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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텍스트] 김정남 소설집 『아직은 괜찮은 날들』(다이얼로그, 2017)


   다이얼로그 소설선 2권. 평론과 소설로 두루 활동하며 자신의 세계를 묵묵히 쌓아올리고 있는 김정남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 그동안 소설집 <숨결>과 <잘 가라, 미소>를 통해 세속적인 도시를 살아가는 좌표 잃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면, 이번 소설집은 마침내 '폐허'에 다다르게 된다.


   지금은 잃어버리고 없는 이 허망한 세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한 『아직은 괜찮은 날들』은 철저히 일인칭의 고백 서사로 채워져 있다. 진솔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고백하는 이 영혼의 대가는 다소 혹독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삶의 굴레 속에서 만난 '타인'을 거울삼아 들여다보며 발견하는 '나'의 자화상은 오늘날에 놓인 사람들의 표정이기도 하다. 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처럼 '나'는 '일인칭 기억'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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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 “내 청춘의 지도 한가운데 존재했던 해변 여인숙. 녹슨 파란 대문을 단, 일곱 칸의 방이 딸린 낡은 여인숙. 인연의 사슬에 얽혀 있는 누군가에게 난 이렇게 말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사라져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여인숙이 있던 그 바다에 서면 새로운 인연의 뱃길이 열릴 것이라고. 그 항해가 순항일지 난항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운명 앞에, 샨티, 샨티, 샨티.”
-「해변 여인숙」 중에서


P.85 : “정체된 도로 한가운데에서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막혀버린 생의 지도처럼 가슴을 옥죄어 온다. 생은 작은 조각부터 큰 윤곽까지 모든 것이 닮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분은 전체를 향한 메타포이고, 오늘 하루는 내 지옥도의 기하학적 구조 속의 한 조각 닮은꼴이다. 같은 생각이 말장난처럼 꼬리를 문다.
-「비누」중에서



P.137 : “저수지만큼 평온하고 호젓한 공간은 없었다. 잔잔한 수면은 내게 사변의 노트가 되어주었고, 아득한 황혼의 하늘은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히 앓게 해주었다. 이방인들의 일탈과 도회의 번다함은 가끔 구경하는 것만으로 되었다. 애써 피해온 것들을 다시 마주칠 필요는 없었다. 나에겐 스스로와 맞설 마음의 뼈대가 중요했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이 변방으로 자진해 밀려온 것이 아닌가. 아프다고 소리쳐도 누구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첩첩산중의 산을 헤치고 들어온 이역(異域)의 땅.”
-「저수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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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의 한 마디


   ‘쓰다’의 주체는 중독인지 모른다. 거기 산이 있어 오른다, 라고 말한 어느 산악인의 경구도 같은 뜻이다. 여기서 ‘쓰다’와 ‘오르다’는 실존의 한 국면이자 자기 구도의 행위를 가리킨다. 나의 글쓰기는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 순으로 부정과 거부의 강도가 결정되었다. 아마도 사서 고생하는 모습이 못마땅해서일 것이고, 그런 행위가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는 일에 갈수록 멀미가 난다. 사석(捨石)처럼 버려진 내 운명은 그 의도를 알 길이 없기에 여전히 고되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나를 우아하게 절망케 하는 장기 저리 사채와 같다. 그 빚을 조금 갚기 위해, 내 기억의 단층 속에 숨어 있던 사물들을 끄집어내, 지금_여기 살아있음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아직은 괜찮은 날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다.

 

  글쓰기는 적어도 내 생의 모질음에 비한다면 차라리 사치이며 도락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패하기 위해 애를 써왔을 뿐이라는 미욱한 생에 대한 자각도 내 글쓰기를 꺾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어디선가 내 소설을 읽어줄 당신에게 간절한 약속의 말을 남긴다. 이 인생의 강물이 다 흘러가기 전에 중류 어딘가 쯤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그리고 이것은 불확실한 미래의 시간을 향해 힘써 던지는 그물이기도 하다.


2017년 초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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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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