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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소개

 

 

* 웹진 <문화 다>는 웹진에 게재될 글들을 먼저 받아서 게재하는 형식이 아니라, 필자가 제공하는 글을 수시로 받아 나중에 하나의 월간 형식으로 구성합니다. 평일 9~10시 사이에 새로운 글 한 두편이 매일 새롭게 게재되고, 이것을 매월 말에 하나의 월간지 형태로 묶어놓습니다. 웹진 <문화 다>는 일간과 월간 형식을 결합시킨 형태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21세기. 그러나 문화계는 새로운 희망보다 절망으로 가득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 자본주의적 이해타산 관계의 확대, 승자독식사회의 무한경쟁 등이 우리를 지배하면서 문화계는 사막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소위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영화를 빼고는 상당수의 문화인들은 타는 듯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파국의 위기 앞에서 각개 약진하는 소규모의 전투만으로 문화계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문화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의식 있는 사람들이 작당하여 뭉치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도원결의를 한 셈입니다. 새로운 문화시대를 만들 때까지 우리들의 불온한 몸짓은 계속될 것입니다.

 

   오프라인은 자본과 인맥이 열악한 처지의 문화인들에게 효율적인 전쟁터가 아닙니다. 문화적 패기와 열정이 주요 자본인 저희들은 온라인 매체를 통한 문화전쟁에 나서고자 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저희들이 믿고 있는 유일한 백입니다. 웹진 문화 다는 문화의 숨통을 옥죄는 각종 괴물의 공세에 맞서 문화의 소중한 영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인터넷 웹진은 2000년대부터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당대 네티즌들과의 소통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오프라인 잡지를 보조하는 형태의 온라인 웹진은 자생성이 아니 라 기생성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온라인 뉴스 매체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에서 문화면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입니다.

 

   우리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분열되어 있는 문화의 인재들이 모여 각자가 모두 중심이 되는 웹진 문화 다를 창간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능력 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웹진 문화 다에 아직 많이 모이지는 못했습니다. 웹진 문화 다는 각종 문화인과 문화 사이트를 포괄하는 문화 포탈을 꿈꾸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들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비판적 문화 공동체를 꿈꾸는 네티즌들이 봉기하여 모여든다면 더욱 커 나갈 수 있습니다.

 

  웹진 문화 다의 핵심적 모토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화 각 분야의 연대를 통한 공존의 문화 환경 조성

  

엘리트주의와 아카데미즘으로 무장한 글쓰기 사절

  

저자와 독자의 쌍방향성과 당대 현실과의 소통성 강화

  

네티즌 독자들의 문화 쉼터 제공

 

비판적 대안 문화와 문화 공동체 활성화

 

문화 우상의 타파와 타성화된 문화 질서 극복

 

다양한 예술 분야를 포괄하는 문화 포탈 지향

        

    웹진 문화 다는 평일에 새로운 기사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전 10시경에 보통 올라갑니다. 글 꼭지가 추가될 경우 화요일, 목요일에도 새로운 글이 게재됩니다. 독자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문화 놀이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독자들의 투고는 공정하게 평가해 좋다고 판단되면 원고료를 지불하고 메인 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비판적인 웹진 문화 다의 전성시대가 열릴 수 있도록 많은 네티즌들의 질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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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저작권에 대해

 

 

   웹진 문화 다에 게재되는 모든 평론 기사들의 저작권은 웹진 문화 다와 해당 저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글을 퍼가서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간략한 글 서두(한 단락 정도)와 링크를 통해 문화 다에 와서 전문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해당 저자가 책으로 출판할 경우 무상으로 공개되었던 평론들은 글의 1/4 내지 1/3 정도만 독자에게 무상으로 제공됩니다. 글의 나머지 부분은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서 정보를 획득해야 합니다.

  

   웹진 문화 다에서 사용되는 책, 영화 등의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출판사와 영화 제작사 등에 있으며, 평론 기사의 목적으로 제한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재된 이미지는 알라딘이나 네이버영화 등에서 가져와 사용하고 있습니다.

 

 

 

 

창간사

 

 

 

잡놈의 언어 탈옥과 놀자 축제

 
 
 

 

1. 록버전의 탈옥

 

  처음에 읽히지도 않을 엄청 무거운 클래식 음악 버전의 창간사를 썼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읽지? 이 질문을 하자, 나는 미로의 함수를 헤매이며 철학자 데카르트를 곰곰이 떠올렸다. 데카르트의 아류인 ‘나는 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엄숙주의에 찌든 언어들이 과연 적절한 문장일까.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것은 나르시시즘의 자위 언어에 불과하다.

 

  나는 엄숙한 색깔로 덧칠된 고도 비만형의 창간사를 쓰레기통에 과감하게 버리고, 록버전으로 창간 관련 소감문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 ‘(엄숙한 과거의) 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차라리 이 문장이 내 심장에 사정없이 꽂힌다. 청춘 남녀의 만남에서 사랑의 시작은 불과 3초만에 결정된다. ‘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문장은 불과 3초만에 뜨겁게 결정되었다. 이 문장을 쓰면서 희열의 오르가즘을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숙한 언어의 갑옷이 아니다. 세상을, 문화계를, 나를 뒤흔드는 지랄같은 언어의 축제이다. 언어를 감금하지 말고 탈옥시키자. 일상의 탈옥을 꿈꾸는 이들이여! 다들 웹진 《문화 다》로 오라. 이곳은 젖과 꿀이 흘러 넘치는 대신 지랄발광의 언어들이 자유롭게 숨쉬는 유토피아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부디 너무 심각해하지 말자. 심각할 필요는 분명 있다. 그런데 제발 ‘너무 심각하게’ 《문화 다》의 창간사를 소비하지 말자. 심각이 현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다면, 나는 심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각은 심각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 것. 심각은 해탈하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심각을 처참하게 살해했다. 심각은 인면수심의 살인자이다. 록버전의 탈옥이 나의, 《문화 다》의 실존이다. 이 말을 하면서 오르가즘의 따발총 향연을 체감하며 전율한다.

 

 

2. 지랄발광의 축제

 

  웹진 《문화 다》는 지랄발광의 축제를 처절하게 욕망한다. 지랄발광을 오매불망 사랑한다. 이 지랄발광이 기존의 안정된 체제를 뒤흔드는 강력한 쓰나미가, 화산 폭발이 되기를 죽도록 열망한다. 새로운 문화는 낡은 것을 떠나보내야만 가능하다. 우리 이제 안녕이라는 인사를 열나게 합창하자. 안녕, 안녕, 안녕, 안녕. 낡고 병든 문화들아!

 

   이곳은 꿈과 희망을 자양분 삼아 건설된 《문화 다》의 나라. 《문화 다》는 이곳을 클릭해 방문한 모든 사람들을 열나게 환영한다. 21세기, 혹자는 새로운 세기의 도래 속에 꿈과 희망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도 바보처럼 그러했다.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기는 잔혹한 시대의 개막이었다. 어둠을 깨는 발자국 소리, 주먹과 발길질, 그리고 들리는 비명과 신음 소리. 신자유주의 체제로 성형수술한 후기 자본주의라는 초울트라슈퍼 거인은 벌건 대낮에 난쟁이로 변신한 문화계의 영혼과 육체를 마음껏 유린하며 강간했다. 문화계는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절망과 분노는 이 시대의 실존이었다. 물론 베스트셀러나 할리우드 기법을 차용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이 고통에서 열외였다.

 

  후기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무소불위의 거인 괴물이었고, 문화계는 이 괴물의 직접적인 피해자이자 희생양이었다. 모든 것이 자유와 경쟁이라는 이름하에 합리화되었고, 사회 양극화 현상 속에 약자들은 패배자의 낙인이 찍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열등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찌질한 인생뿐이다. 돈이 되지 않는 문화는 무가치한 식충이로 판정되었다. 승자와 패자를 확연하게 가르는 승자독식사회는 문화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양성은 문화계에서 사치로 유통되었다.

 

  OECD통계로 자살률 1위라는 한국의 불명예는 암담한 현재 상황을 알리는 상징적 광고CF이다. 1997년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IMF 트라우마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람들은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이렇게 암담한 시대에 네티즌들이 보여주는 마우스의 미친 클릭질은 타는 듯한 목마름의 증거이다. 유목민처럼 인터넷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떠도는 고독한 네티즌들! 웹진 《문화 다》는 삶의, 문화의 갈증을 미치도록 느끼는 모든 존재들을 위한 사막의 오아시스다. 이용료는 무료다. 편히 와서 마음껏 쉬어라. 분탕질을 하라! 불량스럽게, 매우 불량스럽게 언어를 춤추게 하자.

 

  《문화 다》는 온갖 편의시설이 완비된 신라 호텔이 아니다. 공터, 개수대, 간이 화장실만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야생 레고 캠핑장이다. 이곳에 어떤 레고 텐트를 칠 것인지는 방문객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언어의 레고 부품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네티즌들이여, 준비됐나? 시작하자. 조금 늦었다고.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투정이다.

 

  글을 야만스럽게 끄적거리자. 미친 말처럼 광분하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하지만 그렇다고 잡놈의 품격을 잃어서는 안된다. 《문화 다》의 시민인 잡놈은 인신공격성의 언어들, 비합리적 우상에 지배된 쓰레기같은 언어를 한없이 경멸한다.

 

  2008년 미국은 금융 위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의 종언을 선언했다. 지금 작동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죽어 있으되 살아 있는 ‘좀비’이다. 한국 문화계를 지배하는 각종 낡고 병든 제도도 ‘좀비’이다. 우리 《문화 다》는 무한경쟁의 승자독식주의, 엘리트주의, 학벌주의, 정실주의, 출판자본주의 등에 중독된 좀비들과 맞서 싸울 것이다. 좀비들이 지배하는 문화계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막강 전투력을 자랑하는 좀비와 맞서 싸우려면 부족한 힘이라도 보태는 연대가 필수적이다. 각자의 개별적 투쟁만으로 힘들다, 아주 힘들다. 《문화 다》의 편집위원들은 전문 분야의 개별적 역량들을 상호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생산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거대한 좀비 세력들과 ‘황야의 결투’를 벌일 수 있다.

 

 

3. 뻥과 개소리들

 

  2012년 10월 15일은 각종 좀비 퇴치를 위해 웹진 《문화 다》가 봉기한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이 날 《문화 다》라는 깃발 아래에서 연합군을 결성했다. 아쉽게도 독수리오형제는 무척 바빠서 참가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 다》는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한다.

 

  웹진 《문화 다》의 문화생존헌장을 일부 읽어보자. ‘우리는 잡놈 문화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구시대의 낡은 것들을 오늘에서야 제거하고, 안으로 문화 기득권의 정체를 까발기고 밖으로 잡놈 문화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야생적 문화스타일로 밝혀 잡놈 문화의 지표로 삼는다.’

 

  《문화 다》의 문화생존헌장이 과대망상의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한다고? 용두사미의 위험성이 있다고?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한 말은 모두 뻥이다. 뻥이라고? 그렇다. 문제는 뻥이다. 뻥은 낡고 병든 질서를 차버리고, 기득권에 안주한 문화계의 권위주의를, 좀비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뻥 차버릴 것이다. 뻥이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이 불확실성이 내가 유일하게 믿고 있는 주기도문이다.

 

  주기도문의 주요 구성 성분은 뻥으로 구성되어 있다. 뻥은 멍멍 소리를 낸다. 개소리들. 그렇다. 《문화 다》가 내뱉은 언어들은 비판적인 뻥이자 멍멍이의 짖음이다. 《문화 다》를 사랑한다면 당신도 이곳에 와서 ‘멍멍’을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 멍멍 언어로 글을 쏟아내야 한다.

 

  멍멍 언어는 ‘거시기’를 지향한다. 거시기는 거시기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거시기의 오리지날 미학이다. 거시기한 거시기가 되기 위해 웹진 《문화 다》는 오늘도 힘껏 부르짖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온한 뻥과 불온한 멍멍이다. 불온한 뻥과 불온한 멍멍이는 우리를 제대로 놀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과의 투쟁을 선언한다. 이때 분노는 새로운 시대를 탄생시키는 딴죽걸기이다.

 

 


4. 《문화 다》의 진정한 이름은? 놀자!

 

  너는 누구냐? 나는 웹진 《문화 다》이다. 너는 누구냐? 나는 웹진 《문화 다》가 아니다. 《문화 다》의 고유 이름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문화 다》는 편의적으로 임시적으로 붙인 육체 기호일 뿐이다. 《문화 다》를 방문하는 네티즌들이 꿈꾸는, 희망하는 《문화 다》의 이름. 그것이 진정한 《문화 다》의 이름일 것이다. 분노, 저항, 공감, 연대, 자유, 평등, 희망. 이것이 《문화 다》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도, 아무도 《문화 다》의 진정한 이름을 알 수도, 명명할 수도 없다. 《문화 다》는 불온한 피를 수혈 받아 오늘도, 내일도 성장하며 변화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방문객 네티즌들이 《문화 다》에 와서 꼭 할 일이 있다. 놀자! 걸판지게 놀자. 그렇게 하다가 놀다 지치면 어떻게 하냐고? 쉬었다가 놀자! 쉬었다가 논 다음에는 무엇을 하냐고? 별 것을 다 걱정한다. 다시 놀자! 놀다 죽은 놈 못 봤다. 한국사회는 노는 것을 죄악시해서 언제 한번 제대로 마음껏 놀아본 적이 있던가.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유치원 때부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에 시달린 탓에 놀면서도 죄의식을 느껴야하지 않았던가. 제발 이곳 《문화 다》에 와서 딴 것 신경 쓰지 말고 놀자. 놀자, 놀자, 놀자!

 

  그런데 대체 어떻게 노냐고? 나, 모르지. 노는 놈이 알지?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제대로 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나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놀자는 거야. 놀자. 미치도록 놀아보자.

 

  편집위원을 대표해(?) 편집주간이자 잡놈 문학평론가인 최강민이 개소리로 도배질한 창간 소감문을 우렁차게 배설했다. 오늘은 웹진 《문화 다》가 잡놈으로서 가져야 할 품격 높은 신생아의 우렁찬 개소리를 토해냈다. 웹진 《문화 다》의 이름이 《문화 多》인 것도 잡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웹진 《문화 다》는 문화계의 잡놈이고 싶다, 잡놈이다. 잡놈스타일.

           

 

2012년 10월 15일

 

편집주간 최강민

 

 

 

웹진 문화 다 역사

 

1기 편집위원 : 최강민(편집주간), 이성혁, 강성률, 박우성, 박진영, 이정현, 지승학


2기 편집동인 : 최강민(발행인 겸 편집주간), 이성혁, 박진영, 이정현, 지승학, 심우일(편집장), 권유리야, 김필남 등등


3기 편집동인 : 최강민(발행인 겸 편집인), 이성혁(편집주간), 심우일(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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