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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희준의 SF통신] SF속의 여성들

모희준(SF 연구자,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현대는 아직도 여성에 대한 남성우위시대에 속합니다. 그런데 남성의 우위라는게 중세사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성은 틀림없는 사양족. 우리는 몰락직전의 남성의 몰골을 너무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중략) 한 가지 이런 자문을 해봅니다. 우리 둘레에 지금 남성다운 남성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고. 강건한 육체, 굳건한 의지, 여성을 보호하는 희생정신. 이제 이런 어휘들은 차츰 망각의 장막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문윤성, 「작가로서 못다한 말」, 󰡔주간한국󰡕 84호, 1966년 5월 1일.


  소설가 문윤성은 1965년 <주간한국>에서 공모한 ‘제1회 추리소설 공모전’에 당선된 소설 <완전사회>의 연재가 끝난 이후 위의 인용문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소설 <완전사회>의 내용은 냉동수면 상태에 있던 완전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남성’ 우선구가 여성들이 지구를 지배하는 미래에 잠에서 깨어나 겪는 사건들이다. 소설의 배경 자체가 ‘남성과 여성의 대립 이후 찾아온 세계’이며, 이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유토피아이고, 남성들에게는 디스토피아인 세계이다. 



완전사회00501.jpg


  연재가 끝나고 문윤성은 ‘현대는 아직도 여성에 대한 남성우위시대’라고 전제함으로써 여전히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당대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강건한 육체, 굳건한 의지, 여성을 보호하는 희생정신. 이제 이런 어휘들은 차츰 망각의 장막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와 같은 말에서 문윤성은 ‘남성우위시대’가 곧 몰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갖는 듯하다. 어쨌든 소설 속 남성들은 화성으로 쫓겨났지만 결국 ‘완전한 인간(혹은 남성)’인 우선구는 남성과 여성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결국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고도 산업사회에 접어들던 당시의 한국에서 여성의 위치가 차츰 높아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지는 남성들이 여성과의 공존, 또는 역할분담에 대한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리라. 


  SF소설에서 여성의 위치는 늘 주도적 입장에 서 있지는 못했다. 예컨대 ‘남자 영웅이 여성을 구출하고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영화 <에이리언>의 등장으로 남성 못지않은 여전사가 등장을 했고,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주인공 또한 명민한 여성 과학자이다. SF, 모험, 추리 소설에서 여성들은 늘 구출을 받는 대상, 또는 희생자, 혹은 남성 주인공의 보조자 역할에 머물러 있었고, 이러한 사실은 현재에 와서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소설이나 영화 속 여성들의 ‘지위’는 상당히 향상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에일리언movie_image.jpg


  최근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 혹은 미투 운동을 지켜보자면, 간혹 문윤성의 이야기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는 “우리 둘레에 지금 남성다운 남성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들이야 작가가 창조해 낸 인물들이니 그렇다쳐도, 현실의 삶에서 지금의 남성들은 과연 얼마나 ‘남성다운’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제임스 카메론과 결혼했던 영화감독 캐서린 비글로우는 키아누 리브스,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폭풍속으로>로 우리에게 알려진 감독이다. 이후 캐서린 비글로우는 <허트로커>, <제로다크 서티>와 같은 남성성이 강한 영화들을 연출한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지만,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여성출신 감독으로 성공한 감독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영화들은 오히려 남성 감독들이 만든 영화보다 더 건조하고, 폭력적이다. 이는 그간에 이 걸출한 여성감독이 남성들을 살펴보고, 지켜보며, 혹은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 같은 단어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미 ‘맞벌이 부부’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때부터 남성들의 ‘남성다움’은 몰락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자본주의가 남녀평등을 만들어 왔다고도 볼 수 있겠다. 


  최근 페미니즘 논쟁을 보면서 필자는 두 가지를 느낀다. 첫째는 전술했던 문윤성의 말이다. 우리 남성들은 지금 남성다운가. 남성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 시대에 남성다움이란 배려, 이해심, 신사다운 매너, 이런 것들이 아닐까. 둘째는 왜곡된 페미니즘이 가져올 결과이다. ‘남성우월주의’와 같은 단어들이 구시대 유물로 전락해 버린 지금, 왜곡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또한 미래에 같은 처지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좀 더 한 발자국 거리를 두고 지금 시대를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평화가 무르익어 갈 시기에 정말로 남녀 간의 전쟁이 발생하고, 남성들은 화성으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작성일 : 2018.05.08
저자 소개  

모희준
1975년생. SF 연구자.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문학박사. 선문대 전임연구원.
박사 논문으로 『냉전 시기 한국의 과학소설에 구현된 국가관 연구』가 있음. heejune7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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