고 싸고 자고, 때로는 울고 웃고, 어떤 날에는 사랑도 나눴지만 딱 하나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증상은 이래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자꾸만 하늘이 보고 싶어요. 소리가 들리거든요. 천장에서. 정확히 말하면 지붕 위 같아요. 움직여요. 조용히, 조용히. 잠깐 꿈을 꾸기도 해요.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가진 여자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순식간에 사라져요. 잠에서 깬 저는 그 여자를 찾아 천장을 올려다봐요. 이건 꿈이잖아요. 그래서 일까요. 여전히 천장 너머로 무언가가 움직여요. 아주 조용히, 조용히. 그러면 저는 끝도 없이 이리 눕고, 저리 눕기를 반복하죠. 그러면서 생각해요. 하늘이 보고 싶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그럼 하늘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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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하늘이야 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칸이 사는 곳은 사방이 온통 벽이었다.

 

  “벽이 있다고 창이 없을까요?”

 

   의사가 되물었다. 칸은 자신이 사는 곳을 의사에게 그려보였다. 모든 것이 네모반듯했다. 네모난 공장과 네모난 컨테이너, 네모난 식판과 네모난 상자, 네모난 상자를 더 큰 네모로 쌓아 트럭에 올리는 칸의 몸도 네모였다. 칸이 그린 수많은 네모 중에서 그에게 꼭 필요한 창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의사는 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다행히 당신의 얼굴은 동그라네요.”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고 동그란 자신의 얼굴을 탓할 수는 없었다. 칸은 길을 걸었다.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창문 너머로 수없이 그려보았던 얼굴이었다.

 

   그날 이후 칸은 불법노동자가 되었다. 몸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거리를 떠돌았고, 거리를 떠도는 동안에는 아주 가끔, 불면증을 앓았다. 칸이 다시 일을 찾기 시작한 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냄새 때문이었다. 칸은 일을 찾기 위해 또다시 거리를 떠돌았다.

 

   낡은 드럼통에서 정작불이 활활 타오르던 곳이었다. 불길 너머로 냄새와 피곤에 찌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칸은 그곳에서 걸음을 멈췄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있는 힘껏 눈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지금의 사장이 칸의 손을 덥석 잡았다. 크고 따뜻한, 그래서 간절한 손이었다. 칸은 사장이 이끄는 대로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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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과 함께 도착한 공장에서는 장작불보다 더 뜨거운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리저리 튕겨대는 불꽃들 사이로 칸은 뛰다시피 걸어 다녔다. “안 죽어. 안 죽어.” 인부들은 겁에 질린 칸의 걸음걸이를 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알아요. 알아요. , 안 죽어요. 그래서 난, 여기가 좋아요.” 칸은 정말 그곳이 좋았다. 납땜을 하기 위해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둔 공장에선 언제나 하늘이 보였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신발은 물론 양말과 신발 끈이, 때로는 바지춤이 나비가 되어 날아다녔다.

 

사장님, 자요?”

 

  칸이 사장을 불렀다.

 

  “자요, 사장님?”

 

   이번에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 대신 잠이 든 사장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사장은 불면증을 앓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먼산이 곁에 있을지라도 불면증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깊고 어두운 밤을 견뎌냈다. 그래서였다고, 칸은 믿었다. 한 번도 불면증을 앓은 적 없기에, 누구보다 큰 손을 가진 사장이기에, 다시 사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부들은 칸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비웃었다. 어떤 인부는 칸을 향해 미련하다고 쏘아붙였다. 한바탕 칸에게 퍼붓고 난 인부들은 사장이 먼산을 바라보는 동안 공장 안의 크고 작은 기계를 들고 나갔다. 기계를 챙기지 못한 인부들은 바닥에 나뒹구는 쇠붙이와 쇳가루를 자루에 담았다. 제기랄! 누군가 거칠게 침을 뱉으면 칸은 인부들이 뱉은 침을 말없이 닦아냈다. 침 위로 침이 번졌고, 바닥에 물든 오래 된 침을 닦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했다.

   “이봐, ! 정신 차려!” 마지막까지 쇳가루를 챙겨 담던 인부가 말했다. “이제, 사장이 너보다 더 가난해졌어. 네가 더 부자라고.”

 

정말이에요?”

 

  잠든 사장의 숨결 사이로 칸이 물었다.

 

  “정말, 사장님이 나보다 더 가난해요? 어째서 사장님이 나보다 더 가난해요?”

 

  사장은 여전히 말이 없다. 아니, 말이 없어야 한다고 칸은 바라고 있다.

   칸의 얼굴 위로 밤의 그림자가 스쳐갔다. 칸은 하늘 보다 더 먼 곳으로 먼산을 보내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

 

 

 

작성일 : 2017.09.21
저자 소개  

황경란
소설가.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 2006년 평사리 문학대상, 201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발표한 작품으로 「칸, 만약에」「킹덤」「사람들」「얼후」「선샤인 뉴스」가 있음. seasky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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