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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2018년 봄호 출간


이 봄, 과거가 보낸 평화라는 신호 



다시, 봄이다. 그러나 이 봄을 마냥 즐겁게 맞이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지나온 봄들의 아픔이 여전히 아물지 않았거나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다시 오게 된 이 봄의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까. 많은 말들이 오갔다. 이견도 있었고 또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 조금 이르지만 이미 지나온 그날. 우리는 4월로 성큼 한 발짝 내딛어 보기로 했다.


   2018년은 제주 4․3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 기념의 의미를 넘어서 제주와 4․3, 70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길잡이 정도로 <특집>을 읽어주기를 희망한다. 부산이라는 다른 지리적 공간에서, 4․3은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키고 이를 기억해야 할 역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이번호 특집을 구성했다. 70년이라는 시간 속에는 감히 무어라 이름붙이기 어려운 다양한 결의 기억들이 겹쳐져 있다. 그 기억들은 단일한 이름으로 압축될 수 없을 뿐더러 압축되어서도 안 된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자리에서 다른 목소리로 4․3을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야 겨우 4․3을 말하고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4․3을 지금 여기의 시간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4․3 70년은 어떻게 감각되고 있는가. 세 사람의 필자가 실감하는 4․3은 무엇이고 그와 함께 말하고 들으면서 생성되는 4․3을 통해 나에게 4․3은 어떤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을까. 모든 이에게 이 물음을 촉발시키고자 이곳에서 4․3을 발신한다.


   윤여일 선생은 4․3이라는 기표에 들러붙어 있는 개개인의 기억의 모습들을 드러내 보여준다. ‘나’와 제주, 4․3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김시종으로 연결되고, 특히 그와 정치적 입장에서 대척점에 있는 고씨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시차를 확인시켜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다큐 <용왕궁의 기억>을 제작한 김임만 감독에게서 찾을 수 있다. 김임만은 자신의 아버지를 알기 위해 동급생이었던 고씨 할아버지를 찾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어머니에게로 번져가고,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곧 “자신의 인생을 복습하는 일”로써 다큐를 제작하고 있다. 이들과 「용왕궁의 기억 기획서」로부터 기억과 이름, 문자와 영상이라는 언어와 이를 기록하는 자,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는 일이라는 키워드에 휘말려 다양한 사유를 촉발시키는 의미있는 글이다.


  김시종과 더불어 재일조선인 1세로 잘 알려진 김석범, 특히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 『화산도』를 독해하는 하상일 선생의 글을 통해 또 한 번 굴절되는 4․3을 확인할 수 있다. 김석범의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실존적 고민은 학살에 대한 증언들과 마주함으로써 자신의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형상화된다. 식민지시기를 거쳐 해방된 후에도 여전히 신식민지적 현실에 놓인 상황 속에서 “외세의 억압과 폭력으로 인한 공포의 기억으로부터 잃어버린 4․3의 역사를 되살리는 것이 김석범의 소설 『火山島』가 지향하는 최종의 목표”였으며 “국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분단 모순을 극복하는 ‘역사의 정명(正命)’을 되찾는 문학적 실천”이었다는 구절은 『화산도』의 의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재일’이라는 장소성과 시점은 일국 단위로 제한되지 않을 문학적 가능성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깊다.   


   재일조선인의 포지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앞선 두 글과 달리 강정이라는 장소로부터 논의를 펼치는 엄문희 선생의 「강정은 4․3이다」 역시 일독을 권한다. 강력한 제목인 이 구절은 “예감했지만 원치 않았던 이름”이며,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가 세워지는 과정 속에서 4․3이 재현되었음을 의미하는 뼈아픈 통찰이기도 하다. ‘붉은 섬’이라는 명명하에 초토화 작전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된 제주는 강정해군기지 건설로 다시 한 번 초토화된다. 더불어 강정지킴이들을 외부세력으로 분류해버리는 정치적 프레임은 여전히 횡행한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 곧 삶은 지속된다. 국가폭력이 반복해서 자행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일을 자문하는 이 글이 곧 당사자로 살고 있는 이의 절규다. “평화는 애초에 이름을 갖지 않는다. 그것이 깨어진 후에라야 이름을 갖는 것이 평화였다. 여기서 구럼비란 잃어버린 모든 것의 이름, 되찾아 회복해야 할 모든 일의 이름이다”라는 구절을 되새기며 우리 역시 그 중요성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제주 4․3이 과거사에 포박된 이름이 아님을 역설하듯, 현재로 불러내야 할, 기억해야 할 일들은 허다하다. <이후의 기억>에서는 현재진행형인 폭력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으로 형제복지원과 부산의 미군 주둔지였던 범전동 일대를 고찰하는 글 두 편을 담았다. 먼저 유해정 선생의 「형제복지원,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예요」는 인권유린, 만행,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로 명명되곤 하는 형제복지원의 참상을 상세하게 기록한다. 비상식적인 일이 가능했던 단초들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용인들의 고통과 죽음에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았던 정부, 박인근이라는 개인의 비리와 일탈로 사고가 축소․위장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형제복지원은 세상에서 흔적을 지웠고, 피해자들은 사라졌다. 모두 정리됐다는 안도 속에 사건은 망각에 묻혔다.” 허나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 씨를 시작으로 진상규명은 시작됐다. 여전히 그 일은 요원하다. 그럼에도 그들 곁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선생으로 인해 그 일은 지금 여기의 일이 된다. 뒤이어 오민욱 선생은 낙관의 역사가 소멸시킨 풍경들이라는 부제를 붙여 자신이 찍은 영화들을 경유해 부산의 범전동 일대, 즉 부산시민공원으로 개장한 캠프 하야리아가 주둔했던 땅, 전포동의 구상반려암군, 범전동 돌출마을, 집장촌 범전동 300번지 등에 대한 기록을 보여준다. 실험영화로 제출했던 영상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글의 형태로 제시된 일종의 ‘제작후기’로도 볼 수 있다. 사라져버린 그러나 (기록함으로써) 사라지지 않은 그 역설은 기억을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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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호 <비평,문>은 풍성하게 꾸려졌다. 우선 릴레이비평은 현 시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평화’를 화두로 삼아 올 한해 바톤을 이어나간다. 그 스타트를 끊은 오정진 선생은 「우리는 고단하게 겪는다」를 통해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관계를 일구어나가는 것”의 의미를 설파한다. 이야기의 편린들로 구성되어 대화하는 듯한 선생의 글 형식이 그 자체로 평화적이다. 어차피 그런 세상이다 하며 자포자기한 부류와 그럼에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평화란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해 준다. 후술할 세 편의 글은 모두 한국문학장 내부와 바깥에 있는 현안들을 진단하면서 활력을 불어넣거나 그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최강민 선생은 최근 한국문학계 전반을 훑어보면서 특히 2017년 문예지에서 다룬 특집과 2018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각종 텍스트를 섭렵한 뒤 문학계에서 적폐청산은 이루어졌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한국문학을 혁신시켜줄 새바람이라 할 신춘문예 당선작들에서 못내 아쉬웠던 점을 지적한다. 외딴 섬으로 유배된 한국문학이 타성에 젖지 않고 갱신되어야 한다는 그의 진단을 기억하자. 손남훈 선생은 “웹소설은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적 독법이 가능한 텍스트”라 평가하고 그들 세부 장르 중 판타지와 무협물인 『묵향』, 『달빛조각사』 등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다. 그들만의 세상으로 치부하거나 방기하지 않고 이 시대에 향유되고 있는 웹소설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글이다. 차선일 선생은 대중화된 문학상이라 할 노벨문학상과 맨부커상의 담론 효과를 분석한다. 선생은 문학상의 시대에 “문학상의 부흥은 문학의 죽음을 반박하는 예증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위기론의 가장 명증한 사례다”라고 판단한다. 또한 그 권위의 상실은 공정성의 훼손에서 비롯된 것임을 국내외 문학상의 차이를 통해 설명한다. 일독을 권한다.        


   세계의 고민들을 마주할 때 자신의 것으로 고민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니 그렇게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이때 강박적으로 혹은 단정적으로 그 고민들을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우기보단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것이 보다 진솔하고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광주, 5․18이, ‘May 18th’, ‘코슈 시티(光州 City)’라는 생경한 언어로 감각됨을, “모든 명확한 세계들이 내게서 장막을 치고 있었”음을 고백한 「그럼 무얼 부르지」로 잘 알려진 박솔뫼 소설가가 이번 <주목할 만한 시선>의 주인공이다. 그 후 그녀의 행보는 어떠한가.


   2018년 1월의 ‘나’의 내면 풍경을 그리고 자신을 반추해보는 자전산문과 부산, 고리 원전과 연결되어 있는 그녀의 최근작 『겨울의 눈빛』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세계들과 다른 듯 닮아있다. “뭔가 어떤 사건 자체를 정면에서 다루기보다는 그런 시선에서 빗겨나가 골목길로 걸어가는 느낌”으로 “걷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이메일 대담은 흥미롭게 읽힌다. 더욱 김녕 선생은 「산책하는 공동(空洞)」에서 흔히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관념, 그것으로 만들어진 의미의 세계를 착란시키는 박솔뫼의 감각은 “흐릿함. 희미함. 공허함. 모호함. 희박함…”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자기자신마저 아득한, 텅 빈 구멍으로 남는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의미라는 장막에 굴복하지도, 애써 부수지도 않으며 그저 흘러들어왔다가 흘러나가도록 둔다는 점이 박솔뫼 소설의 특징이다. 유독 걷기를 좋아하는 인물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글로컬의 경계에서>에서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문제와 카탈루냐 독립에 관한 논의를 개진시키고 있다. 손형섭 선생의 「일본의 헌법개정에 대한 대한민국의 중재자론」은 일본 헌법에서의 평화주의, 헌법 제9조의 탄생배경과 개헌 조짐,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해석개정과 헌법 96조 개정을 구체적으로 살핀다. 이에 따른 향후 동아시아 정세를 전망한 뒤 선생이 강조하는 점은 대한민국이 “동아시아 분쟁에 대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하여 그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조원옥 선생은 「통합과 독립의 기로에 선 카탈루냐 민족주의」라는 글에서 자신 역시 과문했던 카탈루냐 독립 문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상세하게 정리해 준다. 가령 최초의 민족주의적 봉기가 일어난 1641년이라든가 19세기의 독자적 민족운동 등의 맥락은 “카탈루냐 독립시도가 21세기에 새삼스럽게 등장한 새로운 현상은 아”님을 보여준다. 더불어 축구클럽,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라는 숙명의 라이벌은 곧 “분열된 ‘두 개의 스페인’”을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론의 안과 밖>에서는 2015년에 출간된 브라이언 마수미의 『도래 권력』(Ontopower) 제1장 「선제 우선주의」 초역을 선보인다.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위협 받고 있는 현실은 선제 공격을 감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잠재적이고 감정적인 논리는 군사개입이라는 하드한 측면에서부터 감시라는 소프트한 측면에 이르기까지 힘의 모든 범위에 걸쳐 우선권의 논리를 구체화하고 있는 권력의 형태인 ‘도래 권력’인 것이다. 전쟁의 관행, 현재 신자유주의에 침투해 있는 불안의 문화를 설명하는 데에 유익한 마수미의 이론을 집대성한 저작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번호 지면에 실은 제1장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끝날 때까지 미국의 공식적인 군사 전략으로 남았”던 선제라는 개념을 세밀하게 정의내리고 부시 행정부의 정책과 연설에서 그것의 작동논리를 분석한다. 핵과 관련하여 북한과 미국 트럼프 정부의 줄다리기가 팽팽한 요즘 우리가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뷰>에서는 9명의 필진들이 텍스트를 정밀하게 읽어주었다. 남승원, 정재훈 선생은 각각 김연아, 이종형 시집을, 이시성, 박훈하 선생은 손원평 소설, 김혜진 소설 및 이주란 소설집을 박형준, 김홍중, 남종석 선생은 각각 오키나와 문제를 다룬 『두 섬』, 러시아 문학의 한국적 수용양상을 다룬 『시베리아의 향수』, 자본주의 위기 원인과 장기 순환을 다룬 『장기불황』을 꼼꼼하게 평해 주었다. 홍은미 선생은 사드배치를 반대한 소성리 주민들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준 다큐 <소성리>에 대한 평을, 양순주 선생은 계속해서 아즈마 히로키의 실험이 내재된 일본 잡지 『겐론』에 대한 평을 맡아주었다. 텍스트에 애정을 갖고 섬세하게 리뷰해 준 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유독 폭력적 세계와 평화에 관한 논의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혐오가 난무하고 폭력이 일상화된 이곳에 다시, 봄은 올까. 108호 출간에 참여해 준 필진들 덕분에 이미 봄이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평화를 나지막이 속삭이거나 힘주어 말하는 그들의 말과 글에 공명하는 일만 남았다.


2018년 봄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 일동

 

 

 

작성일 : 201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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