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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제휴 기사] ‘비로소’ 자유로워지다

- 2017 <갤러리다임> ‘구광모 추상전’ 아트퍼포먼스에 부쳐 -


정재형(경성대 교수)



'Infra - 나를 떠나 자유로워지다’
― 2017.04.10. ~ 04.23. <갤러리다임>


   뿌리고 발라 문지른다. 벽 한 면을 온전히 백지로 할애한 공간에 재생 화면 같은 느릿한 행위와 진양조의 그림자 춤사위가 덧씌워진다. 유려한 핑거링의 기타 연주에 스며드는 녹턴(Nocturne)의 선율. 그 위에 투사되는 빛 속의 명제, 소실점 잃은 문자 행렬의 퍼레이드…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로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추상(抽象)의 건너편은 ‘도로 추상’이라 했던가. 작가 구광모의 작업은 추상과 구체(具體)의 교집합으로서 ‘즉(卽)-현실’이자 ‘반(反)-현실’이다. 사회에서 일탈한 유목(nomad)적 반항과 염치를 아는 소시민적 순응이 무질서하게 어우러져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묶기에 어렵고도 불편한 장르가 있다. 그러기엔 각각의 세계가 이질적이고 너무 고집스럽기 때문이다. 무용과 그림이 특히 그렇다. 그들이 욕망하고 고집하는 세계는 사뭇 다르다. 중력의 강력한 지배를 받는 땅위의 역동적 공간예술인 무용은 점과 선으로 에둘러진 캔버스 사각 틀 속의 작업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그들의 흔적 남기기는 각자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구경꾼으로서 관객은 단지 그 몫을 조금 할애 받을 뿐이다.  


   춤과 추상화의 공동작업, 이를 퍼포먼스로 묶어 마당에 펼친 이는 <갤러리다임>이다. 부산 유엔묘지에서 일제강제동원역사관으로 이어지는 자락에 터 잡은 <갤러리다임>은 상업 갤러리와는 달리 작가의 숨은 기량을 찾아 이를 입체적으로 브랜딩, 가치 극대화를 꾀하는 변별력 있는 전략으로 임해왔다. 정적(靜的) 전시 공간에 액션 퍼포먼스를 비벼 넣어 다이내믹 아트스페이스를 구현하고자 한 이번 시도 또한 그 취지의 연장선이다.

 


정재형.png



   <갤러리다임>에서 벌어진 아트퍼포먼스는 스스로 붓과 이젤을 던져버린 이와 조명과 무대장치를 마다한 이가 만나 오로지 ‘행위’만으로 캔버스와 그것을 둘러싼 공간을 채워나갔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또한 과정으로서의 혼돈을 걷어낸 ‘행위’의 결과는 시도하기 전부터 모락거리던 불온한 시선을 단박에 거둬내기에 충분했다. 주류 사회의 인정을 구걸하지 않고 스스로 사회의 주변부로 물러난 자발적 아웃사이더와 탄탄한 공연계에서 다져진 고수 춤꾼 간의 협업은 출발부터 이화(異化)된 결합이었으나,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 끈끈하게 결속됨으로써 낯설지 않은 조형적 행위로 재탄생했다.


   서른 해 남짓한 세월을 간판장이로 살아오면서 추상화 작업을 해 온 작가 구광모의 부산 첫 나들이이자 신고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쓰다 남은 페인트를 모아 현수막 천 조각에 뭔가를 그려왔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저마다 자기색채가 강한 미술계 제도권 밖에서 오로지 에스엔에스(SNS)와 페이스북 등을 벗 삼아 자생해 오며, 뭔가를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밑바닥 이력으로 모질게 다져진 구광모 작가의 손붓은 멈춤이라는 것을 태생적으로 허용치 않는 야생의 군마처럼 가릴 것 없이 벽면 위 화폭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굵고 투박한 손끝과 덕지덕지 세월의 잔흔이 남은 손바닥으로 만들어가는 화행(畵行)만큼은 수수하고 세세했다.


  2003년, <꽃 II> 이후 다양한 무대작업을 통해 자기만의 세계를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내온 춤꾼 허경미. 그는 어느 날 홀연히 인도로 떠난다. 명상과 수련으로 춤을 내면화한 그는 귀국 이후 소통과 관계 잇기에 주력한다. <KISS 2009>부터 <外치다 2013>, ‘세월호 희생자 추모 2015’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작업들은 경계에 선 타자들 간 연대를 호소하는 언행일치로 귀결된다. 전국무용콩쿨부터 전국무용제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수상 경력마저 오히려 그만의 춤을 구현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며 스스로 무명(無名)의 자리에 내려서던 그가 또 다른 예술 장르를 모색코자 기꺼이 <갤러리다임>의 좁은 터에 섰다.  


  숱한 창작공연과 전작 <바디 오브 프로젝션스 Body of Projections>를 거쳐 지난 해 협업한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다이얼로그 Dialogue - 바이트의 궤적>으로 춤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끼 많은 춤꾼 허경미의 춤사위는 기존 무대와는 다른, 스포트라이트조차 없는 무명(無明)의 공간에서 어쩌다 한 점 튀어 오른 불꽃마냥 이지러질 듯, 딸막거리다 마침내 화염(畵焰)으로 타올랐다. 불꽃은 그대로 작가의 화구(畵具)가 되어 빨강에서 노랑으로 번지다 이내 하양으로 화폭 속에 잠들었다.

 

 

허경미.png


  액션 페인팅이 춤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보는 이들은 호기심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긴장된 시선을 거두지 못했으리라. 서로 달랐던 시차적(視差的) 의도와 욕망의 두 세계, 그들은 과연 무엇을 만들어 내려 했을까.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안스러운 무책임한 두 세계의 충돌보다 더 위험한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기우였다.


  허탈하리만치 텅 빈 벽면을 선율과 문자 행렬로 덧씌우고 사이사이로 작가의 손붓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그 자리엔 처연한 춤사위가 얹혔다. 참으로 달랐다. 그래서 더 닮았다. 불온하기 짝이 없는 두 세계의 신이 ‘어떻게 타협하고 화(和)하는지’를 두루 봐 내기엔 공간적 한계가 느껴졌지만, 갤러리 좁은 터에서 전시장 한 쪽 면을 온전히 뺏긴 채, 두 행위에 이리저리 떠밀렸다 춤의 동선(動線)에 치여 아메바처럼 운신(運身)해야 했던 한 무리의 손님은 낯섦을 자각할 새도 없이 바빴다. 그리고 그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퍼포먼스는 단순한 보임이 아니다. 따라서 장르 결합의 강제에서 배어나는 휘발성 강한 목적을 뛰어 넘어 ‘예단 불허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갤러리다임>의 이른바 ‘경계 넘나들기’는 일련의 돌발 사태를 통한 ‘감각의 터치(touche des sens)’ 과정이었다. 행위자와 관찰자 모두가 향유하는 공감 시도가 아직은 설익어 조심스러우면서도 지속가능한 테제로 남아 있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개관 초부터 아날로그적 요소에 디지털 기법을 투입, 현대미술 장르의 외연을 과감히 넓힘으로써 예술의 권역을 모두 아우르고자 한 <갤러리다임>의 기획과 의지가 일련의 경계 밖 작가군을 브랜딩하고 포지셔닝한 사례이다.
 
  퍼포먼스 이후 우리의 시선은 달라졌다. 경계를 트고 뒤섞인 장르를 대하는 우리의 ‘눈’은 이제 더 깊고 넓어졌다. 굼뜨고 갇혀 지루했던 곳에서 벗어나 좀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메타필드로서 볼 만한 새 세계를 보게 된 것이다. 퍼포먼스는 그래서 경계의 허묾이자 세계의 이탈이다. 우리가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오늘의 문예비평> 2017년 가을호.

 

 

작성일 :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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