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기사[종합]
별점 평가
★★★★★★★★☆☆
★★★★★★★★☆☆
★★★★★★★★★★
★★★★★★★★★☆
★★★★★★★☆☆☆
★★★★★★★★☆☆
★★★★★★★★★☆
위치 : HOME > 문화 > 음악
[이혜진의 음악 시선] 일본의 천황제 이념이 존재하는 장소성과 <쇼와유신의 노래>

이혜진(대중음악평론가)
 

   일본에서 2월 11일은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의 즉위를 기념하는 ‘건국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 천황제 국가 일본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국경일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 건국기념일 행사 중에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대들과 일본의 보수단체들이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반천황제 시위’는 건국기념일 이외에도 쇼와천황(昭和天皇)의 생일을 기념하는 쇼와기념일(4월 29일)과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종전기념일(8월 15일)에도 일어난다. 

 

   이 시위는 ‘반천황제운동연합회’를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평화협회 재팬, 새로운 안보행동 실행위원회, 개헌과 천황의 전쟁책임을 묻는 4·29집회 실행위원회, 쇼와천황 건국기념관 건설저지단, 일한민중연대 전국네트워크, 히노마루·기미가요 강제에 반대하는 시민운동네트워크, 야스쿠니해체기획 등 총 60여 개의 단체가 참여하는 반체제적 시민운동의 성격을 지닌다. 이 단체들은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전쟁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는 사태에 대해 강한 우려감을 표명하면서 국제무대에서의 전쟁 반대와 재일미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천황제 폐지와 함께 국가행정조직 개혁을 요구하는 이유는 현재의 일본 정치·사회체제가 차별을 불러일으킨 원흉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국가에서 천황을 부정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경죄’에 해당되었다. 가령 1880년에 공포된 일본형법은 천황과 황족 및 신궁과 능묘의 존엄을 해치는 행위를 ‘불경죄’로 명문화하면서 이에 대해 2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것을 규정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당시의 문학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초로 불경죄가 적용된 작품은 기노시타 나오에(木下尙江)의 󰡔남편의 자백󰡕(1906)이다. 이 소설에는 도쿄제국대학 졸업식에 왕림한 천황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당시로서는 천황을 문학작품에 등장시키는 행위 그 자체가 불경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1910년 국가로부터 발매금지를 당했다. 마침 1910년은 천황암살계획의 주모자인 고토쿠 슈스이(幸徳秋水)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혁명 세력 20여 명이 검거된 대역사건이 발생한 해였다.

 

   근대 일본의 신도(神道)와 기독교가 충돌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불경죄는 1891년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의 불경사건을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다. 기독교 사상가인 우치무라 간조가 제일고등중학교의 교원으로 근무할 때, ‘교육칙어’에 대한 예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강제사직처분을 받은 사건은 급기야 일본의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었는데, 당시 이 사건은 천황에 귀의하는 ‘신도’가 과연 종교인가 아닌가 하는 일본인들의 심성에 자리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전전(戰前)의 ‘대일본제국헌법’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신도란 서양적인 종교의 개념이 아니라 일본인 전체가 신앙으로 갖고 있는 문화의 토대임을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치무라의 불경사건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개인의 신앙과 신도 사이의 위화감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일본군가20170608_073952.png


   한편 최근에 재조명 되고 있는 고바야시 타키지(小林多喜二)의 󰡔게잡이공선󰡕(1929)도 불경죄가 적용되었고 당시 고바야시는 치안유지법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 작품은 천황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부분은 없었지만, 게공(蟹工)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 사회의 부당함을 깨닫게 되면서 마침내 자본가의 정점에 자리한 천황가가 나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로 인해 게공들이 천황에게 헌상하는 게 상자에 “돌멩이도 넣어라”라고 발언한 부분이 곧 불경죄에 해당되었다. 이 외에도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가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에서 쇼와천황의 외모를 묘사한 “콧수염 안경 새우등의 그”라는 표현과 함께 “그의 가슴에 칼을 찔러”와 같은 천황 암살을 암시한 듯한 표현은 개정판에서 복자(伏字) 처리를 강요당했다. 




   이 시기의 불경죄는 우익작가의 작품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혁신 우익의 거물인 오카와 슈메이(大川周明)가 일본의 역사 이념을 계보학적으로 서술한 『일본 이천육백년사』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내용 중 “일본은 아이누민족의 국토였다”, “조정은 단지 최고 족장인 천황을 의장으로 하는 족장상담소에 불과하다”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어 광신적 극우단체인 ‘원리 일본’에게 극심한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신대사 연구』 역시 일본신화에서 벗어난 역사 기술이 문제시 되어 ‘원리 일본’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신대사 연구』는 황통보(皇統譜)를 조사하여 일본신화의 ‘천손강림’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고사기와 일본서기 따위에 의지하지 않아도 일본은 훌륭한 나라”임을 밝힌 실증주의적 내셔널리즘에 의거하고 있었지만, 천황의 절대성을 부정한 쓰다 역시 ‘원리 일본’에게는 절대로 수용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로 인해 『일본 이천육백년사』는 개정 요구를, 그리고 『신대사 연구』는 발매 금지처분을 받았다. 아무리 일본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역사 서술이라 할지라도 천황제 국가사회주의적 역사인식에서 벗어나면 그 자체로 불경죄에 해당했던 것이다.

 

   1945년 패전이 가져온 천황의 ‘인간 선언’ 직후 1947년 ‘일본국헌법’은 이 ‘불경죄’ 항목을 삭제하고, 천황은 일본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의미의 ‘상징천황제’를 제1장 제1조에 명문화했다. 전후(戰後)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문화방위론󰡕(1969)에서 ‘문화’ 개념으로서의 상징천황제를 옹호한 바 있다. 이때 일본 문화를 무차별적으로 포괄하는 공동체의 이념으로 기능하는 천황이란 황제 권력으로부터 초월한 문화의 전체성을 책임지는 존재로서의 천황을 가리킨다. 즉 천황은 국가와 국민의 에고이즘이지만 가장 반대 극에 위치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미시마는 그것을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의 원리로 간주되었던 팔굉일우(八紘一宇)에서의 천황제와 구분하기 위해 ‘미적 천황제’라고 불렀다.






일본군가20170608_074016.png



   미시마는 문화 개념으로서의 천황이 부정되거나 전체주의 정치이념을 포괄해야 할 때야말로 일본 문화의 진정한 위기가 도래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전체주의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천황의 ‘외부’에서 천황을 투사하는 비판적 사고방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없는 장소(‘천황’의 ‘외부’)를 통해 자신의 문화를 비판하는 행위는 자기동일성을 확립하기 위한 제스처 가운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단이다. 현실적인 권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언제나 강력한 존재성으로 표상되는 천황에 대한 관련 서적은 비판과 옹호를 반복하면서 현재까지 일본 사회에서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황제를 둘러싼 일본 지식인들의 다양한 제스처들이 반복되고 있는 재생산의 담론 유형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날카롭게 주목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1936년 2월 26일-29일에 육군 황도파(皇道派) 청년장교들이 ‘쇼와유신단행(昭和維新断行)・존황토간(尊皇討奸)을 내세우면서 내무대신 사이토 마고토(齊藤實)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국정쇄신을 꾀했던 반란사건, 즉 ‘2·26사건’을 통해 유명해진 <쇼와유신의 노래>는 천황제 옹호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애국심이 천황의 이름으로 부정되는 역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명 <청년 일본의 노래>라고도 불리는 이 노래는 1930년 ‘5·15사건’의 주모자 중의 하나이자 일본 제국 해군중위 미나미 타쿠(三上卓: 1905-1971)가 작사·작곡한 곡으로서, 당시 황도파 군인들이 부패한 재벌과 정치가 및 상층부 군인들의 밀월관계를 타파하고 천황 친정의 국정쇄신을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쿠데타가 정당한 행위라는 점을 시사하는 우국충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천황의 ‘신민(臣民)’이자 ‘의사(義士)’임을 자처했던 육군 황도파 하급장교들의 바람과 달리 천황은 이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함으로써 장교 한 명이 자결하고 군인 13명과 민간인 4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보다 더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고도국방국가 구상이 점차 현실화 되면서 군부 정치세력 증대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쇼와유신의 노래>

 

멱라수의 파도가 치고 무산(巫山)의 구름이 어지러운데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는 의분(義憤)으로 끓는 피가 넘쳐흘렀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힘을 뽐내기만 할 뿐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고

재벌들은 자신의 부(富)를 자랑하기만 할 뿐 사직(社稷)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네

 

아- 인간은 번영해 가는데 국가는 망해가는구나

눈 먼 백성들이 활기 치는 인간 세상의 흥망은 꿈만 같고

세상은 한 판의 바둑과 같네

 

쇼와유신(昭和維新)의 봄 하늘에 

정의로 뭉친 대장부들은

가슴 속으로 백만 장병이 되어 

산화하는 벚꽃이 되리라고 기도한다

 

죽은 지 오래된 시체를 넘어

구름처럼 떠다니는 이 한 몸은 

나라 걱정에 떨쳐 일어나

장부의 노래를 부르는가

 

하늘의 노여움인가 땅의 음성인가

도저히 심상치 않은 울림이 들리네

백성들이여, 영겁의 잠에서 깨어나라, 일본의 새벽에서

 

보라, 구천의 구름이 드리우고

사해(四海)의 물은 우렁차게 외친다

혁신의 날은 오지 않았건만 

일본의 저녁 바람이 부는구나

 

아- 비통한 천지에서 길을 헤매는 사람들이 걸어가는구나

영화(榮華)를 뽐내는 더러운 세상에서

그 누구인가, 저 높은 망루에서 내려다보는 자는 

 

공명(功名)은 그저 꿈의 흔적일 뿐 

진실된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리

인생의 의기를 깨닫는다면

그 누가 성패의 시비를 가리겠는가

 

그만 두어라, 이소(離騷)의 비곡(悲曲)을

비분강개의 날들은 이미 지나가버렸도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검은 확청(廓淸)의 피로 약동하리라

  




 

작성일 : 2017.06.08
저자 소개  

이혜진
음악평론가.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세명대 교수.
2014년 <플랫폼> 음악비평상 수상. 외국어대학교 학부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alusa@hanmail.net
[댓글]
⊙ 이름
⊙ 비밀번호
⊙ 이메일
댓글 남기기
비판적 문화 공동체 웹진 [문화 다]   |   www.munhwada.net(또는 com)
문화다북스 대표 강소현   |   웹진 <문화 다> 편집인 최강민, 편집주간 이성혁   |   사업자번호 271-91-00333
[웹진 문화다 / 문화다북스] 연락처 : 02-6335-0905   |   이메일 : munhwada@naver.com
Copyright ⓒ 2012 Webzine Munhwad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